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법적인 문제는 전혀 없다 / 김중미
한겨레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법적인 문제는 전혀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이 사립중학교인 영훈국제중에 사회적배려대상자로 입학했다는 게 알려지자 서울시교육청이 내놓은 말이다.

국무총리 후보자의 두 아들 병역 문제도 법적인 문제가 전혀 없다. 헌법재판소의 소장으로 지명된 이는 공금을 사적으로 쓴 탈법을 저질러 놓고도 법적인 문제가 없다며 청문회 탓만 하고 있다. 그들이 법을 집행하는 법관이었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 그동안 재벌가에서 자행되어온 온갖 탈법·불법도 결국은 모두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판결이 났다. 불법 판결을 받았다 한들 솜방망이 처벌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 법적으로 문제없는 행운이 이루어지지 않는 걸까?

재개발지역인 우리 동네에는 멀쩡히 아파트에 살며 중형차를 모는 사람들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가 간혹 있다는 소문이 돈다. 정부에서는 그런 불법 수급자를 막기 위해 사회복지통합전산망제도와 부양의무제도를 내세웠다. 그 제도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데 법적인 하자 따위가 있을 수 없는 보육시설 퇴소 아동조차 학기마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의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해야 하고, 소명절차를 거쳐야 한다. 정부는 그렇게 합법적으로 1년에 두 번씩 가난한 청소년과 청년들의 아픈 가족사를 들춰내 인권과 자립의지를 짓밟는다.

월 기초생활수급비 43만원으로 살아야 하는 사회복지학과 대학생이 운전면허학원비를 벌려고 주말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회복지학과 대학생에게 운전면허는 취업에 꼭 필요한 자격조건 중 하나다. 그런데 고작 한달 수급비 정도의 첫 월급을 받자마자 석달 동안 수급비의 3분의 1을 삭감한다는 통고를 받았다. 그 학생은 운전면허 취득을 포기했다.

얼마 전 기초생활수급자인 스무살 청년이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월 120만원짜리 직장을 구하자마자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알코올의존증인 어머니의 치료비와 고등학생인 동생의 학비를 더는 지원받지 못하고, 고령의 할머니까지 네 가족이 살던 국민임대아파트에서도 쫓겨나야 했다. 그 가족의 부양은 오로지 스무살 청년의 몫이었다. 그 청년의 목을 옥죈 기초생활수급법은 법적 하자가 전혀 없다.

법과 질서가 지배할 거라며 지명됐던 국무총리 후보자의 두 아들이 합법적으로 받았던 병역면제도, 400만원을 주고 산 땅이 현재 공시지가로 45억원이나 하는 꿈같은 일도 보통사람들한테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국무총리 후보자와 헌법재판소 소장 후보자는 언론의 엄격한 검증으로 가정이 파탄 날 지경이었다고 부르대고 있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자신들이 부와 권력을 누리는 데 헌신한 그 법이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철탑으로 올라가게 하고 곡기를 끊게 했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가정이 파탄 나고 아이들이 불행해졌는지 따위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참 뻔뻔하게 자신의 가정 파탄을 운운한다.

그런데 집권 여당과 대통령 당선인 쪽에서는 오히려 언론과 야당이 총리나 장관 후보자를 너무 엄격하게 검증해 총리나 장관을 하겠다는 이들이 없다고 불평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그게 어떻게 청문회 탓이며 엄격한 언론의 검증 탓인가? 국무총리 물망에 오를 정도의 사회지도층이 청문회도 통과하지 못할 만큼 도덕적이지 않거나 책임감이 없다는 것 아닌가.

집권 여당과 대통령 당선인이 정말로 이 사회를 법과 정의가 살아있는, 국민 모두 행복해지는 사회로 만들고자 한다면 자신들이 만든 관행과 자신들이 짓밟은 법치를 먼저 바로잡아야 한다. 국민은 더는 ‘법적인 문제는 없다’를 믿지 않는다.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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