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여행 리뷰

 

이날 나는 평소보다 이른 430분쯤에 일어난 거로 기억한다. 집이 머니 내 몸이 고생해야지그때가 아닐 수도 있다 워낙 비몽사몽이어서어쨌든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도착하고 나니 3, 4층은 물론 5층도 잠겨 있어서 학교 주변을 그저 서성이다가 버스에 타서 아침에 못 잔 잠을 자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점심시간도 지나 결국 도착한 곳은 고정희 시인의 생가였다. 뭐랄까, 한 세대 전의 느낌이 나는 오래된 집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했고 그때 당시의 책들도 많이 꽂혀 있어서 굉장히 신기하게 둘러 보았던 것 같다. 집 앞에 시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고정희 시인의 시를 접해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집 근처에 있던 고정희 시인의 무덤에서 노래를 부르고 묵념을 했을 땐 솔직히 아직 고정희 시인을 잘 알지 못해서 별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전에 몇 번 찾아볼걸이라고 지금도 후회 중이다. 미황사로 출발하기 전 생가 뒤에 있는 작은 산에 놀러 갔을 때 작은 공터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보는 마을이 우리 집 주변 풍경과 달라서 신선했다.

버스를 타고 다시 달려 미황사에 도착해서 가장 처음 본 것은 끝날 것 같으면서 끝나지 않는 계단이었다. 끝날법한 곳에서 다시 이어지는 계단은 정말 힘이 쭉 빠졌었다.

저녁을 절에서 먹었을 때 고기가 없어서 약간 아쉽기는 했지만, 발우공양을 안 한 건 정말 다행이었다. 깨끗하게 먹기는 했어도 음식 소스는 남아 있었으니까

저녁을 먹고 나서 한동안 숙소에서 시간을 때운 후, 해가 지고 나서 모두 모여서 한 시 낭송 시간. 다들 무거운 시를 가지고 와서 섣불리 말을 못 꺼냈지만 내가 이야기할 땐 다들 재미있어해서 다행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 뒤에 낭송한 다이의 시도 짧아서 아쉽기도 다행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첫날은 뭘 많이 한 것 같으면서도 시간이 그저 흐른 것 같기도 한 뭔가 아쉬운 날이었다.

둘째 날도 일찍 일어났다. 그것도 엄청. 덕분에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스님들이 하는 아침 예불(맞나?)을 같이 참여하는 것이었다. 앉을 때 무릎을 꿇고 앉아서 다리에 쥐가 났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불경에 절도 하니 반쯤 정신이 멍해져 있었던 것 같다.

그리 예불이 끝난 후 바로 대망의 108배를 했다. 잠시 108배를 하는 곳으로 걸어가는 동안 쥐가 풀리기는 했지만 108이라는 숫자의 크기를 다시 실감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108배가 끝나고 나서야 아침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목신 공방에 젓가락을 깎으러 다시 버스를 탔다. 목신 공방에 도착해서 목수님 말씀을 듣고 열심히 나무를 깎으며 놀고(?) 있자니 어느새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다. 점심 먹을 때 즈음엔 이미 젓가락을 완성하고 숟가락을 만들고 있던 도중이어서 점심 먹는 게 꼭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 된 것만 같았다. 평소보다 1, 2시간 일찍 일어난 것뿐인데도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졌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계속 나무를 깎았다. 숟가락을 완성하고 포크에 도전하던 도중 목수님의 집에 놀러 가자고 해서 중간에 내팽개치고 나왔다. 목수님이 깎은 숟가락처럼 집도 마당도 예뻤는데 목수님 집 안에 있던 수많은 나무 숟가락들이 내 입을 떡 벌어지게 했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목공할 시간이 끝이 났을 때는 아직 포크가 완성되지 못했었다. 결국 미완성품이 하나 남기는 했지만, 수저 세트는 완성 시켰으니 불만은 없다. 마지막으로 다 같이 사진을 찍고 나서 팽목항으로 갔다.

예전에도 봤었던 등대였지만 왠지 그날은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뭔가 쓸쓸해 보였다. 등대 앞에서 노래를 한 곡 부르고 나서 학부모님 한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직 세월호는 완벽하게 밝혀진 게 없는데도 벌써 사람들에게 잊혀 가고 그 흔적들이 점점 사라져 간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학부모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목포신항 근처에 있는 숙소로 갔다. 이번엔 절에 있던 숙소보다 훨씬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늦어서 시 짓기 대회는 다음 날 아침으로 미루고 잤다.

셋째 날. 이날 아침은 간단하게 먹고 전날 못했던 시 짓기 대회를 했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시들도 생각보다 무겁고 깊은 시들도 많았다. 다들 안 해서 그렇지 시키면 다 잘하는 듯하다. (농담)

시 짓기 대회가 끝나고 괜찮아 마을로 갔다. 마을이라길래 청년들이 새로 작은 마을을 만들었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뭔가 요약하자면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궁극적으로 퇴화하여가는 마을을 살리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곳을 만드는 곳이었다. (맞나?) 그리고 마을을 돌아보면서 이곳저곳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나 역사를 알려주어서 재미있었다. 물병을 안 가지고 나 온게 좀 치명적이었지만

마을 탐방이 끝나고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세월호 배가 있는 목포신항으로 갔다.

목포신항에 도착하니 2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졌다. 한참 동안 기다려야 될 시간이었다. 뭔가 어이가 없었지만 하는 수 없이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해서 버스에서 기다리기를 몇 분, 2시가 채 되지 않아 그냥 들어가도 된다고 알림이 왔다. 그러고 바로 세월호를 보러 갔다. 학생증이 필요하다고 해서 가지고 왔지만, 검사를 안 해서 뭔가 아쉬웠다. 그리고 어제와는 다른 학부모님을 따라 세월호 앞으로 갔는데 예전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코앞에서 보지는 못했지만그래도 오랜만에 본 세월호가 세워져 있어서 느낌이 새로웠다.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는 세월호에 대한 진행 상황이었는데 생각보다 신체 훼손이 심각했었고 아예 진입해보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좀 충격을 받었었다. 나도 그날 바다라는 영화를 본 사람으로서 그곳에서 주장하는 이야기가 정면으로 부정당했을 때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겉으로 완벽한 논리였다고 해도 간단한 사실들로 인해 부정당하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으며 학부모들도 예전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확 와닿았던 것 같다.

학부모님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나온 우리는 팽목항을 좀 돌아본 다음 그대로 버스를 타고 집을 향했다.

뭔가 굉장히 많은 일이 있었으면서 뭔가 많이 허전한 여행이었다. 여행을 처음 들었을 때는 고정희 시인에 대한 여행이었고 여행 제목도 시詩와 여행이었지만 여행을 하고 나니 기억에 남는 부분은 그 부분보다 다른 여행요소가 기억에 남는 것 같아 좀 아쉽다. 그래도 여러 방면으로 유익했고 새로웠던 여행이었다.

(뭔가 리뷰가 일기가 된 것 같지만 괜찮을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