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작업장학교 고등과정 시즌2 제5회 졸업식 "경계 너머 세계">


공감으로 함께 살아가기

 

提人 권예슬 (공연음악팀 소만)

 

 

 

하자에 오기 전 실상사작은학교라는 대안중학교를 다녔다. 실상사작은학교의 졸업생들을 통해서 대안고등학교에 대해서 전해들을 수 있었는데 2학년 때 즈음 하자작업장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하자작업장학교는 예술 작업을 하면서 공부하는 곳이자 굉장히 바쁘고 힘든 학교라고 했다. 그렇게 힘든 학교라고 소문이 난 곳임에도 꾸준히 입학하는 실상사작은학교 졸업생이 있는 것이 의아했고 도대체 어떤 곳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실상사작은학교는 너무나 여유롭고 평화로운 곳이라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됐었고 늘어지기도 했다. 그맘때쯤엔 꼭 사춘기 기간이 있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사춘기 시절이 있었는데, 실상사작은학교처럼 생태적인 공간에서 어떻게 하면 규칙을 더욱 재미있게 어길 수 있는지 머리를 굴리며 생활했다. 또 관계가 너무나 중요한 기숙사 생활 속에서 배운 것도 많지만 다른 일에 더욱 집중하고 싶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도시에서 예술 작업도 하고 그렇게 바쁜 생활을 하는 곳에서 농사도 짓는다는 하자작업장학교에 대한 기대는 커져 갔다. 그리고 관계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들로 바쁜 생활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하자작업장학교에 입학하기까지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서울에서 거주할 만한 곳을 찾기가 마땅치 않았고 부모님의 경제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그리고 서울에서 혼자 지내야 하는 것에 대해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기에 어쩔 수 없이 실상사작은학교 고등과정에 지원서를 내야 했다. 진로가 확정이 되었지만 정말 하자작업장학교에 입학하고 싶었다. 부모님에게 엄청난 반항을 하고 설득하여 결국 허락을 받았고 지원서 마감 날에 영등포 하자센터에 혼자 찾아와 지원서를 냈다. 그리고 굉장히 설레는 마음으로 하자작업장학교에 입학했다.

 

그동안 동경해오고 상상했던 하자작업장학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바쁘고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학교를 다니다가 나가는 사람이 많았지만 꼭 그곳에서 버티고 말겠다는 엄청난 포부를 가졌다. 사소한 일로 다투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 너무나 쿨한 죽돌과 판돌들은 동경해오던 모습 그대로였지만 대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그러나 멋졌다. 그리고 처음 듣는 에너지 시스템 문제들과 인문학 강의들을 통하여 처음 듣는 어려운 단어들 속에서 어안이 벙벙했지만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는 더욱 강해졌고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모르는 것들이 많은 만큼 알고 싶어지는 것이 많았고 그만큼 질문도 많았다. ‘상상의 인문학

강의에서는 카프카의 <변신>, 영화 <카프카> 등을 보고 리뷰를 올려야 했는데 매우 거침없이 글을 쓰고 서슴없이 공유했다. 하자작업장학교를 다니고 3년 째 되는 지금 글 쓰는 것을 매우 어려워하며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는 상황이라 믿기 어렵지만, 2013년도까지 글 쓰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글의 완성도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특히나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처음 접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을 적어내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또 하자의 리뷰문화가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글을 쓰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졌고 리뷰 하는 시간에는 입을 닫기 시작했다. 3학기가 되었을 때에는 새로운 죽돌들도 학교에 입학하고 이제 무엇인가 알아가는 과정 속에 있어야 하는데 후쿠시마 사고에 관해서도, 에너지 시스템에 관해서도 그 어떤 것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당연했다. 여전히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았기에 그런 것을 죽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고, 공부할 때 드는 질문에 대해 집중하기보다는 하자에서 듣게 되는 어려운 것들을 모두 흡수하는데 치중했다. 그리고 하자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와 강의들을 그대로 노트에 열심히 받아 적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을 어렵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자 그 상황을 돌파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난 3년을 돌아보며 기억에 남는 것은 지금까지 만나온 사람들이다. 밀양 주민 분들, 후쿠시마의 어머니들, 후쿠시마의 마지막 남은 농부, 노들야학 분들, 현장학습에서 만난 사람들.

 

밀양 주민 분들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잘못된 에너지 시스템으로부터 10년 동안 세상과 미래세대를 위해 온몸으로 밀양을 지켜 오신 마음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후쿠시마의 어머니들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모든 생명체를 지키는 모성애에 감사드리기 때문이다. 후쿠시마의 어린이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정부에게 건 소송은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어머니들의 마음은 결국 지구 생명체를 지키는 일이다.

 

후쿠시마의 마지막 농부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후쿠시마에 남은 동물과 식물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후쿠시마를 떠나지 않는 농부를 깊이 존경한다.

 

노들야학 분들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자신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계신데, 그 목소리는 결국 모든 인간의 삶을 가치 있는 삶으로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장학습에서 만난 청년과 학생들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자신의 지역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잊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하겠다고 말하는 것에 깊은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3년을 돌아보았을 때 기억에 남는 것은 노트에 필기한 내용이 아닌 만나온 사람들이었다. 정보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감이 없으면 무의미할지 모른다. 모르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보를 흡수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는 것은 공감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정말 어려웠다.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많은 사건과 사고들을 이미 보았다. 그리고 겪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공감했고, 현재의 나는 변화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자작업장학교를 다니며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 중 하나는 공연음악팀으로서 공연음악을 하는 것이었다. 앞으로는 하자작업장학교와 공연음악팀의 한 사람으로서 있을 수는 없겠지만 어떤 직업을 가지든 세상을 위해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다. 많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는 시대를 마주하며 공감했던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