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기업 트러블래스 맵에서 나나는 자신한테 반말하는 상사를 들며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계급에 대해 말했다. 회사에 말하고 싶은 게 있어도 벽이 있는 느낌에 말을 꺼내기 힘들어진다는 말. 이에 대해 로드스꼴라 떠별들이 깊이 공감한다는 게 재미있었다. 우리나라가 윗사람에게 의문표출과 코멘트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말이 생각났다.

어디에서든 야근 문제는 있는데, 회사가 금전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 야근을 하게 된다. 여유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야근이 좌지우지 된다고 아키는 말씀하신 것 같다. 회사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저것이 이해가 되고, 회사를 존중할 수 있지만 신뢰가 없으면 굉장한 모멸감이 들고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는다.

나도 학교에서 준비할 것, 연습할 것, 만들 게 있어서 학교에 늦게까지 남은 적이 많다. 아예 수업이 있는 날도 있고. 다큐를 만들 땐 거의 매일 밤에 갔고 마감 때는 11시 넘어서 학교를 나왔다.
충돌이 많다. 힘들어도 내가 뭔가 해보겠다고 여기 있으면, 내가 할 마음이 있다면 마음 내서 해야하는 게 아닌가? 그 균형을 맞추는 게 어려웠던 것 같다.
어디까지 공적인 거고 어디까지 사적인 건가? 학교에 있으면 공적이고 집에 있으면 사적인가? 그 차이는 아닌 것 같은데.

"희생"이라는 단어가 기억에 남는다. 시로가 말하길 회사를 위해 희생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가부장적인 언어표현이 있었다고 한다. 내가 혹 내 영상과 영상팀, 학교의 번영을 위해 희생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지 돌아보게 했다. 그런 적은 없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고, 밤까지 할 마음도 있어서 나는 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못 유니온에서 오신 분의 말씀도 인상적이었다. 일 못하는 사람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은, 일에서 빠져나왔을 때 관찰자의 시점으로 일을 비판할 수 있다.
일 못하는 게 내 책임이 아니라 회사의 책임이라는, 자괴감과 불안을 회사에서 조성해서 야근을 하게 되는?
야뜨질도 모임을 만들고 회사 밖으로 나오고서야 회사를 비판할 수 있게 되는 게 비슷한 것 같다는 얘기. 안전하고 여유로운 공간이 생겼을 때 그제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시로는 야근대신 뜨개질에서 "야근"은 경쟁사회의 바쁜 삭막함, "뜨개질"은 반대되는 느린, 따뜻한 다른 방식의 일상을 말한다고 했다.
뜨개질 모임에서 시작된 세월호 부스와의 연대, 나나와 노동권을 공부하는 사람들 등, 뜨개질의 보이는 이미지가 한몫 한 것 같다. 실뭉치와 이것저것 엮이는 모습이 연대의 이미지와 비슷하다고 생각됐다. 그런 맥락에서 뜨개질은 실로만 하는 게 아니라, 삶을 엮는 거란 말이 인상적이었다.

너무 많은 얘기가 나와서 정리가 잘 안 된다. 맥락에서 생각하라고 했는데, 사회와 시민의 맥락으로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하자센터의 판돌들은 임금이나, 시간문제로 갈등이 있을까 궁금하다. 옆에서 보기에는 정말 하고싶은 게 있어서, 지치지 않고 하자! 즐겁게! 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안은 트러블래스맵처럼 어떨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