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작업장학교 고등과정 시즌2 제5회 졸업식 "경계 너머 세계">


농부의 감각을 가진 세계시민

 

 

이지연 (영상팀 굴)

 

 

 

하자작업장학교에 들어와서 많이 배우게 된 것은 농부의 마음이었다. 농부는 쉽게 집을 떠날 수 없다. 자신의 손과 정성을 필요로 하며 기다리는 작물들이 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도시농사 현미네홉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 자신이 있는 자리의 생명을 돌보는 사람이 되고자 했고, 죽돌들 모두 작물을 소중하게 대하면서 더 나아가 세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있는 자리로부터 아껴나가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밀양송전탑투쟁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밀양아리랑에서 김영자 총무님이 한 인터뷰가 아주 인상 깊게 기억에 남는다. ‘송전탑 반대하러 매일 농성장에 나가면서 고추밭을 돌보지 못해 고추가 말라죽는 것을 보고 슬픔을 느꼈지만, 또 그 고추들을 위해 계속 농성장에 나가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하고 말씀하신 부분이었다. 이런 농부의 마음을 가진 밀양의 10년간의 송전탑 없애는 농사를 지켜보고 함께 연대하면서 농부만이 가지고 있는 감각과 언어, 힘을 배웠다.

 

이 세계화 시대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재난들은 지역을 막론하고 일어난다. 우리가 있는 자리로부터의 아끼고 돌보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세계의 모든 곳과 이어져있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배운 것은 시대와 세상을 생각하면서 내가 있는 자리로부터의 전환을 만들어나가는 것이었다. 또 우리는 밀양과 같이 국내에 있는 현장들, 더불어 한국 밖의 아시아 국가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연대했다. 매해 현장학습으로 홍콩과 버마, 태국 국경지대에 있는 메솟 지역에 가면서 우리를 세계시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농부의 마음을 다잡고 하자작업장학교의 배움을 이어가고 있던 나는 또 다른 세계로 나가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2014년 하자에서는 다시 배움과 희망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창의서밋이 열렸는데 그때 온 덴마크의 포크하이스쿨인 IPC(International People's College)가 하자와 네트워크를 만들게 되면서다.

 

'Active Global Citizenship, 적극적 세계시민 의식'이라는 학교 지향을 내건 만큼 IPC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 포크하이스쿨에서 전환학기를 가지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은 다양한 맥락을 가지고 있으면서 모두 세계시민으로 연결되었다. 시민대학이라는 이름 을 가지고 있는 만큼 매일 아침 뉴스를 공유하고, 여러 가지 사회적 주제를 가지고 토론, 공부를 하면서 세계시민 감수성을 아주 집중적으로 만들어나갔다. 이곳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확장된 시야를 가지게 된 학생들이 나중에 다시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서, 혹은 더 넓게 다른 곳에서 변화를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 IPC가 바라는 일인 것 같았다.

 

33개국에서 온 시민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나는 하자에서 배운 나의 세계시민 의식을 더 확장해 배우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IPC에는 내가 생각하던 세계시민과 다른 세계시민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국제적인 친구를 만들고 싶어서 온 사람도 있었고, 덴마크에서 일하고 싶어 온 사람도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였고, IPC라는 국제적인 전환학기의 공간은 많은 의견이 오고갈 수 있는 아주 열린 곳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하자에서 배운 세계시민의 역할을 즐겁게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곳은 정말 세계의 현장이었다. 학교 자체가 전 세계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모인 곳이기도 하고 특히 이 시기가 시리아의 내전으로 인해 난민들이 유럽으로 많이 들어오던 때였다. 덴마크 정부는 국경을 닫으려고 했고 그 국경을 넘으려고 하는 많은 난민들은 어려움을 겪었다. IPC 캠퍼스 안에서는 수업을 넘나들며 시리아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행사가 있을 때에 직접 구운 쿠키를 팔아 모금했고 난민지원단체에 후원했다. 나는 유럽, 덴마크 시민은 아니지만 세계시민으로서 유럽에 망명해오는 시리아 난민들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덴마크 정부를 향해 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IPC친구들과 함께 코펜하겐 크리스챤보그 광장에서 열린 난민환영시위에 참여했다. 덴마크의 시위 문화는 한국에서 보던 풍경과는 정말 달랐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경찰은 보이지 않았고,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많았다. 앞뒤가 사람으로 꽉꽉 채워진 광장에서 누군가가 발언을 하면 모두 조용히 하고 귀를 기울였다. 오래된 덴마크 민주사회의 시민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 현장을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는 친구들과 함께 코펜하겐 다큐페스티벌에서 상영된 ‘Salam Neighbor’라는 난민캠프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감독의 이야기를 들었다. 또 난민 컨퍼런스에 갔다. 직접 시리아 난민을 만나 유럽으로 넘어올 때의 힘든 여정과 덴마크 시민들에게 수용을 바란다고 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1월에 일어난 파리테러 참사 이후에 반이슬람 정서는 더 확산되어 무슬림 난민들이 넘어오는 유럽 국가들의 국경은 더 봉쇄 되었다. IPC 학생 중에도 무슬림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난민들이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덴마크에 첫눈이 내린 날 우리는 밖에 나가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다. 같은 하늘에서 내린 눈으로 만들어진 이 눈사람처럼 말이다. 옆에 있는 나의 친한 친구는 무슬림이다라는 메시지를 담아서 한 온라인 매체의 캠페인에 IPC의 이름으로 동참했다. 이렇게 나와 IPC 친구들은 유럽 시민이 아니지만 세계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지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2주일이라 불리던 COP21기후협약회의가 파리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하자 영상팀에서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101개의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 영상을 만드는 중이었고, 죽돌들도 기후변화와 인권에 관련해 공부를 해나가고 있었다. IPC에서도 매주 기후변화에 대해 여러 관점으로 강의를 열었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과 학교에서 키리바시의 아노테 통 대통령에게 함께 편지를 썼고, 작은 키리바시 섬을 만들어 IPC의 호수에 띄웠다. 나는 영상팀에서 만든 콘크리트 위에서 시작한 우리의 농사에 영어 자막을 넣어 상영했고, 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위해 우리가 한 도시농업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많은 친구들이 놀라운 실험인 것 같다고 얘기해줬다.

나는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IPC에 있는 친구들에게 많이 알려주고 싶었다. IPC라는 학교에서 또 덴마크라는 사회에서 내가 생각하는 세계시민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할 수 있는 만큼 친구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소중한 친구들을 만났고 이 시대의 고민을 공유할 수 있었다.

 

몰리라는 동갑내기 친구를 만났다. 몰리의 할머니는 아일랜드에 작은 농장을 가지고 있다. 요리와 농사일을 좋아하는 몰리는 IPC에서 퍼머컬처를 처음 만나게 되어 할머니의 농장에서 일을 하며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몰리에게 그렇다면 내가 나중에 네 농장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갈게라고 했다. 우리는 생태적 전환과 우리의 소비패턴에 관한 얘기를 하며 친한 친구가 되었다. 새로 알게 된 소식이 있으면 서로에게 알려줬고 이 시대의 고민을 함께 공유하게 되었다. 나중에 히옥스와 하자 영상팀이 파리 COP21에 왔을 때에도 함께 가서 적극적인 세계의 활동가들과 만났다. 그리고 우리 세대의 삶에 대해 더 확장되어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난민과 기후변화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IPC라는 판에서 한 학기 동안 지내면서 이 많은 나라들을 바로 관통하는 지금의 세계화 시대를 더 가깝게 인식할 수 있었다. 이 시대에서 이 두 개의 키워드는 이어져있고 앞으로 해나가야 하는 일이 정말 많겠구나 생각했다. 21살에 자신의 지역사회에서 의원후보로 나간 덴마크 친구, 독일에 들어오는 시리아 난민들의 사회 적응을 위해 NGO에서 활동하는 친구를 만났다. 또 내 옆방에 지내던 친구는 심리학과 학생인데 어떻게 사람의 심리가 환경운동과 이어질 수 있는지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연구하고 있었다.‘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가면 좋을까?’ 많은 생각을 했다.

 

IPC에서 만난 친구 몰리는 자신의 자리에서 세계시민의 감각을 가진 진짜 농부가 되려한다. 기후변화, 자유 시장화로 인해 모든 지역에서 세계화 시대의 문제들을 함께 겪고 있기 때문에

농부와 세계시민의 마음을 함께 가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도 세계시민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있는 도시에서부터 농사를 지으며 전환을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IPC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더 이 세계와 시대를 깊고 넓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두 곳을 거친 뒤, 나는 이 두 감각 사이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어느 곳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은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가지게 된 이 소중한 두 감각의 균형을 잘 맞추어 불이 난 세상의 시민으로서 힘을 내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