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작업장학교 고등과정 시즌2 제5회 졸업식 "경계 너머 세계">


확장되는 음악의 세계

 

 

현시연 (공연음악팀 션)

 

 

 

발도르프에서 접한 예술이란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청계자유발도르프 학교에서 나는 예술과 특별하게 만날 수 있었다. 일반 학교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되던 해 5, 나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발도로프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발도르프 학교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수업은 늘 음악과 시와 그림이 함께 했다. 저학년 때는 국영수 대신 리코더 불기, 수채화 그리기, 나들이 가기 같은 리듬활동 시간들로 채워졌다. 칠판 한 쪽은 늘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교실 한 편에는 계절마다 아름다운 장식으로 꾸며지는 계절탁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나에게 당연한 풍경으로 여겨졌다. 발도르프 특유의 예술적인 감각은 학교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예술은 나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했다.

 

4학년이 되면 자신이 다루고 싶은 악기를 한 가지 정해서 배우게 된다. 주로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첼로, 기타 같은 현악기를 배우는데 나는 바이올린을 선택했다. 나는 바이올린을 켜는 게 좋았다. 바이올린의 울림은 얇지만 때론 깊었고 힘이 있었다. 내가 낼 수 있는 소리의 울림이 점점 깊어지고 음역대가 넓어지고 좀 더 자유롭게 악기를 다룰 수 있게 되면서 나의 내면의 모습도 다채로운 색을 띠게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악기를 어떻게, 어떤 마음을 실어 켜느냐에 따라 음악이 만들어졌고 그 음악이 나를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6학년 때 바이올린으로 학교 오케스트라에 입단했다. 누군가와 함께 연주를 해본 경험이 없었기에 오케스트라는 나에게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혼자가 아닌 수십 명이 각자의 파트로 나뉘어 연주를 하고, 그 연주가 하나의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오케스트라의 합주는 감동 그 자체였다. 오케스트라를 하면서 누군가와 함께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합주보단 나의 연주에 더 몰두했다. 합주를 하지만 내 속에 푹 빠져 혼을 다해서 연주했다. 발도르프 교육에서 예술의 역할이라 함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적 자유를 획득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에 있다고 하는데 내적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음악을 하면서 내 안의 뭔가를 표출함으로써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예술은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공연음악팀 FESTEZA: 슬픔을 넘어 축제로

 

하자작업장학교에 입학해 접했던 바투카다는 기존에 내가 알던 음악과 비슷하기도 했지만 다르기도 했다. 오케스트라는 악보에 어느 정도 세기로, 작기로 연주해야 하는지 나와 있고, 다른 연주자와 함께 연주한다. 공연음악팀의 바투카다도 각 파트가 나눠져 있고 함께 호흡을 맞춰 연주하지만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를 했다. 바투카다는 매번 다른 공간에서 다른 느낌으로 리듬을 만들어 간다. 그래야 계속 반복되는 리듬을 연주해도 지루하지 않고 그 속에서 섬세함, 과감함이 어우러지고 유머도 있는 흐름이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악보를 보는 것이 당연했는데 오직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같이 연주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주 흥겹고 몸을 들썩들썩하게 하는 선배들의 공연을 보고 그 매력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나도 저런 공연음악을 할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이 부풀었다.

 

바투카다 중에서 내가 고른 악기는 헤삐끼였다. 바투카다는 드럼 세트를 하나씩 분리해 놓은 구성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헤삐끼는 전체를 하나로 이끄는 역할을 가진 악기였다. 생각해보면 헤삐끼를 고른 것은 아주 과감한 선택이었다. 악기를 다루는 것 자체가 어려워 합주를 할 때 나의 연주에만 신경이 쏠렸다. 틀리지 않기 위해 몰두하며 연주했다. 그런데 선배 죽돌들은 나와 눈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틀리는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합주 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며 같이 맞춰가야 한다고 했다. 오케스트라를 했던 경험이 있지만 함께 맞춰간다는 생각은 못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연주하는 것은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계속해서 옆 사람의 소리를 듣는 노력을 하면서 함께 호흡을 맞춰간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페스테자Festeza는 슬픔Tristeza과 축제Festezo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슬픔을 넘어서 축제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팀 이름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했다. 바투카다 악기를 처음 잡고 세 달쯤 지났을 때 공연을 시작했는데 처음으로 학교 밖에서 공연을 한 곳이 밀양에서의 26번째 촛불 문화제였다. 문화제는 주민들의 발언을 듣고 사이사이에 공연이 있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처음 밀양이라는 현장을 마주하게 되어 긴장한 탓인지 그 분위기 자체가 무겁게만 느껴졌다. 할머님들은 발언 도중에 감정이 격해져서 눈물을 보이시기도 했다. 나는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공연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우리가 하는 공연은 무거운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흥을 돋우는 열정적인 공연이었기 때문에 더 걱정이 되었다. ‘이런 자리에 우리의 공연이 어울리는 걸까복잡한 마음이 들었고 그 상태 그대로 공연을 하게 되었다. 공연에 대한 주민 분들의 반응은 뜨거웠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도 찜찜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히옥스가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죽돌들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공연팀의 역할은 분위기를 완전히 전환시키는 것이다.” 라고. 슬픔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픔으로부터 벗어나와 힘을 내고 그 힘을 낼 수 있게 이끌어내는 것, 힘을 실어드리는 것이 공연음악팀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슬픔을 넘어서 축제로 향하는 것을 실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삶이 뿌리째 뽑히는 고통을 겪고 있는 현장에서는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슬픔 속에 있는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끌어당길 에너지가 필요로 했다. 그 에너지를 잃지 않고 계속 유지하면서 지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만큼 슬픔이 가득한 이 시대를 살아내기 위한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페스테자는 시대의 흐름을 읽으려 노력했던 팀이었다. 슬픔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슬픔 안에 갇히지 않고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일, 페스테자가 바로 그런 일을 했던 것 같아 자랑스럽다.

 


넓어진 예술의 영역

 

하자에 오기 전에는 예술로 오직 나만을 표현했다면 하자에 와서는 예술을 통해 동료를 만나고 사회 문제까지 접하게 되었다. 공연음악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예술이라는 매체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었다. 예술이 가진 역할은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과 자아실현도 있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한 역할은 사회적 기여이다. 예술의 목적은 개인의 선택일 수 있지만 예술이 사회에서 기능을 발휘했을 때 큰 힘을 가질 수 있고 예술의 세계가 더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예술은 사회와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바투카다도 16세기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브라질 땅을 점령하면서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강제로 데려와 노예로 삼았던 역사에서 시작되었다.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인들이 모여 서로 발 구르며 춤추고 놀던 것에서 바투카다가 비롯되었다.

 

페스테자라는 팀으로 밀양에 갔을 때 우리는 공연음악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었다. 밀양 어르신들의 힘을 돋우기도 했고 행사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또 어르신들과 함께 행진하며 아직 밀양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세상에 알렸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을 수도 있지만 내가 가진 매체로 뜻을 같이 한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다. 하자에서 공연음악팀으로 사회의 작은 부분에 동참하면서 음악이라는 매체를 더 깊고 풍부하게 생각하고 해볼 수 있었다. 나를 위한 연주를 할 때 발휘되는 힘과 밀양 어르신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공유하며 공연할 때의 힘은 아주 다르다. 혼자서는 낼 수 없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 음악이 발휘하는 힘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더 큰 힘으로 발휘될 수 있다. 작업장학교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나의 음악의 세계는 확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