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만 볼트 '벼락' 맞은 할머니..."개 끌듯 끌고와"

[기획- 원전을 버리자③] 송전탑 반대 시위 벌이는 청도군 삼평 1리

12.10.27 10:42l최종 업데이트 12.10.27 11:20l 김병기(minifat)

대선을 맞아 <오마이뉴스>와 녹색당은 원자력 발전 등 국가 에너지 정책 전환을 화두로 던집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적으로 원전 찬반 논란이 뜨겁습니다. 한국에서도 고리와 월성 원전에서 고장사고가 자주 발생해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기획 '원전을 버리자'를 통해 안전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을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원전 문제는 우리 일상, 그리고 미래와 관련이 깊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제안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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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청도 삼평 1리 앞산에 세운 송전탑.
ⓒ 김병기

정둣세 할머니(88)는 졸지에 34만5천 볼트 '벼락'을 맞았다. 20세 때 경북 청도군 삼평1리로 시집와서 한평생 농사만 지어온 그는 발을 동동 굴렀다. 주먹을 쥐고 허공으로 내뻗지만 손목은 초등학생처럼 가냘프다. 그래서일까? 황토 빛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눈가에는 결기인지 서글픔인지 모를 물기가 잠시 내비쳤다 사라졌다. 

"나는 이거 붙들어놓고 죽을 거다. 우리 땅, 진짜로 지킬 거다. 지킬 수 있다. 우린 지켜야 한다."

할머니의 손짓발짓이 절규처럼 느껴진 건 불과 50m 앞에 세워질지도 모를 110m 송전탑과의 싸움 때문이다. 신고리 원전에서 생산할 전력을 대구 도심으로 공급하려고 세우고 있는 북경남 노선 송전탑 건설을 결사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분신사태까지 불러온 경남 밀양의 송전탑과 연결되는 노선이다.   

송전탑에 맞선 '할머니 부대'

정 할머니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옆에서 "맞다" "우리도 지킬 거다"라고 추임새를 넣는 열 명의 할머니들이 있었다. 그들은 농산물을 저장할 때 쓰는 녹색 플라스틱 박스 위에 앉아서 기자와 마주한 정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평균 연령을 물어보니 75세다. 평생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다. 정 할머니의 맨손 전투력과 비교할 때 오십보백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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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전탑 설치를 반대하는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주민들과 주민들을 응원하러 온 청년녹색당 당원들이 사진을 찍었다.
ⓒ 조정훈

이들은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를 지나는 902번 국도변에 농성천막을 쳤다. 2-3명의 할머니들이 번갈아가면서 불침번을 선다. 한 달 전부터 릴레이 단식도 벌인다.  

"한 끼 굶는 거? 그거 식은 죽 먹기지. 우린 밥 먹듯이 굶어.(웃음)" 

삼평1리 할머니들을 만난 건 지난 19일 점심때다. 서울 양재역에서 기자를 태운 녹색당의 승용차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추풍령을 넘었다. 10여m 높이의 전봇대가 차창 밖에서 무성영화 필름 돌리듯 지나갔다. 전봇대는 경부고속도로와 반대방향으로 치달리면서 울긋불긋한 가을산 단풍을 가로막았다.  

경북 김천쪽 도심을 통과하는 구간에 이르니 전봇대가 촘촘해졌다. 구미, 칠곡 구간에 접어들자 키가 훌쩍 큰 '괴물' 송전탑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먼 산을 바라보니 송전탑이 도깨비 뿔처럼 산 속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면서 수없이 목격한 송전탑. 한 개의 괴물이 먹어치우는 산림 면적은 200여 평이다. 전국에 박힌 송전탑은 국가 기반시설이라는 이유로 그 숫자조차 모른다. 다만 2001년 이후에 건설하는 규모만 알 수 있다. 당시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한전은 전국에 41개의 송전선로 사업을 추진했다. 그 길이를 모두 합치면 645㎞이다. 송전탑 개수만 1600개다. 얼마나 많은 산을 허물어야 할까? 이 괴물은 사람의 삶도 송두리째 삼키고 있었다. 

마사다 전투... "완전히 내 몸을 뿌셔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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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평1리 주민인 이차연 할머니가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다 용역들에게 끌려나왔던 당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조정훈

5시간여를 달려 찾아간 삼평 1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아직 전선줄을 걸치지 않은 흉물스러운 송전탑 세 개가 도로 양쪽에 버티고 있다. 송전탑 아래를 보니 붉은색 황토 흙 맨살이 드러났다. 승용차는 도로 옆에 쳐진 허름한 천막 앞에 섰다. 

마중 나온 할머니들은 활짝 웃었다. 그런데 왕복 2차선 도로 앞쪽 논바닥에 널브러진 굴착기는 치열했던 전투를 말해줬다. 모세의 기적처럼 논바닥은 4-5m 넓이의 흙길로 두 동강 났다. 양쪽으로 야물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송전탑을 건설하려고 강제 수용한 논이다. 시공사는 지난 7월 3일 아침에 굴착기를 몰고 벼를 짓밟으면서 기습작전을 벌였다.

    
"바로 저기가 '마사다 전투'가 벌어지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로마에 항전해 최후까지 싸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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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전탑을 설치하기 위해 산을 파헤쳤다. 이곳에 345KV용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이다. 삼평1리 주민들은 송전탑 설치를 강력히 반대한다.
ⓒ 조정훈

이곳 주민인 김미화 목사(47)는 손가락으로 송전탑 23호기 공사장을 가리켰다. 산사태를 막으려고 파란색 비닐 포장을 군데군데 덮어 놔서 볼썽사납다. 공사장에 함께 올라간 이차연 할머니(75)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날 난 여기부터 저 아래 논바닥까지 질질 끌려 내려왔어. 개 끌듯 끌고 내려왔어. 얼마나 분한지. 완전히 내 몸을 뿌셔버렸어."

어림잡아 50m정도다. 가파른 산비탈이다. 지난 7월 5일 시공사인 (주)동부건설과 서광이엔씨 용역 50여명이 연좌농성을 하던 할머니 10여 명을 포위해 무력 진압했던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실신했고, 뇌출혈을 일으켜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렸다. 

"다섯 명이고 여섯 명이고 우리 몸을 노끈으로 묶어서 그 놈들이 다시는 끌고 내려오지 못하도록 할 거여. 우린 굴착기 밑에도 들어갔어. 죽기살기로 여길 지켜야지."

"세상에! 무덤까지 파헤쳤다"

공사장 바로 밑에서 벼농사를 하고 있는 배성우(66)씨도 손가락으로 한 귀퉁이를 가리키며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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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평1리 배성우씨가 훼손된 산소 위치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 조정훈

"저 놈들은 여기 있던 무덤까지 파헤쳤어. 세상에! 추석 전에 3명의 사람들이 벌초하러 왔다가 산소를 못 찾고 돌아갔는데 확인해보니 남산 3리에 사는 최아무개 장모님 산소야. 그냥 뭉개버렸어." 

이와 관련 한전 대구지사 황성하 차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다른 말을 했다. "묘지 주인이 위치를 잘못알고 있다"는 것. 그런데 최아무개씨의 처초카인 도용훈씨는 "지난 추석 전에 벌초하러 왔다가 1시간동안 헤매고 돌아갔다"면서 "20년동안 벌초를 다녔는 데 산소 위치를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고 말했다.    

배씨는 이 동네에서 선하지(송전선이 지나가는 땅의 좌우 3m 지역) 보상 대상인 3명 중의 한명이기도 하다. 시공사 측은 그에게 300만원을 제시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700만원을 더 얹어주겠다고 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팔 수도 없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는 땅이 되었다"면서 "돈도 필요 없으니 자식들이 퇴직하면 이곳에 와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 

할머니들과 용역들의 전투가 벌어지는 삼평1리는 이미 7기의 송전탑으로 포위됐다. 뒷산의 23호기가 세워지면 앞산의 22호기에 초고압전선을 연결해 마을을 가로지를 수 있다. 송전선은 이 마을의 논과 밭, 과수원을 지나며, 심지어 30~40m 떨어진 곳에 가정집도 있다.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한 이유이다.   

그래서 이곳은 한전이 청도군에 설치하려 했던 41개 송전탑 중 유일하게 공사를 하지 못한 구간이다. 한전으로 볼 때 여기를 함락하지 못하면 전선까지 얹은 일부 송전탑을 철거하고 송전선로도 변경해야 한다. 주민들은 고압선 700m를 땅 속으로 묻어달라고도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전 대구지사 황 차장은 "하천과 논밭 밑을 터널식으로 뚫어야 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지만 지형적인 여건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18장의 주민의견서 중 10장이 위조"
         
삼평1리에는 45가구가 산다. 이중 15가구가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에 적극 뛰어들었다. 송전선로에서 가까운 지역의 사람들이다. 한전 측이 '떡고물'(1억7천만 원의 지역 지원 사업비)을 내밀자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다. 김춘화(66)씨는 "한전이 돈으로 주민들을 이간질 하고 있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송전탑은 지역 공동체도 허물고 있다. 

이 마을 주민 13명은 지난 7월20일 (주)서광이엔씨 현장 소장으로부터 '통고서'를 받았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사를 하는 데 주민들이 방해해서 작업이 늦어졌고 2억 9700만 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는 것. 조만간 손해배상 등 구상권을 청구할 예정이라는 경고장이다. 정둣세 할머니는 "마을회관에서 한번 (통고서를) 쳐다보고 버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장소장의 말처럼 이 사업은 적절한 절차를 거쳤을까? 한전 측은 2006년 1월에 주민설명회를 했고, 18장의 '주민의견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의견 수렴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열린 주민설명회에는 이 마을의 유지 3-5명 정도만 참석했다. 다른 주민들은 주민설명회가 열리는 것도 몰랐다. 그나마 18장의 주민 의견서도 논란거리다. 

"각북면에 15개 마을이 있는 데 다른 마을에서 낸 의견서는 없고 우리 동네에서만 18개의 의견서가 들어갔다. 이중 10장은 글씨체가 똑같아서 파악을 해보니 마을회관에 비치된 주민들의 도장을 도용한 것이었다. 이 사실은 당시 이장도 고백했다. 또 4장은 2009년에 공청회를 한다고 해서 동의한 주민들의 의견서인데 이를 2006년에 제출한 것으로 위조했다." (이은주 마을 부녀회장) 

주민들은 당시 의견서를 제출한 전 이장을 지난해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발했다. 대구검찰청은 증거불충분으로 '혐의 없음'(공소권 없음) 처분을 했다. 고소인들은 대구고검에 항고했지만 기각했다. 그런데 대구검찰청이 불기소처분을 한 이유는 이 의견서의 위조 여부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2006년 3월에 작성된 것이어서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또 당시 송전선로 도면 등을 주민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데 이 절차를 생략한 3명의 공무원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이 역시도 검찰은 불기소 처분했다. '업무가 미숙해서 조치사항을 이행하지 않았을 뿐 고의적으로 업무를 포기, 방임한 사실을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송선선로 결정의 원인무효를 주장하고, 검찰 처분을 불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이 건에 대해 재정신청을 했다. 

괴물 송전탑을 만든 건 '무소불위' 전원개발촉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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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권-원전단지 양극화와 765KV 초고압 송전
ⓒ 녹색당+

삼평1리에 난무하는 폭력과 고발, 회유와 경고장. 평화롭던 마을이 이처럼 극한으로 치닫는 직접적인 원인은 '전원개발촉진법'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송-변전시설을 건설할 때 지식경제부의 허가만 얻으면 개인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있다. 또 전기사업자가 산업자원부 장관의 승인만 받으면 환경법, 산림법 등 19개의 관련 법률들이 규정하는 허가 절차를 밟은 것으로 인정한다. 해당 지자체와는 상의 없이 송전탑을 세울 수 있다. 무소불위의 법인 셈이다. 

그래서 국민권익위원회도 지난해 12월 고압 송전선로가 지나면서 생기는 분쟁과 민원을 해결하려고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에 개선안을 권고했다. 송전선로 경과지역을 선정할 때 지방자치단체장도 협의 당사자로 인정하고, 지역 주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라는 것이다. 또 입지선정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선하지 보상의 범위 등을 차등화하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근본 처방은 아니다. 대형 원자력과 화력발전소 중심의 전기 공급 체계를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신사태까지 치달았던 밀양 사태 등 송전탑 싸움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승수 녹색당+공동운영위원장은 "신고리 원전에서 전기를 끌어가려고 청도와 밀양에 송전탑을 세우는 것"이라면서 "송전탑을 반대하던 주민들도 나중에는 원전 반대 입장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생 에너지 산업의 발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전력 소비가 증가한다는 전제만으로 신고리 원전 3-4호기 공사가 진행 중이고, 이후에 5-6호기도 추가 건설할 계획을 하고 있다"면서 "추가 원전 공사를 중단하면 송전탑 문제는 저절로 풀린다"고 말했다.

대낮같은 밤에 떠오른 얼굴

청도 송전탑 취재를 마치고 경부고속도를 타고 밤 11시경 서울 시내로 진입했다. 졸음에 취했다가 깨어났더니, 차창 밖은 대낮같은 밤. 곳곳에서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번쩍였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다. 청도 할머니들은 천막 속에서 불침번을 서려고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10년 전 삼평1리로 귀농해서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 이은주 부녀회장의 말이 맴돌았다.     

"9살 난 딸이 얼마 전에 느닷없이 '난 포클레인 기사가 될 테야. 그래서 철탑을 허물어버릴거야'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조그만 게 얼마나 안다고……. 그런데 요즘에는 '나는 철탑을 갈아먹는 로봇을 만들 거야'라고 말해요. 나 원 참……." 

할매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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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당+가 청도 할머니들에게 전달한 손엽서
ⓒ 김병기
이날 녹색당+은 청도 삼평1리에 도착하자마자 조촐한 행사를 열었다. 천예지(25) 청년당원의 제안으로 만든 '응원 손엽서' 전달식. 녹색당 재창당 행사에 참석한 당원들과 일부 대학생들이 만든 50여장의 응원문구를 예쁘게 코팅해서 할머니들에게 전달했다. 

'할매 힘내요' '정작 전기는 저희가 다 쓰는 데 청도 주민 여러분들께서 이렇게 고생을 하셔야 되는군요... 죄송합니다. 엽서 나부랭이 한 장으로 힘내시란 말밖에 못 드려서 역시 죄송합니다. 힘내십시오!'

천씨는 "얼마 전에 밀양에 갔다가 청도를 방문한 적이 있는 데 자꾸 할머니들이 눈에 밟혀서 당원과 대학생들을 상대로 손엽서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1차로 수거한 50여장을 가져왔다"면서 "제 고향 명물인 삼천포 쥐포 한 봉지도 가져왔다"고 말했다. 

잠시 현장 취재를 마치고 천막으로 돌아갔더니 그 사이에 고이지선 녹색당+ 탈핵탈토건본부 활동가, 이안홍빈 청년위원장 등이 달라붙어서 50여장의 손엽서를 가을운동회 만국기처럼 천막 주변에 주렁주렁 매달았다. 힘없는 할머니들만 '괴물' 송전탑에 맞서고 있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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