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토) 혜화역 부근에서 5차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시위'가 열렸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이하 불편한 용기)'로 4차 시위까지 진행한 것과는 다른 이름이었다. 4차 집회와 5차 집회 사이에 조병구 판사의 안희정 무죄 판결이 있었고, 5차 집회 며칠 전 최종범의 폭력 사건이 있었기에 편파 판결에 중점을 둔 것이다. 이날 집회는 불법촬영 범죄의 심각성을 강조하던 과거 집회와는 달리 입법, 사법, 행정 등 국가 권력의 행동을 촉구하였다. 웹하드 카르텔 특별수사 국민청원에 민갑룡 경찰청장이 특별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답변하였지만, 불법 유통 웹사이트 몇 곳이 폐쇄된 것이 전부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편파수사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될 수 없으며, 여성과 남성 중 엄중한 처벌을 받는 쪽은 남성이라 주장하였다. 국회에서 계류 중인 미투 법안은 132개이며, 이 법안들은 2년 가까이 제대로 된 심사조차 받지 못했다. 최근 4년간 불법촬영을 찍은 이의 97%가 남성이고 이 가운데 15%는 면식범이지만, 사법부는 정상참작 등 법리 오남용을 일삼았다. 5차 시위 성명서는 남성 카르텔을 깨고 여성들의 유토피아를 세울 것이라며 끝맺는다. 여성 억압을 뿌리째 뽑겠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이번 시위가 열리기 전, SNS에서 주최 측의 안내사항을 두고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불편한 용기 집회는 개인 인터뷰를 금지하고 특정 정당 지지자, 그리고 남성을 수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주최 측의 지침을 두고 '트랜스젠더 혐오'라는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개인 인터뷰는 시위의 방향과 다른 생각을 가진 참가자가 독단적인 의견을 낼 가능성이 있어 금지한 것이다. 실제로 제1 차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BWAVE)는 백남기 농민 추모를 하겠다는 사람이 몰려와 시위가 무산된 바 있다. 특정 정당 지지자의 참여를 금지하는 것도 제2 차 불편한 용기 시위에 신지예 당시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공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힌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신지예 위원장이 시위에 참여한다면 언론은 신지예 위원장의 의견에 주목하지 않겠는가. MTT 트랜스젠더, 즉 남성들의 참가를 거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불법촬영 편파수사는 가부장제 아래 성별 위계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불법촬영, 성폭력, 성차별 등 다양한 양상의 남성폭력의 피해자는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이 집회를 연 것이다. 여성들의 집회에 남성을 포함한다면 집회의 방향성은 당연히 수정될 수 밖에 없다. 타파해야 할 것은 남성폭력과 가부장제이지만, 여성의 범주 안에 남성을 포함하는, 여성이라는 기표를 지움으로써 시위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다.


   분리주의(독립주의)적 성향을 띠는 불편한 용기 시위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3세대 페미니스트들이다. 이들 중에는 여성도 있고, 남성도 있고, 트랜스젠더도 있으며 젠더퀴어도 있다. 이들은 '모두를 위한 여성주의'의 당위성을 제창하며 많은 집회를 벌여 왔다. 이러한 집회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여성'이라는 단어를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3차 불편한 용기 시위와 같은 날에 진행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시위는 여성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운동권 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헌법앞 성평등'의 집회는 50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참가했다. 이 시위의 발언문에서도 여성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집회를 기획한 사람들이 대부분 후기 구조주의 페미니스트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여성주의자라 보기 어려운 행보를 보여 왔다. 권김현영 연구활동가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성소수자 성폭력 피해자를 비난했다. 손희정 연구활동가는 소아성애는 여성 청소년의 주체성을 살리는 차원에서 세대 간 성애라 칭해야 한다 주장했다. 나영 연구활동가는 MTT 트랜스젠더들의 여성 대상 폭력에 침묵하며 이에 항의하는 여성들을 혐오종자로 몰아세웠다. 고정갑희 교수는 성매수 합법화를 주장하며, 그의 현장 실습(성매수 현장에 뛰어드는 것)으로 몇 명의 여성이 자살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A 게이 대위가 실형도 아닌 판결을 받은 것으로 기자회견까지 벌였지만, A 대위가 남군 상사의 성폭력으로 자살한 것에 대해서는 짤막한 논평 하나로 대체했다. 후기구조주의적 여성 집회의 참여자는 많아 봤자 오천 명이지만, 불편한 용기의 시위는 연인원 25만 명을 달성했다. 불편한 용기 시위의 참여자들 대부분이 이전에 집회에 참가한 경험이 없으며, 정치 참여 경험이 없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불편한 용기 시위에 참여한 모든 여성이 분리주의 여성주의를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불편한 용기가 자신의 이익을 직관적으로 요구하는 시위이기 때문에 참여한 것이다. 불편한 용기는 여성의 이해를 가장 잘 대변하며, 이에 한국 여성들은 열렬한 참여로 답변하고 있다.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 '메르스가 두 명의 20대 여성에 의해 전파되었다'라는 루머로 인해 두 여성 당사자는 신상이 유출되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두 여성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넘쳐 났다. 이에 여성들은 DC인사이드에서 '메르스 갤러리'를 만들고, 미러링을 시작한다. 남초 커뮤니티인 DC인사이드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여성혐오적 욕설들을 제재하지 않던 기존과 달리 메르스 갤러리의 게시물을 검열한다. 이에 여성들은 메갈리아를 만든다. 메갈리아는 게이와 MTT 트랜스젠더 등 남성들을 포용해야 한다는 입장과 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뉜다. 후자는 워마드를 만든다. 이처럼 2015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페미니즘이 부흥하기 시작하고, 온라인상에서 여성만의 공간을 만든다. 여성만의 공간에서는 남성의 관점이 반영되지 않은 의견과 지식이 공유되며 여성주의적 논의의 장을 형성해 나간다. 이를 바탕으로 '홍대누드남' 사건에 대한 빠른 대처가 가능했고, 1차 시위에 1만 5천 명이라는 수의 여성들이 참여한다. 5차 시위까지 이어진 불편한 용기 시위는 온라인에 이어 오프라인에서 여성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과거 여성 관련 시위가 남성 위주의 운동권과의 연대로 이루어졌다면, 이번 불편한 용기의 시위는 여성들만의 힘으로 시위를 이끌었다. 오프라인에서의 여성 공간 확보에 대해 시위 참여자들은 신선한 경험이라 말한다. 화장도 안 한, 머리가 길지 않은, 편한 복장을 한 여성들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채 같은 이야기를 내는 것. 이 자체가 기존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재의 미투 운동이 있기까지는 성폭력 경험을 증언할 수 있게 한 제2물결의 공헌이 크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격언을 만들어낸 제2물결,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196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일종의 '의식화 모임(consciousness-raising club)'을 만들어 성폭력 경험을 공유한다. 이를 바탕으로 여성억압과 가부장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워 나간다. 미 전역에 1천 개가 넘는 의식화 모임을 네트워크 삼아 전미여성협회(NOW), 뉴욕의 급진 여성들(NYRW), 레드스타킹, 뉴욕 래디컬 페미니스트(NYRF) 등의 단체를 만든다. 민권법 제정,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미스 아메리카 대회 폐지, 양성평등을 명시한 법 개정, 고용 및 승진에서의 성차별 철폐, 임신 및 출산휴가 법적 보장은 모두 이때 이루어진 것이다. 1980년대 이후 후기구조주의적 페미니즘이 확산되고, 여성 의제의 담론보다는 퀴어 담론이 발전한다. 성중립 화장실이 확산되고, 트랜스젠더의 입대가 가능해지며, 젠더 선택을 가능하게 한 것은 3세대 페미니스트들이다. 부시 정권부터 2018년까지 임신중단권이 퇴보하여 현재 미국에서는 단 4개의 주에서만 자유로운 임신 중단이 가능하다. 이 외의 주에서는 상담을 받거나, 모부의 동의를 받는 식으로 여성의 임신 중단에 제약을 둔다. (남)성폭력도 마찬가지이다. 제2물결 이후로 반성폭력 운동은 맥이 끊겨 여성의 자유를 침해하는 폭력을 저지하는 법률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번 브랫 케버노 대법관 임명이 그 결과이다. 여성해방은 여성들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조직으로만 실현 가능하다. 불편한 용기가 성공적인 예시이며, 앞으로 여성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해방을 위해 투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