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는 선행을 낳지 않는다

2번째 강연자 이선재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협력사업본부장)

 

국제구호와 협력의 현장에서 젊음을 보낸 이선재 유네스코 본부장
결연기부, 주는 자와 받는 자의 명확한 구분 속에
결연기부 우리 생각처럼 정의로울까? 정말 500원으로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을까?
지구 반대편으로 나눔의 허와 실을 들어본다

 


  


 

어떡하죠. 여러분들보다 무대에 더 관심이 쏠려서요.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께 몇 가지 사례를 말씀드려야 하는데요. 무대와 어울리지 않아서 말이에요. 오늘 저는 해외결연사례의 부정적인 면을 말씀드려야 해서 이렇게 아름다운 무대를 살릴 수 없을 것 같아 많이 아쉽습니다. 그렇긴 해도 오늘 이야기는 나눠봐야겠죠.

 

오늘의 주제는 ‘선의는 선행을 낳지 않는다’ 입니다. 우리는 좋은 마음으로 선행을 시작하지만 그 결과가 반드시 그에 부응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1대1 결연사업의 경우, 그 아이와 아이가 사는 마을에 여러분들의 기부가 선행으로 남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오늘 나눠볼까 합니다.

 

 


 

한국의 결연사업, 눈물의 마케팅

 

요즘 G20 때문에 여기저기 길거리 청소도 신경 쓰고 질서를 강조하는 등 많은 노력을 쏟고 있는데요. 의장국인 우리 한국의 위상도 높아졌습니다.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셈이지요. 그래서 한국과 가난한 나라가 관계를 맺는 가운데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단기 해외봉사 등을 많이 가는데, 그 중 하나인 결연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결연사업이란 죄책감을 파는 모금, 다시 말하면 눈물을 파는 모금이 더 적절할 듯한데요.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지만 눈물을 보여주는 형식이 한국의 결연사업방식의 주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티셔츠의 기적, 과연 어떨까.

 

한 예를 들어볼까요. 월드컵이 끝나고 할 일을 잃은 빨간 티셔츠가 수십만 벌에 이를 텐데요. 장롱에 넣어두기 보다 활용을 해보자 해서 아프리카에 보내자는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티셔츠의 기적이라고 하죠. 이처럼 헌 옷가지를 모아 보내는 방식은 한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이용되었는데요. 옷 모금함이 동네마다 눈에 띄지요.

 

옷을 보내는 것은 선의에서 시작되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운송비도 상당히 들고요. 또는 그 옷을 받는 나라에 세금을 물어야 하기도 하죠. 더군다나 그 나라의 의류산업을 망치기도 합니다. KT 등에서 25만 벌을 모았지만 이정도 분량이면 해당 지역의 옷 공장들을 충분히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을 거예요.

 

오래 전 인터뷰 내용 중에 이런 장면이 떠오르는데요. 필리핀 주민이 말하기를 옛날에는 맞춤옷을 해 입거나 수선을 해서 다시 입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모아진 옷들이 흔하게 들어오고 값도 싸기 때문에 수선업이나 옷을 제작하던 소영업자들이 금전적인 고통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보낸 빨간 티셔츠가 아프리카에 보내져 그곳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경우도 생각해야 하는데요. 옷에 쓰인 여러 문구들이 미치는 감정적 영향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폐해를 서구에서는 오래전부터 논의해온 바 있죠.

 

이처럼 헌옷 기부만 해도 어떤 경로를 통해 어느 곳으로 보내지는지 반드시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옷을 모아 보내는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추적을 해봐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이분법적인 시선, 도움 주는 나와 도움 받는 너

 

국제구호사업들을 보면 [캄보디아 우물 만들기 사업], [신생아 털모자 보내기], [망고나무심기] 등. 이제는 "돈을 낼 터이니 알아서 잘 쓰시오"가 아닌 어디서 어떻게 쓰이고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 기부자가 세세히 따져보는 게 일반화 되었습니다. 결연사업도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죠. 내가 기부한 돈의 수혜자가 누구인지 직접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사업들 말입니다. 사실 현장에서는 이 때문에 더욱 어려움이 가중되지만요.


저는 오늘 그러한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가 누구에게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과연 자기 만족인지, 혹은 눈물마케팅을 벌이고 제대로 보고하지 않는 단체의 문제인지, 아니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마구 써대는 것이 문제인지. 이처럼 현상을 구체화시키고 정리해야만 선의가 선행으로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선 이러한 방식이 비판받는 이유 중 한 가지는 후원받는 '대상아동'과 해당 나라에 관한 문제입니다. 후원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물질적으로 가진 사람이고 베풀 줄 아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인식과 함께 도움 받는 대상자들은 불쌍하고 삶이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이분법적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그러한 예를 들면 주로 매스컴에 비치는 대상자들은 저소득에 결손가정, 엄동설한에 고생을 하고 옷매무새가 지저분하고, 학습부진에 정서/대인관계 문제 등을 안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대상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아이로 만들고 그런 아이들의 상황을 이용하는 방식을 정당화 시킵니다. 요즘 큰 단체들의 홈페이지를 보아도 밝지만 어두운 면을 더 부각시키는 곳이 많습니다.

 

 

 

 

그 곳에서의 구분, 도움 받은 자와 도움 받지 못한 자

 

국제 결연사업을 하다보면, 결국 한 마을에서도 도움을 받는 아이와 그렇지 못하는 아이가 발생하게 됩니다. 해외봉사를 하다보면 지역 아이들을 모아놓고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면 유독 한 아이가 눈에 띄기 마련인데요. 자연스럽게도 그 아이와 친해지고 뭐든지 많은 시간을 함께 하게 됩니다. 한 마을에 여러 봉사단체가 찾아가는데요. 매번 그렇게 눈에 띄고 관심을 받은 아이는 다른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도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한 단체 직원분이 케냐에서 일했을 때 겪은 일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우리나라 방송이 한 아이의 처지를 취재하고 후원을 한 후부터 그 아이를 불쌍히 여겨 방을 내주었던 집주인이 방세를 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후원은 일시적일 뿐, 결국 그 아이는 집세라는 부담을 안게 되고 마는 것이지요.

 

이 사정을 알고 직원분이 상사에게 상의를 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한 아이의 희생쯤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다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모금단체들의 홍보기사나 광고를 보면 그 아이들이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긴 하지만 인격체란 생각은 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 아이는 나의 후원으로 행복해졌을까.

 

세 번째로 내가 내는 돈이 과연 어디서 얼마나 쓰이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3만원이라는 후원금 중 자신의 결연아동에게 얼마나 전달될까요? 이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사실 확인하고자 물어봤지만 자신 있게 얘기해주지 않더군요. 실은 구조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돈을 모아 지원국에 보내면 대상 아이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 보내는 등, 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현장에서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영어편지를 한국어로 번역해야하고 참으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지요. 돈이 많이 드는 사업입니다.


그런데 왜 하는가? 한마디로 돈이 되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역사회사업은 장기간에 걸쳐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합니다. 더군다나 지역사회사업은 지역주민들의 의지나 뜻에 부딪혀 괴리를 느끼기도 하고요.따라서 수공은 많이 들어가지만 아동결연사업이야말로 고정 수입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수밖에요.


미국, 캐나다의 사례를 보면 홈페이지에 아이들 얼굴을 공개하기도 합니다. 마치 홈쇼핑을 연상케 하는데요. 후원자는 만족할지 모르나 그 당사자의 입장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가난함과 불쌍함을 우리가 광고할 권리는 없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스토리를 좋아합니다. 감동을 좋아하지요. 보호자가 없거나 동생이 많은 아이들, 한국 사람들은 그런 스토리와 정서를 선호합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그런 걸 만들기를 원하지요. 또한 나와의 관계를 중요시합니다. 대상아이를 마치 자신의 딸이나 아들처럼 생각합니다. 한 예로 후원을 하고 도움을 받은 아동의 사진과 아이가 처한 스토리에 대한 감동을 홈피에 올리기도 하지요. 내가 후원하는 아이를 내 아이로 동일시하는 현상을 많이 봅니다. 과연 나 자신의 만족감이 우선시 되지는 않은 걸까요?


 

 

500원으로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을까?

 

오랫동안 단체에서 일하셨던 분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콜레라, 장티푸스로 죽어가는 난민 아동에게는 500원으로 한 생명을 살린다는 말이 맞다.  하지만 그 아이가 살아난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의식주만 해결된다고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가?"

 

저는 숫자로 사람들을 조장하는 이들을 보면 화가 납니다. 수 적인 면을 내세워 자랑하는 사람들, 이는 숫자를 정확성의 지표로 삼기에 앞서 사람을 기만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만행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부자들은 편지받는 걸 좋아합니다. 심지어 대신 편지를 쓰는 단체도 존재할지 모릅니다. 본말전도입니다. 기부를 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목적, 비전, 목표인데, 이 모든 것이 무색하게도 편지쓰기에만 주력하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저 나름의 대안을 말씀드린다면, 우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거나 그들에게 다가갈 때에는 그 전후 과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원인을 제거하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겠죠. 내가 도와줌으로써 비롯되는 변화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더 필요한 것은 없을까, 다시 예전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문제를 해결하고 해소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특정아이와의 결연보다 지역사회 차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일사일촌. 즉, 지역단위로 묶어서 지원을 하는 방법이 아이들의 변화도 유도할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사업단체에겐 윤리강령이 중요합니다. 
홍보방식 등에 대한 세세한 윤리강령을 세워두는 데에 그치지 말고 이를 제대로 준수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또한 기부자들의 역할 또한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감시가 필요합니다. 내가 기부한 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따라서 시민단체 여러분들도 더욱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저도 ODA Watch 라는 단체에서 활동 중입니다.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제대로 나눔이 실천되고 있는지 감시를 해야 합니다. 사회사업단체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존재, 즉 기부자야말로 이런 관심을 꼭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경각심이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행위, 결과, 책임인 것입니다. 만족에 그치지 말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지요. 우리 마음대로 상상해서 지레짐작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무엇보다 책임감을 반드시 가지십시오.

 


 

Q. 왜 멀리서 대상을 찾아야 하나요?
A. 저의 접근방식으로 말씀드리면 그 모든 해답은 지역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이 아니라 동네 단위, 우리 동네, 시 단위, 등등.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어려움의 원인을 생각해야겠지요. 그것이 바로 지역입니다.

 

Q. 기부자가 이성적으로 기부를 한다면 일대일결연사업이 없어질까요?
A. 이성적으로 사람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당연히 공감하고 감정적, 감성적 대응은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감정에 대한 책임을 이성적으로 끌고 가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본 기록은 2010년 11월 4일 건국대 새천년홀에서 펼쳐진 아름다운재단 창립 10주년 기념 컨퍼런스에 자원활동으로 참여해주신 여러분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재구성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속기 재능기부 이소영 님

* 사진 재능기부 엄세용 / 김민경 님

* 일러스트 재능기부 그래픽디자이너 신은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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