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후보에게…“사과를 바라지 않겠습니다”

한겨레 | 입력2012.09.21 20:00 | 수정2012.09.23 13:50

기사 내용

[한겨레][토요판] 한홍구의 유신과 오늘


⑭ 인혁당 사건


역사의 판단에 맡긴다는 말은
전봉준이 형장에 끌려갈 때나,
형틀에 묶인 윤봉길이
일본군의 사형집행 직전에나
떠올릴 만한 말입니다
아버지 죄 갚지 않아도 됩니다
사과를 바라지도 않겠습니다
인혁당 유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세요
상처에 소금을 뿌리진 말아요


지난 며칠 세상이 시끄러웠습니다. 시끄러운 세상만큼이나 제 속도 시끄러웠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이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마침 <한겨레>에 제가 연재하고 있는 '유신과 오늘'에서 박 후보께서 새삼 거론하여 논란의 대상이 된 인혁당 사건에 대해 쓸 차례였습니다. 인혁당에 대해서는 전에 <한겨레>에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를 연재할 때 1차사건 2회(2010년 4월19일, 26일치), 2차사건 1회(2009년 8월11일치)를 쓴 바 있기에 또 쓰는 것을 망설였습니다. 그러다 후보님의 최근 발언 덕분에 박 후보께 드리는 공개장이라는 형식을 빌려 써볼까 합니다.

다케시타 노보루의 그 말을 기억하십니까?

후보님께서는 5·16과 유신에 대한 시비를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하셨지요. 그 한마디 말씀에 참 여러 가지 결이 다른 감정과 생각이 솟아올랐습니다. 먼저 든 생각은 그 대사는 후보님 같은 생을 살아와 현재의 위치에 서 있는 분이 할 얘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비슷비슷한 말이 많이 있지요. 역사가 알아주리라, 역사가 우리를 기억하리라, 역사에 어떻게 남는가 보자, 후대의 사가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제 직업이 역사를 공부하는 것인지라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요, 이런 말을 하고 사라진 분들, 혹은 이런 말조차 남기지도 못하고 사라진 분들이 서 있던 위치는 후보님이 지금 서 계시는 위치와 사뭇 다릅니다. 역사의 판단에 맡긴다는 말은, 그래도 역사를 한 40년 공부해 온 제가 느끼기엔 이렇습니다. 그것은 형형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세상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전봉준이 형장에 끌려가며 할 만한 말입니다. 몸은 비록 가나자와 육군형무소의 형틀에 묶여 있지만 마음만은 조선의 하늘을 날았을 윤봉길 의사가 일본 헌병들의 '사격 준비' 소리를 들으며 떠올렸을 말입니다.(아, 그러고 보니 이번 대통령 선거 날 꼭 80년 전이 윤봉길 의사가 처형당한 날이군요. 그날 전 윤봉길 의사께 투표할 겁니다.) 32년 전 5월27일 새벽 광주에서 거리의 소년, 배달의 기수들이 이제 죽어 자빠지면 돌봐줄 가족도 없다며 목욕하고 속옷 새로 사 입은 뒤 도청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다가오는 계엄군을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했을 생각입니다. 캄캄한 새벽, 아직도 자고 있는 같은 방 재소자들을 행여 깨울까봐 발꿈치 들고 조심조심 감방을 나와 사형당한 인혁당 사형수, 유언마저 조작당한 그 인혁당 사형수가 남겼을 만한 말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역사의 판단이 아니라 우선 자기 시대의 민중, 당대의 민중들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겁니다. 사람들이 물어본 건 5·16과 유신에 대한 후보님의 견해이지 후세 역사의 판단은 아닙니다.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말을 듣고 몸서리쳐지게 분노했던 기억도 새삼스럽게 납니다. 1989년 1월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려 63년 동안 천황의 지위에 있었던 그도 결국 세상을 떴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모진 짓을 했기로서니 26㎏의 찌그러진 몸으로 세상을 떠난 89살 노인에게 왜 조금이라도 연민의 정이 없었겠습니까만, 그런 연민의 정을 가질 겨를도 없었습니다. 당시 일본 총리 다케시타 노보루가 국회에서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과 관련해서 그 전쟁의 성격에 대해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했거든요. 동의하십니까? 이런 걸 우리는 망언이라고 부릅니다.

잘 믿지 않으실 것 같지만 저는 후보님이 '박정희 딸'이라서 안 된다는 주장에 단호히 반대해 왔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딸'이라는 이유로 후보님의 능력이나 잠재적인 가능성을 얕잡아 보는 견해에 대해서도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해 왔습니다. 후보님의 아버지에 대해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날선 비판을 해온 제가 후보님을 지지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제가 '박정희 딸'이라서 안 된다는 주장에 단호히 반대해온 것은 수십만 민중이 '빨갱이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이 땅에서 연좌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5·16까지는 몰라도 유신에 대해서는, 적어도 유신의 후반부에 대해서는 후보님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후보님이 유신정권의 퍼스트레이디였다는 점에서 그런 주장이 무리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저는 심정적으로 유신 자체로 후보님을 공격하고픈 마음은 없습니다. 어머님의 피격 사망이란 비극을 겪으며 황망하게 그 자리에 서게 되신 거니까요. 그리고 딸에게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가 범한 국가폭력과 헌정질서 파괴의 범죄 행위를 비판하라고 다그치는 것도 점잖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딸이 공인이 아닌 사인의 위치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따님은 모르는 아버지 이야기

지금 후보님은 이 나라의 명운을 최소 5년간 짊어질 중요한 자리를 놓고 승패를 겨룰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헌정질서와 헌법에 담겨 있는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책무가 있는 자리에 도전하는 공인이라면 아버지와 딸이라는 사사로운 관계를 넘어 1960년대와 1970년대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에 대한 책임 있는 평가를 요구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5·16과 유신에 대한 후보님의 견해를 묻는 이유는 딸에게 아버지의 지난날의 행위에 대한 견해를 묻는 사적인 질문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동일인에 의해 두 차례나 헌정질서가 유린당한 불행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한 번은 나라 지키라고 준 총을 거꾸로 든 군사반란으로, 또 한 번은 "국헌을 준수하겠다"는 선서를 한 대통령의 신분으로 자행한 친위쿠데타로 인해 대한민국 헌법은 철저히 유린당했습니다. 후보님은 여러 차례 5·16과 유신은 불가피했다고 말해 왔습니다. 5·16이 불가피했다고요? 5·16은 육군 소장 박정희가 집권하기 위해 불가피했을 뿐입니다. 유신이 불가피했다고요? 유신은 이미 3선을 한 박정희 대통령이 영구집권을 하기 위해 불가피했을 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후보님 선친의 행적을 옹호해 온 조갑제 기자조차 유신은 느닷없이 선포되었다고 썼습니다. 국헌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5·16은 군 형법상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행위이고 그 "수괴는 사형에 처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사형제에 반대하지만, 군 형법은 군사반란의 수괴에 대해서는 무기징역도 없는 사형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유신이 범한 죄는 형법상의 내란죄입니다. 당시 형법은 친절하게도 제91조에서 '국헌문란의 정의'를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이라 하고 있습니다. 형법은 그 수괴에 대해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후보님께 묻는 것은 1961년 5월16일과 1972년 10월17일 후보님의 선친께서 취한 행동이 위의 규정에 해당하는가 여부입니다. 혼자서 멋대로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이런 짓 저지르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이런 국헌문란 행위를 구국의 결단이라 합리화하는 사람은 다시 이런 범죄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그런 사람은 21세기 민주국가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누구보다도 후보님은 헌법질서와 헌법적 가치를 강조하며 노 대통령을 비난했습니다. 1961년 5월16일과 1972년 10월17일 선친께서 취한 행동을 그 잣대로 재도 불가피한 구국의 결단입니까? 우리는 이중잣대의 문제를 여쭙고 있는 겁니다.

따님으로서 후보님은 아마 박정희 대통령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잘 아는 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부디 후보님이 박정희 대통령의 모든 것을 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를 포함하여 이 세상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어느 부모가 자식을 속속들이 다 알겠으며 어느 자식이 또 부모의 삶을 온전히 안다고 하겠습니까. 따님은 모르는, 어떤 경우에는 따님만 모르는 아버지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어찌하다 보니 제가 그런 이야기들을 전문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논란이 되었던 인혁당 사건. 2004년 11월 국정원 과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을 때 저는 그 위원회의 말석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때 7대 우선조사 사건을 선정했는데 하필이면 제가 인혁당 사건에 정수장학회 사건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건에 대해 제가 남들보다 조금 잘 아는 편입니다. 매우 불편하시겠지만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는 후보님께서도 꼭 아셔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 3월 후보님께서는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희생된 분들께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져왔다며 사과의 뜻을 표하셨습니다. '본의 아니게'란 표현이 너무나 마음에 걸렸습니다. '본의 아니게'라뇨? 무지의 소치입니까, 아니면 작심하고 역사를 왜곡하시려는 겁니까? 1975년 2월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에서 승리한 박 대통령은 인혁당 사건과 반공법 위반자를 제외한 구속자를 석방했습니다. 선친께서는 이 조치로 반유신운동이 잠잠해지길 기대했으나 석방자들이 개선장군 대접을 받으며 고문조작을 폭로하자 분노와 초조감에 싸여 보복을 준비했죠. 2월21일 문공부 연두순시에서 선친께서는 석방 인사들이 개선장군 대접을 받는데 중앙정보부, 법무부, 문공부는 뭐하냐며 크게 화를 내셨죠. 인혁당은 간첩이 만든 지하당이고 이들의 내란음모 행위는 긴급조치가 아니더라도 국가보안법으로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말입니다.(그 간첩이라는 게 실은 남파간첩이 아니라 북파간첩이더군요.) 문공부 회의실에서 어찌나 큰 소리로 질책했는지 마이크를 켜지 않았는데도 문밖에서 기자들이 그 소리를 다 들었다고 검열 심하던 그때 신문에도 났습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희생되었다고요? 후보님, 이는 확실한 본의, 아니 확실한 살의였습니다.

요즘, 1989년 후보님께서 10년 만에 처음 하신 텔레비전 인터뷰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김형욱을 청와대 지하실로 잡아와 선친께서 직접 처형했다는 루머를 부인하면서 후보님은 "아버님은 인명을 중시하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죠. 인혁당 사건에도 적용되는 말일까요? 후보님께서 이렇게 반응하셨다면 그것은 인혁당 피해자들이 확정판결 18시간 만에 사형당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25살의 박근혜 양이 "그럴 리 없다. 아버님은 인명을 중시하는 분이다. 잘못된 소식일 것이다"라는 식으로 반응할 때뿐이지,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는 재심 판결까지 난 마당에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닙니다. 후보님이 아는 아버님과 역사적 사실로서의 아버님이 다를 수 있는 대목입니다. 10·26 사건의 발단이 된 것도 대규모 시위가 발생할 경우 발포 문제였습니다. 10·26 사건은 후보님과 가족들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비극이었습니다. 대규모 유혈사태야 반드시 막아야 했던 것이지요. 역사의 판단이 필요하다면 바로 이 대목일 것입니다. 그것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결단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길은 있었는지….

<뮤직박스>의 그 여자, <여인천하>의 그 대사

후보님께서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사논쟁 그만두고 민생을 이야기하자고 하셨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7월10일 민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정수장학회 특강의 결론에서 저는 정수장학회 문제가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나 민주당의 대선 승리에서 결정타가 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고 얘기했습니다. 이 문제는 저 같은 사람이 열심히 할 테니 적당히 도와만 주시고, 당은 전력을 다해 민생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를 정말로 바라는 사람이 인혁당 유가족일 수 있다는 생각은 혹시 안 해보셨는지요? 트라우마란 말이 있지요. 부모님을, 그것도 따로따로 총탄에 잃은 후보님께서도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계실 것이기에 역지사지의 심정을 가져주시기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지워지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그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부터, 그 고통스러운 과거로부터 정말로 벗어나기를 기원하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얼마 전 광주에 트라우마센터를 짓는 일에 조금 관계한 적이 있습니다. 트라우마센터를 지어야 한다고 악을 썼지만, 30여년 전의 트라우마가 치유될 수 있는 건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오랜 세월 굳어버린 트라우마가 치유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더 악화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지요. 트라우마센터 지으면 뭐하나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아직도 아물지 않고 진물이 흐르는 그 상처에 후보님처럼 소금을 뿌려댄다면 말입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치유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상처에 소금 뿌리지는 말아주십시오.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피해자에게 악플만 달아도 범죄가 되는 세상입니다. 아버지가 지은 죄를 대신 갚으라는 말 하지 않겠습니다. 역사에 대한 범죄만은 저지르지 말아주십시오. 그것이 인혁당 연쇄살인사건의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조차 요구하지 못한 채 살아온 유가족들에 대한 예의입니다.

혹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뮤직박스>라는 영화를 보셨는지요? 나치전범으로 몰린 아버지를 위해 우리 아버지가 그럴 리가 없다는 굳은 믿음으로 사력을 다해 무죄 판결을 받아낸 변호사 딸. 그러나 마지막 순간 뮤직박스에서 경쾌한 음악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증거 사진에 딸은 자기 손으로 무죄 판결을 받아낸 아버지를 고발하는 편지를 씁니다. 저는 후보님이 아버지를 고발하는 그런 딸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사과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몇 년 전 <여인천하>의 중전마마 대사를 빌려 딱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그 입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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