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 위기와 민주주의

우리는 모두 위기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고 느낀다. 세계적 금융파탄, 경제 위기, 환경위기, 고용위기, 정치적 혼란 등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것들은 한 마디로 지속가능성의 위기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흔히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은 환경오염, 생태위기 등에 관련해서 쓰이는 말이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은 좁은 의미의 환경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1980년대에 세계 최초로 정부에 환경부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 지속가능발전부라고 개명했다. 환경문제라는 것도 현대세계가 추구해온 개발이나 발전이라는 것이 지속가능한 것이냐, 나아가서는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느냐 하는 질문 없이는 해법을 발견할 수 없다는 인식이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환경오염, 생태위기보다 앞으로 살아갈 문제가 더 절박한 우리 젊은이들이다. 각자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기 위해 작은 확률에 목숨 걸고 스펙을 쌓으며 취업에 매달린다. 하지만 희박한 확률을 뚫고 합격을 했다 해도 과연 행복한 것일까? 자기 또래가 대부분 일자리가 없거나 비정규직밖에 못 가진 사회에서, 예외적으로 정규직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행복이란 어떤 것일까? 결국 일자리 문제는 개인적 차원에는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대응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문제가 어떤지 정확히 알려면 질문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고용과 경제위기가 일시적인 상황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다소간 경기가 살아날수는 있지만 결국 경제는 축소되고 고용기회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 경제란 자원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데 그 자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석유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사회에서 석유의 쓰임은 막중하다. 하지만 인류사회에서 쓴 석유량이 약 2조 배럴인데 반인 첫 1조를 쓰는데 130년이 걸렸다가 나머지 반을 쓰는데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피크오일도 이미 정점을 찍고 지났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 상태에서, 정작 한국은 수출품이 모두 석유제품이다. 석유 자급은 한 방울도 없는데 말이다. 식량자급률이 25%밖에 안 되고 외국 농산물을 수입하는 이 상황에서 만약 석유 고갈이 일어난다면? 한국 경제는 파탄날 것이다.

북한의 예를 들면 더 확실하다. 북한의 기아 원인은 핵시험으로 인한 시민 방치, 지도부의 부족함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농업의 지난 현대화에 있었다. 사회주의라는 이름 하에 집단 농장화를 하고 기계와 화학물질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현대 농업의 전제는 석유이고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소련의 값싼 석유로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앞선 공업사회였다. 하지만 소련에서 소비에트체제가 몰락하자 석유 공급이 끊어지고 잇따른 홍수로 인해 자급률이 많이 떨어졌다. 이런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의 식량 자급률도 65%이다. 한국은 25%이다. 석유 공급이 끊어질 때 어떤 붕괴가 일어날지는 안 봐도 뻔하다.

한국에서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설 때 요한 갈퉁이라는 세계적인 편화운동가가 취임을 축하하러 온 일이 있었다. 갈퉁은 세계의 전체 상황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을 지닌 노르웨이의 정치학자이자 평화운동가이다. 한국이 IMF로 어려움을 겪던 시절, 갈퉁의 조언이 있었다. 돈을 받되, IMF의 뜻대로 하지 말고 그 돈으로 에너지와 식량 자립 기반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정부는 그 말대로 하지 않았다.

이미 옛날부터 자본주의의 성장 추세가 둔화된다는 것도 예견했다. 하지만 많은 대안을 내놓거나 반박을 하는 모든 경제학자들은 다 성장론자들이다. 자원은 한정되어있는데 성장이 계속 될 것이라는 것을 계속 밀어붙이는 불가사의한 말을 하지만 사실이 이렇다. 이런 성장론에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근대경제학의 근본이 자본주의 시스템인데 계속된 성장을 떠나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세계체제의 경제시대도 끝나간다고 설명한다. 그 경제권이 중심국가, 주변국가, 반 주변국가로 나뉘는데 불균등한 교역 관계 때문이다. 중심국가의 번영은 주변지역의 낙후성과, 주변지역의 빈곤은 중심국가의 번영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적 지배와 종속관계인 셈이다. 그런데 미국의 역사사회학자 월러스틴은 이 체제도 곧 무너질 것이라고 한다. 자본이 투자할만한 조건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익이 안 되면 계속 무너지게 되는 것이고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그래서 월러스틴은 자본주의가 붕괴하면 새로운 형태의 사회가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하나는 지금보다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 다른 하나는 지금보다 권위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사회라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유토피아는 아니다. 그저 어느 쪽이 더 인간적으로 민주적인지 시민들이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모든 나라는 부국강병을 목표로한 금권주의이기 때문이다. 재벌들이 국가와 결합에서 시장체제의 률과 규제를 만들어 본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끈다. 그러면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국익 논리이고 그 힘으로 국방과 군대를 강조하고 이래야 경제가 성장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국익이라는 틀을 넘어서 세상을 볼 수 없다면 우리에겐 아무 전망도 없고 파국을 맞을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은 공상과는 다르다. 공상은 전혀 현실적으로 실현 될 수 없는 것에 대한 헛된 꿈이지만 상상력은 눈에 띄게 드러나 있지 않더라도 최소한 현실적인 근거에 입각한 구상능력이다. 우리는 기존의 사고 습관으로는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모델이 역사속, 혹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을 주목해서 정신적 자극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코스타리카는 우리에게 좋은 모델을 제시해주고 있다.

코스타리카는 군대가 없다. 불안한 정세가 이어진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군대를 폐지한 것은 경탄스러운 일이다. 군대가 없으니 우선 국방비가 사라져서 시민들의 복지와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데 쓰이고 외부와의 문제가 있어도 비무장 상태에서 외교력과 평화에 대한 중재가 수월했다. 시민들이 군대 폐지 투표를 할 때 90%가 찬성했다고 하니 시민들의 안정과 평화가 절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국가체제는 개인들이나 시민의 그룹이 폭력을 행사하면 범죄행위로 규정되어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데, 군대라는 더 큰 폭력조직 공권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있어도 언제든 국민들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코스타리카 국민들은 나라는 강제력을 행사하는 곳이 아닌 자신들의 자발적 의사가 결집되어 유지되는 공동체라고 인식한다. 군대나 억압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해지고 국가 경제도 산업체제지만 공업화가 되는 것을 시민들이 원치 않는다고 한다. 나라의 풍광과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투철감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나라를 방문할 때 호텔에 묵고, 도박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자연과 평화로운 사회를 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성적이고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있다.

분단국가인 한국에서는 이런 상상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오히려 우리를 가두는 근원적인 질곡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군대도 군대지만 통일도 마찬가지다. 언젠간 해야 하지만 잘 이루어내려면 높은 이상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성장시대가 끝을 향해 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요컨대 앞으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명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으면 언제 전쟁이 터지거나 전 세계가 혼돈에 빠질지도 모른다. 결국 대답은 민주주의 밖에 없다. 어떻게 민주주의를 강화시키고, 지속가능한 삶을 만들지는 우리의 상상력과 토론에서 나온다. 용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