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페미니즘 칼럼

-여성으로써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을 때, 새롭게 보이는 세계가 있다.


지난 6, 강남역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자정을 넘긴 시간, 남자친구와 노래방에 갔던 어떤 여성은 화장실에 갔다가 기다리고 있던 범인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나는 사고 다음날 밤, 다른 여성들이 쓴 여자라서 살아남았다는 메모지를 통해 이 사건을 접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싶어 찾아보았다. 범인은 특정 여성만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여성들을 기다렸다. 여성을 혐오했고 때문에 여성을 죽이려 했다고 한다. 다른 메모지에는 자정에, 강남역 그 건물에 없었기에 살아남은 것이라고, 그 시간에 내가 거기 있었다면 죽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섬뜩했다. 한 사람이 죽은 일이 아니라 다른 어떤 누구든 죽을 뻔한 일이라고 생각과 동시에 나도 예외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뉴스에서는 아동-여성의 성폭력 그리고 살인 사건은 보도되었고, 엄마는 그 사고들을 예로 들며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모르는 사람은 따라지 말 것, 늦은 밤까지 혼자 집 밖에 있지 말 것, 너무 짧은 옷을 입고 다니지 말 것, 남자가 쫓아올 때에는 도움을 요청할 것 등등. 당연했다. 나는 어렸고, 여자였고, 성인 남성이 덮친다면 저항 못한 채 당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10대를 거쳐 나는 밖에 있고 싶을 때가 많아졌고, 짧은 옷 긴 옷 파인 옷 다양하게 입고 싶어졌고, 모르는 사람에 대한 흥미도 생겼다. 곧 나는 엄마의 걱정 어린 말들이 나를 가족 안에 가두려고 한다고 정리했다. 나는 몸도 좀 컸고, 목소리가 낮아졌고, 힘이 세졌다고 생각했다. 내게 여성이라는 글자는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고 애교스럽고 예쁘장하고 착한, 머리가 길고 치마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거기에 부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내가 스스로 정한 범주에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나는 단단하고 애교 부리지 못하고 쿨할 것이라며 여성이 아닌 존재로 나를 생각했다. 여성스럽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화가 났다. ? 내가 그렇게 약해 보여? 나는 여성임을 굳이 인식하지 않으려고 했다. 여자라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짜증나기도 했다.


강남역 사건 이후 메갈리안이 조명 받기 시작했다. 평소에 메갈리안에 대해 관심이 딱히 있던 것이 아니었고, 일베와 적대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일베가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들의 집단이라고 생각했고 메갈리안은 그에 대응해 남성을 혐오하는 여성의 집단이라고 알고 있었다. 상대와 같은 방법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더군다나 상대를 혐오하는 것이 대안이라면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고,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미러링이라는 단어를 알게되었다. 메갈리아에서 이야기하고 있던 방식은 사실 여성들이 지금까지 받아온 일상적인 혐오를 반대로, 남성에게 비추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에 대해 남성들은 반발하며 일어섰다.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방식이라면서.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그게 다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던 시선과 말들 아니었던가. 또한, 고통 받는 이에게 상대방을 생각하며 표현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은 계속 해봐야겠지만, 여론에 휩쓸려 단정짓고 배제하기 전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회가 기득권 (미래까지 보장해줄 탄탄한 직업이 있는, 몸에 이상이 없고, 이성애자인, 헌신적이 가족이 있는 스트레이트 남성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편의를 위해 희생을 강요받는 사람들이 있었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배제 당하는 소수자들이 있었다. 작업장학교의 3년동안 나는 정말 다양한 일들 속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각기 다른 상황이지만 왜 사람들이 배제 당해야만 하는지 상황을 알아보고, 곁에 함께 서려 했다. 그런데 젠더, 성에 대한 문제 그 중에서도 여성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인간이라는 범주 안에 정말 서로 다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알면서,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여성들은 이효리와 같은 신세대 히피들과 지난 날의 가부장제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급진주의적인 여성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를 그로부터 거리두려 했다. 여성으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을 때, 그때에야 비로소 여성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인식하게 된다고 한다. 젠더에 대한 공부를 할 때에도 개인적 차원의 인식은 변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문제가 있다는 것에 이해는 하지만 스스로 어떻게 살아갈 지,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깊은 고민이 없었던 탓인 듯 하다.


에코 페미니즘 학교의 강의들을 통해 나는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의 해방만을 이야기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70-80년대의 페미니즘 운동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임금평등을 이야기하며 여성해방을 외쳤다. 농경 사회를 지나오면서 자급자족하던 인간에게 18-19세기 기계화를 통한 산업혁명 이후 생산영역에 층이 생겼다. 이후, ‘생산이라는 것은, 공장에서 상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임을 이야기했다. 상품을 생산하는 것은 남성들의 노동이었고 그것은 곧, 사회적인 노동으로 인식되었다. 반면, 임신 출산 양육 돌봄 청소 등의 노동은 개인적이고 가정 안에서의 노동으로 분리되었다. 모성을 합리화 시키며 여성의 일로 정당화 시켰다. 당시 여성들은, 페미니즘 운동을 통해 노동 시장으로 나갔다. 그렇게 문명 그리고 인간은 자연과 분리되어왔다. 그 과정에서 여성은 문명에 포함되지 않았고 그렇게 자연과 여성이 동일시 되었다. 문명은 모든 것이 정확하고 깨끗하고 잘 다듬어진 반면, 자연은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문명은, 남성은, 자연을 개발하고 착취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왔다.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잉태하고 낳는 것을 자연스러운, 모성에 의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남성의 대를 잇게 하는 매개로 자궁을 대상화하고 사용했다. 그렇게 문명과 도시가 생성되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우리는 모두 일을 하고 돈을 번다. 그 돈으로 옷을 사고 음식을 사고 집을 산다. 우리는 무언가를 사기 위해 돈을 벌고 일을 한다. 그리고 감정을 산다. 애인을 사고 아이를 사고 청소가 되어있는 깨끗함을(그 일을 해줄 노동자를) 돈을 주고 산다. 서로를 돌봐주던 공동체적인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만을 돌보던 것을 넘어 이제는 내 돌봄을 누군가로부터 받는다. 사회적인 계층의 가장 아래에,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고용된다. 소비를 할 수 밖에 없는 소비자들과, 돈이 필요한 노동자들 서로를 위한 것처럼 꾸며지지만 사실은 노동자들이 고용되어 있고 소비자와 연결해주는 기업이 가장 큰 수익을 벌어들인다. 김현미 교수님은 강의를 통해 노동의 재개혁 없이, 자연과의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 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노동은 소비를 위한 것이고 그것이 바뀌기 힘들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에코 페미니즘을 배우며 지금 이 시대에는, 돌봄이 정치화-사회화 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우리는 스스로 돌보지 않아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감각을 잃는 경우가 많고, 혹은 개인이 스스로 했어야 할 돌봄이 아웃소싱 되어 제 3세계의 여성들이 돌봄을 맡아서 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돌봄이 필요하다. 그 돌봄이 정치화 될 상황의 하나의 예로, 나는 시민배당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스무살이 되고 사회로 내던져 질 청소년들이 있다. 그 속에 나도 있다. 나는 조금 불안하다. 당장 내일 무엇을 하지, 그래서 내년 그 다음해에는 무엇을 하지? 하는 고민에 나는 불안할 것이다. 시간이 없다며 촉박해 할 것이고 답이 나오지 않으니 어렵고 속상할 것이다. 이런 우리에게 사회에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돈을 주는 거다. 나는 세월호 사고 이후 국가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국가를 상실했다고 생각한다. 나뿐만 아니라 문명을 개발해내는 동안 우리의 식량을 책임져온 농민을, 같은 시간을 살아온 내 또래들을이 보호받지 못했다.  매달, 우리에게 배당이 주어진다면 일단 불안한 마음이 조금은 사라질 것 같다. 사회 안에서 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더 편안한 마음으로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해방이 어떻게 우리의 전환이 될 수 있을 지 친구들과 같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