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농업 현실에 대한 이론 수업을 들었어요

까먹지 않으려고 쓰는 리뷰이고, 수업 내용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정말 글이 지저분하네요... 하하...


1 오늘의 농민

   현재 청와대 앞에서 농민들이 무기한 단식 농성을 진행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농민 단체와 '농민은 공무원이다' 라 선언을 하는 등 농민들의 표심을 자극하였지만, 현재 정부의 농민 정책은 전무하다. 농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존재하지 않으며, 농민 출신의 국회의원은 많아도 한두 명이다. 200만명에 육박하는 농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문제적 상황이며, 이 때문에 농민의 정치적 의사가 국회에 잘 반영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 지난 대선 토론 때 농업에 관련된 발언은 정확히 '1분' 이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마지막 대선 토론의 마무리 발언에서 다른 대선 후보들은 농업을 신경 쓰지도 않는다며 자신은 마무리 멘트를 농민들을 위해 사용하겠다 했다. 한국 정치에서 농민의 대표성은 심각할 정도로 떨어진다 생각한다. 정의당은 전통적으로 장애인, 농민에게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순위를 주던 진보정당의 관행을 어기고 '현실정치' 를 하시겠다며 군사전문가, 언론전문가에게 비래대표 선순위를 부여했다... 농업 관련 의제는 진보 운동에서도 가시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


2 쌀의 상품화

   이천 쌀, 철원 쌀 등 지역에 따라 쌀의 상표가 달라진다. 이 상표에 따라 쌀의 가격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사실 남한의 주된 쌀 종자는 네 가지이다. 쌀의 맛은 도정 후 시간이 지난 정도에 따라 달라지지, 토양이나 기후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남한 쌀의 주요 공급지는 호남평야, 논산평야 등 전라도, 충청도 지역이다. 이천 쌀, 철원 쌀은 단순히 공급량이 적기 때문에 가격이 높게 책정된 것이고, 호남평야의 쌀은 공급량이 많으니 가격이 낮게 책정된 것이라 한다.

   벼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직불금에 의존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정부가 책정하는 쌀 목표가격은 10년이 넘도록 큰 변화가 없다. 2005년부터 2012년까지 목표가격은 쌀 한 가마니(80kg) 당 170,083원이고, 2013년부터 188,000원이었다. 고정직불금은 100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 농민들은 목표가격을 최소한 한 가마니 당 24만원은 책정해야 한다 주장한다. 밥 한공기가 100g이니, 밥 한공기에 300원을 달라는 것이다. 쌀 수매 제도의 기원은 산업화 시절 도시 임금노동자들의 식료품 지출 비용을 줄이기 위해 쌀값을 안정적으로 책정한 것이다. 짱짱 말로는 당시에는 벼 농사만 지어도 자식을 대학교 보낼 수 있었다고, 그럭저럭 괜찮은 제도라 하셨다.


3 농산물 시장의 개방

   90년대 이전까지 전체 시장의 개방률은 70% 정도이었다. 농산물(먹거리)는 원래 국가 간 무역의 대상이 아니었다. 90년대부터 농산물 수입이 시작되면서 국산 쌀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래도 국민 정서 상 사람들이 국내산 농산물을 많이 소비한다고는 한다. 농산물 가공법이 제정되면서 수입 쌀은 떡볶이, 뻥튀기 등에 이용된다고 한다.


4 우루과이 라운드(UR) -> WTO DDA 협상 -> FTA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으로 한국 정부는 10년의 유예 기간을 두고 해 마다 쿼터를 늘려가며 시장을 점진적으로 개방하기로 하였다. 이경해 한농연 전 회장이 멕시코 칸쿤에서 할복을 하는 등 농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한국 정부는 쿼터를 늘리는 대신 유예 기간을 20년으로 연장했다. 농산물 시장 개방의 영향으로 요즘 농민들은 이른바 '도박 농사' 를 짓는다 한다. 원래 농사는 여러 작물을 동시에 재배하는데, 이 방식으로 농사를 지을 시 수익율이 높지 않기에 수익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작물 한두 가지만 정해 재배하는 것이다. 농민의 수도 감소세에 있다 한다. 90년대만 해도 전체 농민의 수는 390만 명이었는데, 현재는 200만 명도 되지 않는다 한다.


5 보릿고개

   보릿고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농민에 대한 수탈에 의한 현상이다.(자본주의 공황 삘...) 짱짱은 시대 별 농업 전체의 보릿고개를 이렇게 표현했다.


   조선시대(갑오농민운동) - 일제 식민지(토지 수탈) - 해방(토지개혁) - 전쟁 - 산업화(정부수매) - 수입 개방(급식, 외식업, GMO, 질병) -스마트팜(청년)


   시대별 식량 자급률: 70년대:80% 90년대:70% 00년대:55% 16년:49%(정말 균일한 표본이다...)


   원래 막걸리는 밀 막거리였다가 농산물 가공법에 의해 쌀 막걸리가 생긴 것이라 하셨다. 수입 쌀은 대부분 군 부대, 급식에 공급된다. 급식 제도가 만들어진 것은 농산물 시장 개방이 이루어지면서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에 급식 제도를 만들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농산물 시장 개방 이전에는 급식을 시행하려 해도 식자재를 구할 수 없으니 급식 제도를 시행하지 못 했다. 농산물 시장 개방 이후 식생활 문화도 많이 변경되었다. 미국에서 소, 돼지를 살해해 한국에 많이 수출하니 이를 소화할 고깃집, 삼겹살집이 길거리를 장식하게 된 것이다. 때 마침 맞벌이 부부의 증가와 맞아 떨어지면서 미디어에서도 비인간동물 중심의 외식을 많이 노출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는 기쁜 일이지만, 굳이 비인간동물 소비 중심으로 외식업계가 조성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식문화의 변화는 여러 질병의 대두로 나타났다. 고혈압, 심장병, 비만이 대표적인 예이다. 수입 농산물의 경우 생산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소비하면 문제가 없으나, 수출 과정에서 농약에 많이 노출된다 한다. 예를 들어, 수출용 바나나는 항상 젖어 있는 상태로 비닐에 포장되어 있다. 농약에 절여있는 것이다. 바나나를 구입할 시 바나나가 며칠 후 변색되는 것은 농약 성분이 증발했기 때문이다. GMO 밀 같은 작물은 재배할 때부터 농약에 절여 재배한다고 한다.


   산업화 시절에는 농민의 강제 이주도 종종 이루어졌다고 한다. 산업화 시절 도시에 많은 공장이 지어지고, 공단이 형성되었다. 공단이 형성될 때 중간에 농지가 끼어있는 경우에는 농지를 강제 수용하고 농민들을 몰아낸다 한다. 구로 공단의 경우, 농민들을 간첩으로 조작해 농지를 공단 부지로 확보한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