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교문을 넘다`를 읽고


고등과정 이사



   아수나로 수원지부의 인권감수성향상공부모임을 내가 준비하게 되어서 `인권, 교문을 넘다`를 읽었다. `인권, 교문을 넘다`는 교문 앞에서 멈추는 인권에 관한 고찰로, 인권이 교문 앞에서 멈추는 양상과 기제, 이의 해결 방법을 논한다. 청소년 인권 전반을 논하기보다는 학생인권을 탐구하는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학생인권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책을 읽었다.


   이 책은 1부: 학생인권의 봉인을 푸는 질문들, 2부: 학생인권 쟁점 탐구, 3부: 학생인권 논리 탐구로 이루어져 있다. 학생인권의 쟁점은 크게 신체권, 정치권, 통신권, 섹슈얼리티로 이루어져 있다. 2부의 첫 쟁점은 두발 자유이다. 두발 자유는 단순히 머리카락만의 자유가 아니다. 용모 제한은 의식의 제한이며, 학생들은 용모를 제한받음으로써 비판적 사고 능력을 잃는다. 대표적인 예가 군사 정권 시절 조선노동자들이다. 당시 중공업 노동자는 자본에 의해 매일 사업장 정문에서 깡패에게 두발 단속을 받았다. 현재 학생들이 겪는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

   두 번째 쟁점은 체벌이다. 체벌은 여전히 교육 현장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맞아도 싼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서구 국가의 대부분은 체벌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체벌이 발생할 시 강력한 사회적 규탄이 이루어진다. 한국 사회는 헌법재판소가 나서서 체벌을 정당화했으며, 정부와 교육청은 체벌을 수수방관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은 학습 당사자의 폭력에 대한 경계를 누그러뜨리며, 이는 한 사회 전반의 폭력 감수성으로 이어진다. 한국 사회가 강자에 대한 폭력에는 분노하면서, 약자에 대한 폭력의 맥락을 기각시키는 것 또한 교육 현장에서 체벌이 용인되는 상황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쟁점은 양심의 자유이다. 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쓰는 반성문은 애초에 서울, 경기, 광주, 전남에서 불법이다. 서구 사회에서 반성문은 대체로 성폭력 사건이나 고위 공직자의 과오를 해결할 때 문제 해결의 첫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가해자에게 반성문을 쓸 것을 요구하고,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했다는 전제하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기란 가물에 콩 나듯 하지만, 반성문의 본래 목적은 이러하다.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 반성문은 학생의 폭력, 잘못을 시정하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핀란드 사회의 경우, 학생이 문제시되는 행동을 할 때는 학생을 처벌하기보다는 위원회가 소집되어 이 문제를 의논하고,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구조를 바꾸려 노력한다. 구조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기를 즐기는 한국 사회답게, 반성문은 학생의 의사를 무시하고 조직의 목표를 학생에게 강요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네 번째 쟁점은 통신권이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보편적으로 침해되는 학생의 권리이다. 학생은 수업 시간이든 수업 외 시간이든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과 조직을 일치시키는 한국 사회의 보편적 사고처럼 대부분 학생은 휴대전화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

   다섯 번째 쟁점은 교복이다. 교복은 철폐되어야 한다. 이 주장은 청소년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쉬이 하지 못한 주장이다. 빈부 격차 해소, 학부모 부담 경감, 소속감 증진... 다양한 핑계로 합리화되는 교복은 제복이다. 국가는 교복을 통해 학생들을 더욱 효율적으로 통제한다.

   여섯 번째 쟁점은 `시간에 대한 권리`이다. 한국 학생들은 과도한 학습 노동에 시달리며, 이 또한 세계 1위이다. 야간자율학습 강제가 폐지되어도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학습 시간은 동일하며, 이를 바꾸지 않고서는 학생들의 학습 노동 부담을 줄일 수 없다. 학습의 목표는 첫째로 자아실현이고, 둘째로 지식 습득이다. 시장에 내놓을 인력을 양성하는 목적으로 운용되는 교육은 폐지될 때가 되었다. 학생은 자신의 일과를 자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국가는 학생의 학습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학교를 운영하여야 한다.

   일곱 번째로, 정치권이다. 학생은 학교 내외에서 정치적 권리를 침해당한다. 애초에 청소년은 참정권이 일절 없으며, 이 때문에 학생들의 정치적 의사는 사회에 반영되지 않는다. 의회 구성원 중 학생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한국 사회에서 학생은 지워진 존재이며,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정치적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섹슈얼리티이다. 나는 학교에 다닐 때 제일 의아했던 것이, 이성 교제 금지 교칙이었다. 나는 게이인데, 내가 만약 연애를 한다면 나는 처벌되는 것인가, 아닌가.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동성애 금지 조항이 없어서 나는 궁금했다. 교사에게 문의한 결과, 적당히 동성애를 하면(...) 선도위원회에 회부될 일이 없다 했다. 이처럼 청소년은 탈-섹슈얼리티의 존재로 여겨지며, 청소년이 겪는 다양한 양상의 성적 문제들은 기각된다. 청소년 비혼모 대부분은 학업을 이어갈 의사가 있으며, 국가는 이를 온전히 보장할 의무가 있다. 2009년 국가인권위 실태 조사에 따르면 비혼모 87.6%가 학업을 지속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청소년을 비성적 존재로 규정하는 것은 성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넘어 생존을 위협받는 청소년에 대한 논의를 불가하게 한다.


   3부는 학생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한다. 한국 사회에서 미성숙함은 차별의 사유가 된다. 미성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선거권을 박탈당하고, 미성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의견을 묵살당한다. 미성숙과 성숙의 범주를 사용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장애인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권리를 박탈시킨다면 지적장애인의 권리란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정녕 사회가 학생들이 성숙해지기를 바란다면, 학생들의 표현 자유를 보장해 논의의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은 보호의 대상이다. `우리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탈핵을 해야 하고, 아이들을 전교조로부터 지키기 위해 교사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청소년을 보호할 것이면 제대로 보호해야 하는데, 딱히 그러지도 않는다. `공부 중독`은 비판하지 않으면서, 게임 중독만 비판한다. 국가는 청소년의 적절한 여가 공간과 여가 비용, 여가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청소년은 성적 권리가 있으며, 섹스 토이를 사든 콘돔을 사든 이는 국가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청소년 보호를 목청껏 외치는 국가가 청소년에게 제공하는 지원은 교통비 할인과 영화 관람료 혜택이다. 진정한 `청소년 보호`는 선거 공보물의 접근성을 높여 아동도 공보물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아동·청소년의 소송권, 가족 구성권 등 다양한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금지와 통제만 남발하는 보호주의를 넘어서 호혜와 신뢰에 기반을 둔 청소년에 대한 지원을 상상할 때이다.

   교권은 위태롭다. 한국 사회에서 교권은 빨간불을 울리고 있다. 어린 것들이 감히 선생님을 때리고, 말대꾸한다. 요즘 것들은 선생이 무슨 이야기를 하여도 듣지 않으며, 선생님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이 주장 중 한국 교육노동자의 실태를 지적하는 내용은 없다. 한국의 교직 노동자는 헌법 33조로 보장된 기초적 노동권을 침해받는다. 교육 과정의 편성을 교사가 자유롭게 하지 못하며, 민주적으로 학교 운영에 참여하지 못한다. 한국 사회에서 흔히 일컬어지는 `교권`은 교사의 권리가 아닌, `교사의 권위`의 줄임말이다. 교사와 학생은 학습의 동반자이며, 협력 관계이다. 교사와 학생 모두 자신의 정치-경제적 권리를 온전히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나는 교칙에 한 번도 동의한 적이 없다. 교칙을 개정하기 위한 학모부-교사-학생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구성되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전남, 광주, 경기,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도의회에서 통과되었음에도 대부분 학교의 교칙은 개정되지 않았다. 법률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교육 실태는 바뀌지 아니한다. 인권은 민주 사회의 대전제이다. 교칙은 인권이라는 대전제 하에서 구성되어야 한다. 인권이 교문 앞에서 멈출 수는 없기에 교칙은 개정되어야 하고, 교칙이 개정되기 위해서는 학생의 투쟁을 지속 가능케 하는 민주적인 학생회가 구성되어야 한다. 노조가 노동자 독재 사회의 기본 단위이듯이 민주적 학생회 또한 학교의 기본 단위이어야 한다. 학생 인권 운동에서 교칙 개정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고, 교칙 개정 과정에서 학생 조직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권은 교문 앞에서도 멈추지만, 집 앞에서도 멈춘다. 가정에서의 청소년에 대한 폭력은 끊이지 않으며, 가정은 청소년을 보호하는 공동체가 되지를 못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법에는 "미성년자인 자(子)는 부모의 친권에 복종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동 학대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되었음에도 공권력은 가정에서 벌어지는 청소년에 대한 폭력에 수수방관한다. 학업에서도 청소년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학습의 방식을 결정하지 못하고, 친권자에 결정에 따라야 한다. 탈가정을 할 시 당장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과의 대부분을 시간제 일자리에 소진해야 하고, 이는 사회적 자본의 약화로 이어진다. 미래에도 일용직을 전전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 주변의 탈가정 여성 청소년 대부분은 성매매를 당하며 생계를 이어나간다. 가족주의를 극복하고 친권의 행사가 없어질 때, 비로소 청소년의 인권을 회복될 것이다.

   학교 안에서는 다양한 양상의 차별이 일어난다. 교사와 학생 간, 교사와 교사 간, 학생과 학생의 차별이 발생한다. 남성 청소년이 여성 교직원을 차별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일어난다. 가정의 형태에 따른 차별은 가장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차별이며, `엄마 없는 자식` `한 부모 가정`은 학생 사이에서 흔히 농담으로 사용되는 비속어이다. 성별, 성적 지향, 나이, 사회적 자본, 경제 상황, 성적, 외모에 따른 차별 등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차별은 학교에서도 똑같이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청소년 페미니스트에 대한 교사와 학생의 수위 높은 폭력이 이어지는 등 이념에 따른 차별도 증가하고 있다. 차별을 발생케 하는 구조를 없애야 한다. 성적에 따른 차별은 시험을 없애면 되고, 나이에 따른 차별은 나이주의를 없애면 된다. 사회적 자본에 따른 차별은 자본주의를 타파하면 되고, 외모에 따른 차별은 에이블리즘과 루키즘을 철폐하면 된다. 학교 안에서 차별을 없애려면 사회 전체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


   저 멀리 일제강점기의 아동운동부터, 전교조 선생님들을 지키기 위해 태동한 고등학생운동까지. 2000년대 초반의 두발자유 운동부터 2018년의 스쿨미투 운동까지. 청소년운동은 그야말로 전 영역에서 청소년들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활동을 벌여 왔다. 청소년운동은 많은 현장에서 투쟁했지만, 현장을 바꾸지는 못했다. 학습시간을 줄이지도 못했고, 청소년 자살률을 줄이지도 못했으며,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를 가시화시키지도 못했다. 몇십 년 째 같은 이야기를 반복 중이다. 그래도 청소년운동의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면 청소년의 현실은 조금이나마 달라지지 않을까? 인권이 교문을 넘을 수 있을 때까지, 청소년운동은 자신의 이야기를 지속해서 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