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작업장학교 고등과정 시즌2 제5회 졸업식 "경계 너머 세계">


전환을 꿈꾸는 도시농업

 

 

蒔人 현시연 (공연음악팀 션)

 

 

 

지구의 위기

 

흙을 떠나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최근 들어서 <인터스텔라>, <마션> 같은 우주 탐사 영화가 극장에서 흥행을 하고 있다. <인터스텔라>는 아름답다 못해 경이로운 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까마득한 우주에 남겨진 인간은 먼지처럼 아주 작고 힘없게 느껴진다. 그런데 <인터스텔라>의 내용을 조금 들여다보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는 멸망하는 지구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난 인류가 끝내 제2의 지구를 찾는 내용이다. 정치와 경제가 완전히 붕괴되고 식량위기에 처한 미래의 인류는 소름끼치도록 지금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 지구의 멸망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설정된 영화이지만 생각해 본다. 인간은 왜 지구를 떠날 수밖에 없었을까?

 

인간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했다. 인간Humanus이라는 말도 흙Humus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흙은 생명의 보금자리이자 최종 안식처이다. 영어로 흙Earth과 지구The Earth는 같은 단어이다. 흙이 없다는 건 지구에서 살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지구를 떠나고 싶지 않다. 날마다 최첨단의 과학 기술이 실현되고 있지만 인류의 고향인 지구에서 살고 싶다. 미래세대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대지를 물려주기 위해서 결국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흙과 가까운 삶일 것이다.

 


도시, , 전환

 

도시에는 흙이 없다. 도시농사를 짓는 2년 차에 논을 만들기 위해서 주차장의 콘크리트를 걷어냈을 때 흙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곳에는 흙 대신 각종 파이프들과 수도관이 있었다. 흙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도시는 그런 곳이다. 흙을 다 걷어내고 인공물로 채워진 곳. 우리는 그런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다.

 

2015년 창의서밋에 참가했던 한 농부는 우리 밭에 웃자란 작물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농촌에서는 작물들이 생기 있는 모습으로 잘 자란다며 농촌을 살리기 위해 청년들이 시골로 내려와야 한다고 했다.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노력을 해왔기에 작물이 웃자랐다는 말을 듣고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흙이 없기 때문에 문제의 근원인 도시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해야 진짜 전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정말 자연 속에 있는 걸까?

 

작업장학교에 오기 전, 나는 내가 자연 속에서 살고 있다고 자각했었다. 하자에 오기 전 초등학교 2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다니던 청계자유발도르프학교는 사계절 마다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는 산천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농사를 지어 수확물을 얻어 보기도 하였다. 한 사람당 두둑 하나씩 가지고 각자가 원하는 작물을 선택해서 씨앗을 심었다. 작물을 돌보는 일은 놀이처럼 여겨졌고 밭으로부터 수확물을 얻는 것은 늘 신비로운 경험이기도 했지만 당연하게 여겨졌다. 나는 점심시간에 시간을 내어 밭에 나가는 일을 기꺼이 했고 밭을 돌보고 작물을 만나는 일을 좋아했다. 휑하고 엉성한 밭이었지만 밭 사이 고랑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나는 자연스럽게 자연 속에 내가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중3 때 농업실습을 갔던 풀무학교에서 가축 사육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혼란스러웠다. 내가 정말 자연 속에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 다큐멘터리는 소, 돼지, 닭들이 인간의 밥상 위에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사육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너무나 무차별적으로 손쉽게 죽임을 당하는 가축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가장 혼란스러웠던 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세계에 안과 밖이 생기는 것이기도 했다. 바깥세상이라는 것을 처음 인식하게 된 나는 어쩌면 내가 자연 속에서 지내고 있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갔고 바깥세상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 기세를 몰아 나는 과감하게 9년 동안 다니던 자연 속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다른 학교를 찾았다. 그곳이 도시에 위치한 하자작업장학교이다.

 

 

세계를 확장하기

 

하자에 오기 전까지 나만을 봤다면 하자에서는 내가 아닌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과 세

상을 보려고 노력 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세계 속, 청소년으로서의 나를 인식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했다. 사회의 모습들을 관찰하며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생태라는 키워드를 점점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작업장학교에서는 생태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도시에서 농사를 지었지만 어째서 농촌이 아닌 도시에서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도시 속에서 농사를 짓는 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헷갈리지만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이유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밀양 송전탑 문제에 대해 함께 공부하면서다. 작업장학교는 2012116일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자살을 계기로 밀양 송전탑 문제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밀양에 현장학습을 가며 송전탑 문제에 대해 공부했다. 수도권에서 소비하는 전기량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만 갔고 수명이 끝난 고리 1

기를 계속운전 시키는 바람에 짓지 않아도 될 765kV 초고압송전탑이 밀양에 건설되었다. 도시의 편리함 때문에 밀양에 송전탑이 지어지게 된 것이다. 밀양은 수도권으로 전기를 송전하기 위해 지역은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한다는 여론 속에서 피해 받았다. 도시에서 내가 당연하게 소비했던 것들 뒤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 있었다.

 

밀양을 만난 뒤로 지역에 의지해 성장하는 도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도시에 살지만 도시로 인해 피해 받는 곳이 없길 바랐다. 그런데 수도권 중심적인 시스템은 먹거리도 마찬가지였다. 농경사회였던 한국이 경제 발전을 이루며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를 하게 되었지만 도시에서는 먹거리를 생산하지 못했다. 그래서 도시에서 먹는 모든 것은 지역으로부터 조달된다. 농촌은 도시의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만큼의 식량을 경작하기 위해서 대량생산을 하게 된다. 적은 인력으로 대량의 작물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각종 농약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한데 이 때 제초제, 살충제 등의 화학성분의 농약으로 땅이 오염되고 생태계의 악영향을 준다. 생태계를 파괴시키는 농업은 오래 갈 수 없을 것이다. 본래 농업이라는 것은 인간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땅으로부터 양식을 얻는 것인데 농업이 이렇게 전락한 것은 도시에 흙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지역에 의존하지 않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도시에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미 생태계가 파괴된 도시이지만 흙을 되살리기 위해서 도시에서부터 해결해 나가야 한다 생각했다. 그래서 작업장학교는 당장에 자급자족은 가능하지 않더라도 일종의 실험으로서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현미 네 홉>을 하게 되었다.

 

 

도시에서 짓는 농사

 

우리는 하자센터 옥상과 건물 주변의 공간을 활용하며 알뜰살뜰 작물들을 키웠지만 도시에서는 늘 어떤 한계가 있었다. 흙 자체를 어디선가 사와야 하고, 콘크리트 위에 흙을 올려 농사를 짓다보니 물 빠짐이 심해서 밭이 돌처럼 딱딱해져 작물이 건강하게 살지 못했다. 하지만 거칠고 시멘트가 섞인 흙에서도 씨앗은 언제나 우리에게 인사 해주었다. <현미 네 홉>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문래텃밭에서도 농사를 지었는데 우리 밭의 작물은 어느 밭보다 열매가 알찼고 병충해도 없었다. 김매기를 하고 나온 잡초로 이불을 덮어주듯이 밭에 깔아주면

잡초를 방지할 수 있고 또 흙이 수분을 날리지 않고 품고 있어서 유기물이 풍부하고 토양침식을 막을 수 있다. 비닐을 치지 않아도 작물들은 잘 자란다.

 

처음 농사를 짓기 전 문래텃밭의 흙은 아주 거칠고 메말랐었지만 작물을 키우고 농사를 지으면서 아주 부드러워졌다. 흙이 살아나면서 도시 속 작은 텃밭은 생명력 넘치는 공간이 되었다. 다양한 곤충들이 모여서 작은 생태계를 만들었다.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에서 작은 곤충들을 볼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건 아주 놀라운 변화였다. 웃자란 작물을 보고 안타까워하던 농부에게 도시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도시가 변화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작은 텃밭을 가지고 농사를 지으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본다. 그렇게 된다면 더 많은 곤충들이 찾아와 더 큰 생태계를 만들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도시에서 양봉을 하며 벌들로부터 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설레는 멋진 일이다!

 

 

세계를 구하는 도시농업

 

도시농업은 땅을 지켜내기 위해 송전탑 반대 싸움은 정당하다고 말씀하시는 밀양 어르신들의 마음과 닮아있다. 그리고 나는 어르신들이 땅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땅의 소중함을 아는 농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혜로운 어르신들의 마음을 배우며 도시에서부터 땅을 지켜내고 싶다.

 

도시농업은 도시로부터 지역이 피해 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 노력이자, 도시의 시스템을 전환하기 위한 운동이다. 도시에 흙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인간이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생명이자 생태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흙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흙 없이 살 수 없다. 반복하는 말이지만, 도시에 흙이 없기 때문에 피해 받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지구를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고 싶다.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 흙이 없는 도시에서부터 회복해 나가야 한다. 도시농업은 흙을 회복시키는 것과 동시에 지구를 살리는 일이다. 우리는 몸과 머리를 동원해 위기에 처한 지구를 지켜낼 수 있다. 도시농업이 작고 힘이 없어 보일지라도 큰 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