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작업장학교 청년과정 제2회 졸업식 "경계 너머 세계">

 



크리킨디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갔던 2년의 시간들

 




한주엽 (청년과정 요비)

201431일 입학

201631일 졸업

 

 

 

크리킨디처럼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느덧청년과정 2년의 시간을 정리하고 있다.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대안교육 현장에서 나의 배움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나에게 어쩌면 당연하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반신반의하는 마음도 있었다. 사실 작업장학교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나는 청년장사꾼이 되었을 것이다. 작업장학교를 알기 전에 나는 청년 장사꾼에 지원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성인이 되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된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 대안학교를 선택했다. 대학진학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다. 고등대안학교를 졸업하고 그 연장선에서 조금은 심화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내 친구들은 군대를 가거나, 대학입학 준비를 하거나 음악활동을 했지만, 다시 대안학교의 트랙에서 배움을 이어나가기로 한 것인데, 나의 선택은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새로운 경험일 것 같았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에게 대안교육의 배움은 경쟁이 아닌 함께 살 수 있는 방법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틔어주는 시간이었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소수자라는 개념이 없고,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돈 때문에 사람이 힘들어하거나 죽고, 돈이나 학벌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닌, 정말 인간답게 존중받으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었다. 용산에서부터 시작한 세상에 대한 관심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무단 해고 사태로 이어졌고, 강정 해군기지를 거쳐서 후쿠시마 핵사고, 밀양, 세월호 그리고 최근의 사드 배치까지. 나열하면 정말 끝없는 현장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현장들을 만나면서 나는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그리고 같이 이겨내고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동차마니아였던 나는 자동차에 대한 지식은 조금 있지만 쌍용문제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알 수가 없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다른 10대들에 비해 사회 문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는 마음 정도인 것 같았다. 안타까워하는 것을 넘어서 그 현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청년과정에 오면서 하자작업장학교의 크리킨디 우화를 들었다. 그 현장들을 생각할 때 나는 크리킨디 우화의 아주 작은 벌새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때 나의 물방울은 진심으로 그 현장을 안타까워하고 잊지 않는 것 정도였다. 우화속의 크리킨디는 묵묵히 숲의 불을 끄려는 노력을 했지만 어쩌면 나는 어떤 숲의 불을 끄고 싶은지도 판단이 안 됐고, 어떤 다른 물방울을 가질 수 있을지 그것을 찾고 싶었다. 작업장학교에 있는 동안 그 물방울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인간의 관점이 아닌 생명의 관점으로의 변화

 

사실 농사를 지으며 나에게 매일같이 나와서 물을 주고 작물들을 보살폈냐는 질문을 받으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때때로 모종이 말라가는 것을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고, 그렇다고 고등 죽돌들이 아침에 일찍 나와서 물을 주고 있으면 같이 주는 것이 아니라 물주는 것을 챙길 때가 더 많았다. 아직 농사는 내 생활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미네홉이라는 수업을 통해 우리 농업의 현실의 문제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퇴비를 만들고 씨앗을 사지 않고 채종을 하면서 돈이 아니라 자급의 관점에서 농사를 짓는 실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아주 인간적인 세상이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도시라는 공간이 익숙하지 않다. 나는 내가 윤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집에서 농사를 짓고 퇴비를 만들고 일회용품 쓰지 않는 동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도시는 아주 소비적인 곳이었고, ‘윤리적인 사람으로서의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집에서 농사를 지었던 것은 놀리는 땅이 아까웠기 때문이었고, 텃밭은 그저 손님들에게 채소를 제공할 수 있어서 좋을 뿐이었다. 작업장학교에서 짓는 텃밭농사가 의미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확히 그 의미가 나의 삶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도시라는 척박한 곳에서, 없었던 밭을 만들고, 흙을 사오기도 하며 텃밭농사를 짓고 있기는 해도, 작물들은 그 좋지 않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 참 감동적이었다. 그럴 때 작물들은 하나의 생명으로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처럼 여겨졌다. 기후변화 문제를

의식하게 되면서 종종 기후재난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는데,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밭의 작물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사람들만이 아니라 더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자연의 존재들을 떠올리며 이 세상이 너무 인간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작물들을 만나면서 이제 나는 인간적인 세상을 바라지만 인간중심적이기만 한 세상을 바라는 것은 아니게 되었다.

 

더 이상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얼굴을 맞대고 살 수 없는 환경뿐만 아니라, 자신이 먹고 있는 음식에 대한 감사함과 위대함을 모르고 그냥 놓인 환경에서 본능적으로 먹는 사람들이어서는 안 된다. 시골과 도시를 가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세상이면서 생명의 관점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적정한 삶

 

입학하기 전, 청년과정에 기대되는 점 중에 하나는 적정기술을 배우며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적정기술을 기초부터 하나하나 배우기보다는 (그 단계는 이미 그 전 해에 진행이 되었다고 했다.) 다양한 적정기술을 적용하는 살림집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것으로 적정기술을 경험하게 되었다. 살림집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내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로서의 경험을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대로, 작업에 몰두할 시간도 있었고,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머릿속에 그리며 작업도 해볼 수 있었다.

 

살림집을 에너지자립하우스, 청년들의 아지트와 허브의 역할을 하며 이 세상에서의 살림을 실험하는 집이라고 설명한다. 처음 살림에 대해서 생각했을 때는 살려 낸다혹은 삶을 꾸려가는 행위를 떠올렸다. 살림집 프로젝트를 일단락 지으며, 적어도 내가 쓸 책상, 의자, 최소한의 먹거리는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는데, 지금 나에게 살림은 나를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단어는 아니게 되었다. 나의 삶을 꾸려가는 자급의 능력이 아니라, 나의 능력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적정한 기술은 어떤 것일까. 적정기술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면, 내가 살고 있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띈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모든 재료를 돈을 주고 산다. 뿐만 아니라, 화덕에 잘못 불을 붙이면 119가 출동을 하기도 한다. 도시에서 적정기술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실험인데, 도시에서의 적정기술은 경제성과 효율성이라는 조건에만 집중하는 것 같아 아쉽다. 경제성과 효율성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로 지구에 덜 해를 끼치느라 비효율적인 것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고, 우리 삶의 중요한 가치들 중에는 경제성과 무관한 것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벗어나 시골에 들어가 빗물을 받고 촛불을 켜고 살자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적정한 기술, 혹은 적정한 삶의 기준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일까.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세상은 나에게는 재난이다. 나는 종종 돈이 목적이 되지 않는 노동을 즐겁게 한다. 함께 일하며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좋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이나 그로 인한 개발은 얼핏 인간이 더 빠르고 더 편하게 살기 위한 것 같지만, 그로 인해 많은 현장들이 생겨났고, 인간뿐만 아니라 많은 생명들이 피해를 입고 사라지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농사를 지으면서 기후이상으로 모종이 말라가면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더 밭에 마음을 쏟는 것들이 내 삶에서 적정한 선을 만들어 가는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졸업. 열려진 미래

 

재작년 순창에 내려가 흙건축 워크숍에 참가했던 적이 있었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의 아주 오래된 집에 단열을 하는 작업을 했었다. 워크숍 기간 내내 김석균 선생님은 동네목수라는 개념을 강조하셨다. 사실, 나는 언젠가는 지리산에 내려가 게스트하우스를 하는 가업을 이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리산에 내려가 동네목수로써 일하고 동네 주민들의 집을 고치고 다시 새로 짓기도 하는, 내가 꿈꾸고 생각하던 나의 미래가 더 의미 있는 것이라고 확인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내가 나의 미래를 정해놓고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앞으로 운명이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갈지 꿈꾸기보다 너무나 당연하게 지리산으로 내려가 가업을 잇는다고 스스로 정해버린 것이다. 하자 바깥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앞으로 안정적인 생계수단과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 돌아갈 수 있겠다며 부러움을 많이 샀다. 그러나 하자에 와서 듣게 된 이야기는 내가 나 스스로를 어차피 지리산에 내려가서 살 사람이라고 정한 순간 나에게 필요한 새로운 배움이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적잖은 충격이었다. 부모님 역시 내가 당연히 일정 나이가 되면 지리산으로 내려가 가업을 잇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줄만 알았다. 연말에 집에 내려가 이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부모님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나의 착각이었다.

 

작업장학교에서 2년의 시간은 미래를 정해 놓고 살고 있던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간다. 살림집 컨테이너가 들어올 때부터, 버마와 홍콩 청

년들과 했던 청년포럼, 밭에서 돌 고르던 것, 늦은 밤에도 교실에 남아서 회의하던 기억들.

생에 가장 바쁜 2년을 보냈고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고 내 인생에서 제일 많이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었다. 작은 밭을 돌보고, 완벽하진 않지만 집을 짓고, 만남 그 자체로도 너무 반가웠고 서로의 아픔을 나누면서, 힘든 세상 속에서도 내가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준 아주 고마운 시간들이었다. 졸업을 하고 난 뒤의 나의 미래는 이전과 다르게 열려 있고, 어떤 세상을 살아갈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미래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다만 크리킨디의 마음,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는 것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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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청년과정 졸업생의 축하의 말>

 

청년과정 요비의 졸업을 축하하며

 

 

 

청년과정을 처음 시작했을 때, 학교를 연 고등과정 졸업생인 무브, 쇼 그리고 저, 저희 세 명을 제외하고 지원자가 정말 없었습니다. 새로운 동료가 생긴다는 기대감에 부풀어있었건만, 청년과정의 첫 해가 갈 때까지도 그대로 세 명이 있었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봐도 오고 싶을 만큼 매력 있는 청년과정으로 준비해서 열고, 알리지 못한 탓도 있었겠지만, 수많은 청년들이 불안에 쫓겨 사는 시대에 청년과정에서 2년 동안 오롯이 뭔가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은 어쩌면 불확실하고 좀 과감한 선택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나중에야 하게 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음 해 요비가 찾아왔습니다. 그 해에는 살림집도 지어야하고, 약하지만 강한 많은 사람들과의 연대도 해야 하고, 철공과 적정기술을 익히며 농사짓고 또 이 모든 것을 우리가 갖는 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까지 했어야합니다. 물론 주경야독이라고, 공부도 게을리 하면 안 되었습니다. 너무나 바쁜 한 해를 저희들과 함께하는 요비는 참 피곤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업을 하든, 공부를 하든,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요비는 너무나 열심히 하려 했으니까요. 요비는 하자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우리가 했던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지만 거기에 다 공감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그 땐 그런 생각이 부족해서 때로는 요비의 열성적인 태도에 넘겨짚거나 의존해버리는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탓인지 본인이 매사에 책임감이 좀 넘치기도(?) 했고요. 때로는 자기에게 집중하는 것이 중요한데 요비에게 그런 여유가 좀 부족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기도 하고 걱정도 했었는데 다들 부족한 선배들이라 좀 더 같이 고민을 나누지 못했던 것 같네요.

 

페스테자 세 명이 줄줄이 입대해서 정신없이 군생활을 하는 동안에 어느새 요비가 졸업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마 세 명 모두 고마웠다고 진심으로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불확실한 미래를 떠올리고 이미 사회는 망했다고까지 하는 세상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확실히 쉬운 선택은 아닙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힘과 관심을 기울이고 싶은데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 일이 자꾸 생겨나니 건강하고 좋은 마음을 이어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청년과정은 꾸준히, 천천히 뚝심 있게 해야 하는 일들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더 빨리 가려고 할수록, 시야가 좁아질 때도 작업장학교의 청년들은 넓고 긴 안목으로 시간이 걸려

도 할 일이 있고 만날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땀 흘려 지었던 살림집이 완전한 완성 없이, 살아가면서 끝까지 계속 지어야하는 집인 것처럼 그 모든 것이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일인 것입니다.

 

때문에 더욱 쉬운 길이 아니라고 느껴졌을 텐데도 끝내 졸업까지 학교를 지켜온 요비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혼자 하는 졸업이기도 하고 이대로 졸업해도 되는지 불안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라고 졸업생으로서 생각합니다만, 2년 동안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낸 요비에게 청년과정을 졸업하며 마음에 품게 된 딱 한 가지라도 중요한 것이 있으면 졸업의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청년과정의 첫 졸업생으로서 우리가 시작한 학교를 잘 이어가주어서 정말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2년 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하지만 끝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세상을 위해 더욱 힘써주시길!

 

 

 

청년과정 졸업생 동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