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 - 요비


솔직히 에콜로지, 그리고 평화에 대해서 내 스스로가 뚜렷한 정의를 내려본 적이 없다. 그냥 사회에서 통용되는 기본적인 의미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전에는 에콜로지에만 너무 내 시선이 쏠려 있어서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잘 읽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한번을 더 읽어야했다. 평화와 환경? 지금까지 내 삶을 돌아봐도 두 단어는 무언가 비슷한 의미를 가진 것 같다. 무언가 착해 보이고, 그려지는 색깔은 푸른색, 파란색이고 사람들이 웃는 모습이 상상이 가는 것들로 나에게 다가왔다. 에콜로지를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면 ‘원래는 '생태학'이라는 뜻으로, 천연 소재를 주로 사용한 자연 지향적 룩의 총칭이다. 자연스러운 멋을 부각시키기 위해 천연 섬유, 천연 염료로 염색된 소재를 사용하며, 자유스러움과 편안함, 활동성이 강조되는데, 이는 인간과 환경, 패션을 조화시킴으로써 순수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에콜로지 [ecology] (두산백과, 두산백과)라고 정의 되어있다. 


책에서도 나타났듯이 ‘카운터컬쳐’를 기반으로 한 에콜로지, 평화운동들이 점점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들이 같이 호흡할 수 있어지면서 이 사회 전반적으로 아무도 모르게 퍼져나가고 있는 듯 하다. 대안학교를 예로 들어보자. 기독교학교든, 그냥 일반적인 대안학교들 혹은 간혹 예외가 있을 수 있는 제도권 학교들의 공통분모는 ‘행복’ ‘평화’이다. 다만 그것들을 찾아가는 방식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이 사회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제도권 교육 속에서 우리는 그와 반대되는 교육을 받고 가르치며 우리 방식대로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가운데 교육을 하는 주체와 교육을 받는 주체는 서로의 엄청난 호흡으로 그 삶의 방식들을 찾아간다.


놀면서 배운다? 제도권교육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심지어 일하며 배운다? 학생이 공부할 시간도 없어 죽겠는데 일을해? 실업계 학교 학생들이 아니고서는 학교 부적응자, 날라리로 불릴만 한 것들이다. ‘놀이, 논다’ 자체가 우리 사회 특히 10대, 20대에게는 절대로 해당사항이 되면 안될 단어들이다.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논다?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렇게 책상에서만 앉아서 죽어라고 공부하고 일하고 도대체 쉴 시간이 없다. 쉬려고 해도 뒤쳐질까 두려워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다시 돌아간다. 마침 쉴 수 있는 시간이라도 생기면 여행을 간다든지, 아니면 그저 휴식을 취한다든지 정말 육체적인 휴식을 취하는 것 뿐이다.(절대 여행이나 휴식이 나쁘다는게 아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일시적인 효과일 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육체는 피로, 스트레스로 찌든다. 이것은 어려서부터 많은 것을 많이 접하지 못하고 놀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는 많이 만지고 싶고 놀고 싶어도 어디 우리 부모님이 가만 놔 두겠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본문의 내용을 빌리자면 그 놀고, 새로운 것들을 접하는 것들을 부모님들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것이다. 논다는 것은 원래 관리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놀이는 사물의 가치를 바꿔보기도 하고, 자우롭게 이야기를 하면서 만들어보기도 하고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고 연극을 하기도 하고 놀이에서 또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가는 정말 창의적인 활동이다. 나 역시도 옛날에 거실바닥에 이불 깔아놓고 이불이 배 인냥 이불위에 올라가서 선장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선장역할도 하고 해적역할도 하고. 여전히 생생히 기억난다. 하지만 요즘은 놀지도 못한다. 혹은 컴퓨터 게임, 스마트 폰 이라는 새로운 놀이가 등장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놀이 문화도 많이 변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컴퓨터를 하면서 스마트폰속 게임을 하면서 까지 경쟁을 하면서 놀아야 된다. 그리고 컴퓨터, 스마트폰이라는 틀 안에서 아이들은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다. 놀이를 하면서 까지 경쟁심을 가져야 하고 이겨야 하는 아이들, 그리고 이 시대의 사람들. 놀이가 행복의 잣대를 움직이고 있는게 아닐까?


본문중에 ‘가난이 고통이라니 정말일까?’ 라는 파트가 있다. '행복의 잣대‘라는 말이 나와서 몇자 더 써본다. 돈이 없어서 고통스럽고 불행하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다수의 사람이 그럴 것이다. 가난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서기도 하겠지만 본문에 따르면 가난하기 때문에 싫은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고 가난하기 때문에 관리나 억압에 저항하지 못하고 착취당하기 때문 이라고 나와있다. 가난해도 행복 할 방법은 있다. 하지만 내 행복을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내 스스로 조금 먹고 조금 쓰면 되는 거지만 주위에서는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차별하고 냉대한다. 정말 더 화가나는 건 가난하기 때문에 차별하고 냉대하는 사람에게 웃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의 희망이라도 보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 사회구조는 그런 것인가? 우리는 가난해도 조금의 희망이라도 찾아보려고 차별하고 냉대하는 사람에게 웃어야 하는가? 정말 대안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