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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동안 나는 언어에 대해 많은 공부를했다. 그러다가 '나는 하자에서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말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래서 나의 페차쿠차 주제는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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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때 나는 처음 중국에 갔다. 갑자기 바뀐 환경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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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중국말을 배워야 했다. 하지만 말을 배우더라도 서로 가진 문화적 차이 때문에 친구들과 그리 잘 어울리지는 못다. 중학생이 되어 홈스쿨링을 하게 됐을 때는, 많은 시간을 아빠와 영어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보냈다. 처음에는 언어를 배우는 것에 흥미가 없었지만, 나중으로 가면 갈수록 나는 언어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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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는 학교를 쉬면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았다. 일 년 동안 학원에 다니면서 독일어를 배우고 연말에 B1 시험을 봄으로써 또 다른 언어에 대한 경험을 갖게 된 것이다. 영어와 독일어 중에서 비록 뭐 하나 제대로 배웠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이것저것 배우면서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어떤 문화를 갖고 있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 아주 조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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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해에 나는 일반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에서 배운 영어 수업은 실망이었다. 읽고 쓰는 것보다, 듣고 외우는 것이 영어 수업의 대부분이었고, 영어를 내 언어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 오직 시험을 잘 보기 위해 하는 공부라는 느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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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자에 오기 전에는 하자에서 배우는 글로비시가 마음에 들었다. 시험이 아닌 현장에서의 실용을 위해 언어를 배운다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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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비시 시간을 돌아보면, 수업 중에 사회적 이슈나 영화 리뷰 같은 어려운 내용을 다룬 적이 많았다. 가끔은 "굳이 어려운 말을 하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내가 지금까지 '언어'을 배워온 나의 방식, 특히 '영어'를 배워온 방식과는 완전 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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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몇 번의 면담을 가진 후 하자에서 언어를 배우게 된 배경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우리가 글로비시 시간 때 나누는 난민들의 이야기, 성소수자들의 이야기, 태극기를 들고 집회에 나가는 노인들의 이야기, 꺼내기를 내켜하진 않지만 마냥 눈 돌릴 수만은 없는 이 시대의 많은 사회적 이슈들은 하자작업장학교가 연대하길 바라는 사람들의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죽돌로서 나중에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내가 무엇을 배우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언어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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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저나게 이번 학기 수어 수업은 특별했다. 사회적 소수자인 청각장애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이기도 하고, 수어를 배움으로써 나중엔 농인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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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 수업을 받기 전까지 나는 수어를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수어란 그저 우리가 문자나 음성 같은 또 다른 표현방식의 한국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서, 동시에 어떤 사람들을 만나려면 그런 편견을 버려야한다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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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누군가가 수어 수업 중 이런 질문을 던졌다. "결혼을 의미하는 수어 단어가 왜 꼭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형상으로 표현되느냐."고. 결혼은 꼭 남자와 여자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렇다면 농인들은 성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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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쓰는 말은 한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면서 만들어진다. 때문에 간혹 사람들이 생각하기 쉬운쪽으로, 말하기 쉬운 쪽으로 말이 만들어질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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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휴대용 충전기 생각났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보조배터리는 여분으로 가지고 다니는 교체용 추가 배터리를 이르는 말이었는데, 스마트폰에 배터리 교체 기능이 사라지고 휴대용 충전기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이 휴대용 충전기를 보조배터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새로운 단어를 받아들일 필요 없이, 기존에 사용한 단어를 계속 사용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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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아무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 쉬운대로 단어가 만들어지면서, 휴대용 충전기는 보조배터리가 됐다. 나는 홀로나마 휴대용충전기라는 단어 사용을 고수해왔지만, 때론 그런 고집을 피워도 소용 없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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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사람들이 편하게 사용하는대로 표준어가 바뀌기도 한다. 그렇지만 때론 꼭 바꿔야 할 이유가 있어서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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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8월 11일, 국민학교의 명칭이 초등학교로 개정되는 일이 있었다. 국민학교라는 말은 황국신민학교의 줄임말이기 때문에 일제의 잔재청산 목적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나는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언어를 바꾸는 것은 시대다"

17 - 시대가 달라지면서.png시대가 바뀌면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달라지고 있다. 물론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불과 몇십 년 전 제대로 취급도 받지 못하던 어린이들에게 어린이라는 명칭이 주어지면서 입지가 바뀐 것을 보면 바뀌어가는 시대가 긍적적이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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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죽돌들이 결혼이라는 수어 단어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농인 커뮤니티가 성소수자 문제에 있어 떨어져 있음을, 즉 농인들과 우리는 약간은 다른 시대에 살고 것을 보여 주기도 한다.

19 - 내가 수어를.png

내가 수어를 배운다고 해서 당장 무언가를 바꿀 수는 없지만, 내가 수어를 배움으로서 계속해서 농인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같이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언젠가 농인 문화가 발달하고, 농인들 사이에서도 성소수자의 입지가 올라간다면, 그 시대를 만든 사람 중 내가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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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늘 언어와 함께했다. 그리고 그 언어는 늘 바뀌어왔다. 어쩌면 내가 언어를 배우는 시대를 따라가는 것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나가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또 언어는 사람을 만나게 해 준다. 나는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진 않았지만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하자에 오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면 내가 만날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매번 글로비시 시간이, 수어 시간이, 매체 시간이 설레게 느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