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h, Labor, and Neoliberal Governmentality in South Korea 

1. 들어가는 글: 청소년들과 함께 만든 Temporary Autonomous Zone 이야기

좀 개인적인 이야기로부터 논의를 시작해볼까 한다. 1997년 IMF 구제 금융 위기를 접하고 나는 사실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이 군사독재정권을 국민들의 힘으로 무너뜨리는 과정을 보아왔고, 또한 페미니즘 운동이 대단한 호응을 받고 확산해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 충격은 컸을 것이다. 정치경제학에는 무지한 편인 나는 순진하게도 한국사회가 그 방향으로 열심히 노력만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매우 합리적이고 살기 좋은 세상이 펼쳐지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까지 나는 정부가 하는 일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정부부처 출입은 삼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는데 나라가 ‘도탄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자, 여러 정부기관에 자문 초대에 기꺼이 응했다. 나는 서울시에서 실업대책위원회 위원으로 여성, 청소년 정책자문위 활동을 했고, 문화관광부에서 청소년 정책자문위원회의 위원이 되어달라고 했을 때 역시 기꺼이 수락했다. 

군사독재정권이 무너진 후 첫 정권인 김영삼 정권(1992-1997)은 세계화와 정보화를 강조하였고, 김대중 정권 (1997-2002) 역시 지식기반사회라는 단어로 정보사회로의 비약을 강조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나는 그간 페미니즘 운동에 쏟던 관심을 청소년쪽으로 돌리면서 청소년들을 포스트 포디즘,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의 주민으로 살아가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청소년 정책의 초점을 ‘보호’가 아니라 ‘empowering/육성’에 맞추고 입시 교육을 개혁하고 청소년들의 자발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자신이 원하는 경험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자율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다가 1999년에는 급기야 서울시로부터 건물과 운영비를 위탁 받아서 그런 목표를 가진 청소년 공간, 하자 센터를 운영하게 되었다. 그 시점에 내가 한 것은 청년들을 문화와 다품종 소량생산체제의 주제로 empowering 시키는 것이었다. GNP가 1만 불에서 6천 5백 달러로 떨어졌고 가족과 이웃들이 대거 실직을 하는 패닉 상황이어서, 정부는 정부대로, 시민사회는 시민사회대로, 청년들은 청년으로서 각각 살길을 찾으려 노력하는 시기였고, 청소년들 역시 매우 주체적으로 자기활동공간을 갖고자 하였던 때였다. 

하자 센터에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데 학교에서 영상 촬영도 못하게 한다고 학교를 그만 둔 아이, 록 밴드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 디자인 작업에 흥미가 있는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그런 센터를 만들기 위해 세계의 청소년 센터를 방문해보았는데 당시의 하자 센터처럼 의욕이 왕성한 청소년들이 모여드는 곳은 별로 없었다. 모스코 인터네셔날 필름 스쿨이 하자센터와 비슷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곳이었고, 그 외 북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는 아주 열악한 상황에 있는 청소년 몇 명을 데리고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하자 작업장- 영상, 웹, 대중음악, 디자인, 대중문화 비평 분야-에는 뭔가 ‘하고자 하는 열망’에 가득한 이들로 붐볐다. 그들은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놀이이자 일인 어떤 활동을 열심히 하였는데, 그 일이란 지금 생각해보면 Maurizio Lazzarato가 정의한 immaterial labor의 성격을 띤 활동이었다.

Lazzarato는 post-fordism 시대의 working class 가 수행하는 노동의 변화를 분석하면서 immaterial labor라는 개념을 부각시키게 된 것 같다. Lazzarato는 그의 짧은 글 “Immaterial Labor’ 첫 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개념 규정을 시도하고 있다. “The concept of immaterial labor refers to two different aspects of labor. On the one hand, as regards the ‘informational content’ of the commodity, it refers directly to the changes taking place in worker’s labor processes in big companies in the industrial and tertiary sectore, where the skills involved in direct labor are increasingly skills involving cybernatics and computer control. On the other hand, as regard the activity that produces the ‘cultural content’ of the commodity, immaterial labor involves a series of activities that are not normally recognized as “work’- inother words, the kinds of activities involved in defining and fixing cultural and artistic standards, fathions, tastes, consumer norms, and mor, strategically, public opinion.” 이 글에서 Lazzarato는 부르주아들의 지위 과시의 전유물이었던 문화가 본격적인 소비사회와 포스트 포디즘 시대로 접어들면 보다 생산적인 성격을 띠게 됨에 주목한다. 1970년대를 기점으로 노동의 대변혁 ‘great transformation’이 일어난다고 보는 그는 이를 기점으로 문화적 활동과 생산은 계급 상관없이 모든 능력 있는 이들을 참여시키게 되는 ‘mass intellectuality’ 현상을 보게 되고, 이때는 노동과 창의성의 구분, 저자와 독자의 거리가 좁아진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그는 새로운 노동의 단계에서는 “workers are expected to become ‘active subject’ in the coordination of the various functions of production, instead of being subjected to it as simple command.”하게 된다고 한다. He further concluds “ “we arrive at a point where a collective learning process becomes the heart of productivity, because it is no longer a matter of finding different ways of composing or organizing already existing job functions, but of looking for new ways (2007:2)

사실상 내가 하자센터를 하면서 키워내고자 했던 청년들은 public intellectual이면서 flexible labor, information socity, 그리고 culture industry 또는 creative industry를 리드할 인재들이었다. [하자 작업장 학교 Haja Production School]라는 대안학교에서는 창의적 글쓰기로 사회비평을 훌륭하게 해낸 십대논객도 키워내었고, 이라크 전쟁 반대 릴레이 콘서트를 기획하는 청년도 있었다. 하자 센터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십대들은 ‘두발자율화’를 요구하면서 온라인 상에서 데모를 했고 투표 나이를 20세에서 19세로 낮추자는 운동을 해서 성사시키기도 하였다. 이런 운동은 다른 한편 기존 학교의 권위는 추락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학교를 탈출한 아이들은 ‘똥싼 바지’(힙합 바지)를 입고 거리를 휩쓸었으며, 염색한 머리와 피어싱으로 자기들을 치장하고, ‘튀는’ 개성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호프 집이나 콜라텍에 몰려다니며 춤을 추었으며 피시 방에 몰려다니기도 했다. 대중가수를 위한 팬클럽이 조직되어서 십대들은 거대한 군중으로 세력화하였다. 이들에게는 ‘신세대,’ ‘I 세대’,’N 세대’ 등의 별명이 붙여졌다. 밀리오레, 명동 등등에는 무대가 들어섰고 끼 있는 청소년들이 수시로 공연을 하면서 관객들을 끌어 모았다. 밤새 집에서 인터넷에 접속해서 놀고, 학교에 가면 수업 중에 잠자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그래서 더 이상 학교에서 수업을 하기 어렵게 되었고 이런 현실을 포착한 미디어에서는 ‘교실붕괴’라는 단어로 학교의 현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교육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라고 촉구하였다. 부모와 의견이 맞지 않아서 일시적으로, 또는 영구적으로 가출하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았다. 한국의 제도교육에 불만을 가진 부모들은 아이를 외국으로 데리고 가나가도 하고 (조기 유학) 직접 대안학교를 만들기도 하였다. 청소년들 위한, 청소년들에 의한 politics of identity, politics of culture가 확실하게 효과를 내는 시대였던 것이다. 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일시적 자율공간’이 ‘대안적 공공문화’가 될 것이라면서 ‘creative commons’와 ‘아고라’와 같은 개념을 부각시키기도 하고, 이들의 활동을 인터넷 열풍, 월드컵 거리 축제, 한류열풍과 연결하여 연구 논문을 쓰기도 했다. 이 세대는 신세대라는 별명으로, 또는 그들이 좋아했던 고등학교를 중퇴한 가수 서태지의 이름을 따서 서태지 세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나는 조만간 그런 청소년들의 활동의 기운이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대안학교들이 붐을 타 늘어나고 제도교육도 크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십여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중고등학생들은 다시 학교와 집으로 돌아가고 거리는 조용해졌다. [하자 작업장 학교]에도 무엇을 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가진 아이가 아니라 그런 욕망이 없는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새로 들어온 학생들이 다정하게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쿨한’ 선배를 보고 섭섭해하고 ‘비인간적’이라고 비난하며 학교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서로 따뜻하게 인사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학생들이 대안학교에 오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과 정부에서는 연신 창의 산업, 문화산업을 강조하면서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떠들어대지만 그런 아이들은 점점 비물질 노동과는 거리가 먼 입시공부의 세계로 다시 들어가고 있었다. 청소년들의 자발성과 창발성에 의해 이끌어지던 활기 있는 노동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대신 청소년들은 입시 학원으로 몰려갔고, 학원에서 기획한 입시 설명회 강당에는 어머니들로 가득 차고 넘쳤다. 

나는 이 글에서 열심히 비물질 노동적 활동에 몰두했던 1990년대 한국의 청소년들이 갑자기 집과 학교로 다시 되돌아간 현상을 서술해보려 한다. 그리고 자발적이고 발랄하게 ‘비물질 노동’에 전념하던 1990년대의 창의적 청년들이 그런 노동을 통해 형성한 집단적 주체 collective subjectivities와 sociality와 forms of society의 특성은 무엇이고, 반면 최근에 급격하게 ‘공부’라는 중노동에 지속적으로 몰입하게 된 신자유주의적 세대의 주체의 특성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런 급격한 변화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발달로 볼 때 무엇을 의미하는 지 생각해볼 것이다. 구체적으로 급격한 단절로 보이는 이른바 ‘서태지 세대’에서 ‘탈서태지 세대’로의 이행, ‘신세대’에서 ‘신자유주의 세대’로의 이행 과정을 분석해보고, 그런 변화를 통해 글로벌 자본주의와 비물질 노동, 그리고 ‘청년’에 대한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지 생각해보려 한다. 나는 고도압축적 근대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비서구 주변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자본주의 분석에서 교육과 가정이라는 영역의 분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이야기해보려 한다. 

2. A Sudden Transformation of Universities from creative commons to market place 

서구에서 immaterial labor에 대한 논의는 실제 일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듯 한데, 대학에 있으면서 청년들을 관찰해온 나는 직업을 갖기 전 대학생때의 활동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 보려 한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교육열이 매우 높은 사회이고 초고속 경제성장도 그런 교육열에 의해 크게 가능했다는 논의까지 나올 정도이다. 2009년 서베이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대졸 이상 비율 세계 두 번째를 기록했다. 현재 25-34세 국민 가운데 전문대 이상을 다닌 국민은 56%이고, 현재 고등학교 졸업생의 80%가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대학원 진학률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교육은 일류대학 입학을 목표로 한 치열한 입시전쟁으로 악명 높다.

대학 입학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대학생들에게 대학은 ‘해방구’ 그 자체였다. 고등학교 시절에 힘들게 견딘 만큼 그들은 대학에서 맘껏 자유를 구가하면서 그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보상을 받고자 하였다. 그들은 기계적 입시 노동으로 굳어버린 ‘몸을 풀기 위해’ 몰려다녔고, 밤새 술을 마시며 정치와 예술을 논했다.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대학생들은 1980년대까지는 선택된 엘리트였고 빛나는 존재였다.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 존재로서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있었던 1960, 70년대, 아무도 감히 대적하지 못할 군부의 총부리와 맞서 겁 없이 민주화 투쟁을 해낸 1980년대, 그 이후 나라의 문화 산업과 정보화를 주도할 인재로 기대를 모은 1990년대가 있었다. 

2-1) 1990학번 신세대

1987년 한국의 청년들은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군사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시점에 청년이 ‘일상의 민주화’를 향해, 그리고 ‘소비사회’의 주민으로서 ‘개인적’ 주체를 확립해가고자 했다. 자유와 개성, 자아실현과 자기 표현을 주창하면서 이들은 집단주의적이며 생산에 집착하는 기성세대를 비판하였고, 때마침 열린 온라인 상에서 정보사회의 early adapter로서 다양한 비물질 노동에 몰입하였다. 온라인 논객이자 문화비평가가 되어서 온라인 게시판과 광장에서 밤새 놀기도 하고 온라인상에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 ‘자기 표현’이라는 ‘문화 생산 활동’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수와 드라마가 인기를 끌도록 갖가지 방법으로 지원활동을 하기도 하면서 이른바 ‘비물질 노동’- informative, networking, creative, cultural, affective labor-을 무보수로 신나게 즐기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느라 바삐 움직였던 것이다. 

1995년 GNP 만 불을 기록한 즈음, 대학생들은 세계로 뻗어나가 친구를 사귀고 글로벌 문화 시민으로서의 몸을 만들어가고자 했다. 대학생들은 쉽게 휴학을 하고 너나 없이 새로운 경험과 만남을 기대하며 유럽과 인도, 타일랜드의 해변가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서울의 캠퍼스에서 종종 avien 물병을 그대로 가지고 다니는 여대생들을 보게된 것도 그즈음이다. 록 밴드들이 아주 많이 생겨났으며 그들 중에 공중파에도 인기를 끄는 팀도 나왔다. 영화 감독이 되겠다는 청년들이 수시로 인디 상영회를 여는가 하면 (국제적 명성을 지닌 봉준호 감독은 이런 시대를 열어간 첫 세대이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나온 드라마의 자막을 자발적으로 만들어서 보다 많은 이들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게 하려는 ‘공공적 헌신성’을 청년들도 많았고, 온라인, 오프 라인에서 다양한 잡지를 창간하는 이들도 많았다. 

물론 1997년 IMF 외환위기는 대학생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유학생활에서 돌아와야 했던 학생들도 있었고, 아르바이트로 베낭여행을 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이 경제 위기는 비물질 노동의 맛을 아는 청년들의 움직임을 좌절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더욱 분발하게 한 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그들의 눈을 ‘돈’쪽으로 돌리게 한 계기도 되었다. 특히 인터넷 벤처 분야는 바로 이런 청년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분야였고 대중문화 분야 역시 그러했다. 국가와 언론에서도 이런 청년들의 비물질 노동이 장차 스필버그와 같은 명감독이 되어 돈을 많이 벌어올 것이라며 그런 활동을 장려해 왔던 터였고, 기업에서도 LG Global Challenger와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새로운 문화자본을 가진 인재를 육성하겠다고 나섰다. 나는 그런 담론을 활용하면서 창의적이고 소통적이며 문화적이고 감정적인 노동에 몰두하는 청소년들에게 자율공간을 주고 싶어했으며, 그때 그들의 활동을 Temporary Autonomous Zone, Creative Commons, 또는 Alternative Public Culture를 만드는 일이라고 명명하면서 그런 활동을 부추긴 activist 학자 중 한 명이다. 

사실상 이들의 활동에 대해 더 이상 길게 묘사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 세대의 활동은 1960년대 미국이나 유럽청년들의 반체제 운동이나 히피운동, flower children 활동과 매우 흡사한 성격의 활동이었다. 유럽의 68 혁명에서도 유사한 면모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고, 1980년대 일본 신주꾸 거리를 메운 청소년들의 활동에서도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록밴드, 우드 스톡, 패션, 펑크, 힙합, 테크노 파디, 해적 방송, squatting, 언더와 인디 문화활동 등 이들이 펼친 다양한 문화생산은 이미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청년들이 근대화의 특정 시점, 대개 GNP 5천불은 넘긴 국가에서 올림픽을 치른 도시에서는 어김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금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중국의 청년들이 거의 똑같은 형태로 자기 찾기를 하고 신세대로 몸을 바꾸고 대중문화의 붐을 일으키고 있다. 청년들은 그들의 비물질 노동을 통해 한때 세상을 뒤집을 것 같은 에너지를 내곤 하였는데 한국은 그런 시대를 1990년대에 아주 집중적으로 거쳤던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첫째로 한국의 청년들이 그 시기를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압축적으로, ‘짧고 굵게’ 거쳤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고, 두 번째로는 때마침 열린 피시 통신과 인터넷이라는 기술적 환경(technological environment) 덕분에 정보사회의 early adapter로서 더욱 막강한 유스 파워를 형성해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1990년대 청년들이 국가와 기업의 축복까지 받으면서 열심히 했던 일종의 비물질 노동의 가시적 성과는 2000년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단 정치 문화 영역에서보면 2000년대 초반의 기적적 사건들, 예를 들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청년들이 벌인 ‘낙선 운동’, ‘네이버 지식인’을 통한 보통사람들의 지식과 지혜 공유 활동, 오마이뉴스와 같은 시민기자로 운영되는 시민 미디어 운동, 나눔 운동이 여기에 속한다. 대중문화분야에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대중음악이나 드라마 스타를 살려주는 온라인/오프 라인 팬덤 활동을 통해 대중문화산업을 활성화시켰으며, 2002년 전후로 불기 시작한 한류열풍은 이런 활동과도 연결이 될 것이다. 이들은 비물질 노동을 통해 달라진 몸과 취향과 기운을 2002년 한일 월드컵 거리 축제에서 한껏 자랑했었고,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없었던 인권변호사 출신 노무현씨를 문자 메시지와 온라인 통신을 활용해서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특히 이들은 ‘위로부터의 조직’ 없이도 자발적인 대중 모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2002 월드컵 거리 응원에서부터 미국 장갑차가 두 소녀를 치어 죽게 한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 그리고 FTA 미국 소 수입 관련 대대적인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민중적 표현/ 봉기의 형식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의 온라인활동의 결실이 시장에서 두드러진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2001년 리니지라는 온라인 게임에 동시 접속자 30만 명이 모여들었고 청소년들의 활동의 시발이 되었던 싸이월드 미니 홈피는 2003년 전국민 인구의 1/3인 천만명이 가입하는 성과를 내었다. 싸이월드는 사이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두 명의 대학생이 만든 사이트로 지금 미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Face Book과 기본적으로 같은 사이트이다. 

이쯤에서 이들이 비물질 노동을 통하여 만들어간 주체, 삶의 형태, 그리고 sociality에 대해 정리를 해보자. 일단 90년대 청년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존재를 강조하고 개성을 추구하였다. 욕망을 가진 존재로 자기를 드러내고자 했으며 수평적인 관계를 맺어 가고자 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적절한 시간만 주면 자기 주도적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오는 엄청난 학습과 소통능력을 가지고 있고, 성찰적이기도 하다. 시대를 하이퍼 텍스트 차원에서 읽어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기성세대와는 친하지 않았는데 대신 새로 생긴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많은 실험을 할 수 있었다. 한국의 청년들은 1950- 70년대에 서양이나 일본의 청년들이 시도했던 청년 운동, 곧 반체제적 문화운동 anti-eabablish cultural h revolution을 기성세대와 직접적으로 마찰을 하지 않은 채 온라인에서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온라인을 통해 소통능력, 감정과 취향의 공유, 정보 공유를 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원하는 ‘가상의 가족 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록밴드멤버들처럼 이들은 가정과 학교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자기들끼리 society 를 만들어냈으며, 자기들의 이상을 추구하고 실험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서태지라는 걸출한 창의적 음악가가 탄생하기도 했고, 한류 대중 문화의 걸작품도 줄줄이 나올 수 있었다. 이들에게 부모는 극복의 대상일 경우가 많았으며 가정은 하숙집이었다. 대신 이들의 시공간은 대학 캠퍼스와 거리와 클럽이었고 그런 곳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작당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문화의 시대, 벤처의 시대, 실험의 시대를 살아간 이 청년들에게는 ‘cool’ 세대라는 별명도 따라 다닌다. 한 때 이들이 만들어낼 세상은 아주 밝고 희망찬 세상으로 이어질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게 진화되고 있지 않았다. 2005년 정도부터 이 비물질 노동을 해온 이들은 아주 힘든 상황을 맞이 하고 있다. 다양한 콘텐츠나 기획 일을 하면서 자신의 창의력으로 살아온 이 30대에 접어든 청년들 중에는 운 좋게 기업에 취직하여 안정적으로 살게 된 경우도 있었지만 다수는 먹고 살기조차 힘들어졌다. 사실상 한국은 ‘산업화에는 뒤졌지만 정보화에는 앞장서자’라는 슬로건 대로 인터넷 인프라에 있어서는 2004, 5년까지는 단연 세계 5위에 드는 국가였고, 특히 젊은 국민들이 인터넷 실험에 대거 참여함으로 대대적인 실험적 작업이 가능했던 곳이다. 현재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페이스 북이나 트위터 같은 것은 이미 한국에서는 싸이월드라는 사이트로 2000년도 초반에 만들어졌던 것이고, 트위터는 미투데이라는 이름으로 2007년에 서비스를 했던 사이트이다. 세계 최초의 실험작업이면서 한국 네티즌들에게는 큰 인기를 누렸지만 온라인 게임산업을 빼고는 현재 한국기업 중 글로벌 차원에서 성공을 이룬 인터넷 기업은 아직 없다. 또한 시장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형태로 가면서 비물질 노동을 하는 이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돈벌이, 내지 ‘돈 굴리는’ 노동에 청년들이 참가하기도 했다. 이는 2000만, 곧 국민의 절반이 펀드를 샀다는 2007년 전후의 변화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창의적이고 문화적인 활동을 여전히 벌이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는 디시 인사이드 정도에 불과하다. 그들은 이 인터넷 공간에서 찌질이(못난이), 무개념(개념이 없다), 잉여질(쓸데 없는 짓), 레알 (리얼하다는 말을 레알이라고 바꿔 말함으로 리얼하다고 말하는 이들을 소외시키는 것) 등 자기 패배적이고 시대 풍자적인 말들을 만들어내어 유통시키고 있다. 

요약하면 2002- 2004년경에 월드컵 거리 축제와 한류 열풍 등을 기점으로 청년들의 에너지가 급격히 줄어들었는데, 시장이 비물질 노동을 통해 축적된 인재와 자원들을 일정하게 흡수한 반면, 민간에서는 그런 장이 다시 열리지 않았다. 그 즈음 거대 포털들간의 살벌한 전쟁이 일어나 인수합병이 일어났으며 head hunting 스카우트 전이 벌어지면서 모든 영역이 돈이 매개된 영토가 되어가고 있었고 시장의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인터넷 활동에 규제가 걸리고, 감시가 들어가면서 비물질 노동의 장은 급속히 위축되어갔다. (이 점에 대해서는 Lessig, 그리고 나의 2008 논문 참조) 자아 실현을 공공적 장- 민주화의 발전이든 대중문화의 발전이든-에서 해왔던 청년들이 돈의 세상에 포섭이 되면서 즉 시장근본주의 원리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상황은 크게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의 자본 환경 못지 않게 심각한 현장은 더 이상 비물질 노동에 몰두하는 청년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면 2000년대 학번 대학생들은 어떤 식의 노동과 삶의 경험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2-2) 무한 경쟁에 돌입한 신자유주의적 아이들 

2010년 1월 1일자 조선일보에서는 ‘88올림픽 전후로 탄생, 글로벌 경쟁력으로 무장, 맑고 밝고 낙관적인 G 세대’가 등장했다고 쓰고 있지만, 그 신문에서 말하는 열등감이 없고 다양한 글로벌 경험을 하고 자랐으며 상상력과 창조력이 뛰어나다는 인간형의 모델은 2003년 서울의 가장 좋은 엘리트고 (과학고)를 졸업하고 컴퓨터공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후 병역특례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 근무하는 청년이다. 아마도 G 세대는 최근 대학광고에서 즐겨쓰는 “0.1%에 드는 인재”들일 것이다. 반면에 다수는 청년 실업시대를 매우 불안해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세대로 그들의 평균임금을 계산한 한 경제학자는 그들을 ‘88만원 세대’라고 부르고 있다. 그들은 청년 실업시대를 피부로 느끼면서 그 문제에 집착하게 된 세대이다.

2002년 정도부터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내가 자신들을 절벽에서 떠민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확실한 것이 잡히지 않는 길을 가도 된다고 말하는 인류학 수업이 불안했던 것이다. 이들은 문화의 세대와는 거리가 먼, 생존의 세대인 것이다. 고등학교 이전부터 “이기지 않으면 네가 잡혀먹힌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를 모토로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경쟁을 했고 그 생활을 나름 즐겼다고 한다. 대학에 들어와서 다시 한가지에만 전력을 하면 되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은 그들이 한 공부가 투입한 시간과 비용 대비하여 정확하게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물리적 노동’의 정확함을 좋아하는 이들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 것을 목표로 또 다른 경쟁판에 돌입한다. 그들은 선배들이 한 여행과 실험은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말했다. 최근에 들어온 신입생은 고등학교때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타서 외국 갈 기회가 생겼는데도 그런 좀 다른 활동을 하면 인생을 망치게 될까봐 그 기회를 붙잡지 않았고 하였다. ‘어학연수’는 가지만 ‘배낭여행’ 은 가지 않는다고 하고, 효과가 확실한 노동이 아니면 좀체 몸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들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바로 영어 공부, 학점 관리, 그리고 고시 공부로 들어가면서 미래 계획을 세우고 중노동을 할 태세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까지 이들의 중노동은 상당히 자발적이었으며 자기 계발서를 읽고 프랭클린 다이어리를 쓰면서 철저하게 자신이 기획한 대로 이루어졌었다. 이들의 노동, 그리고 주체성, 그리고 sociality는 어떤 특징을 지닐까. 또한 이렇게 청년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공부라는 노동에 매달리게 하는 신자유주의적 가버넌스의 특징은 무엇일까? 나는 내 문화인류학 개론 수업에 들어오는 대학생들에게 자신의 공부비법, 그리고 자신이 다닌 학원과 매니저 맘 담론에 대한 글을 써보라고 하면서 그들의 공부에 대한 생각과 생활세계에 대해 많은 토론을 하였다. 그래서 대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찾아낼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이들은 매우 안정지향적인 노동을 해왔다. 시간을 투여한만큼 결과가 나오는 입시공부가 이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어서 공부 중독증이 생겼을 정도이다. 이들은 어릴때부터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초등학교 때 IMF 금융 위기 소식을 들었고 주변에서 힘들어하는 분들을 보아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신들은 쿨한 인간이 되려는 형이나 누나가 어리게 보인다고 했다. 아이들이 점점 더 경쟁이 심한 사회에 살 것이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학원에 보내어서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미리 학원에서 배우게 하였다. 이른바 선행학습 study a step ahead을 한 것이다. 학원에서 미리 배운 것을 학교에서 배우고 100점을 받는 그런 체제로 공부를 하였다. 그래서 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가난한 집 아이는 아주 특출하고 의지가 뛰어난 경우가 아니면 아예 수업진도를 따라 갈 수 없었다. 

이 세대는 자연스럽게 ‘승자독식’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있다. 자신들의 공부비법을 써보라는 숙제에서 이들은 “공부는 마라톤이다.” “이기지 않으면 죽는다”라고 썼다. 자신들은 초경쟁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경주마이고 경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공부를 어떻게 재미있게 만들어낼지를 많은 궁리을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들은 경쟁상대를 일부러 만들어낸다든지, 예쁜 학용품에 많은 돈을 소비한다든지, 아주 편한 옷을 입고 학교에 간다든지 인터넷 명강사를 따라 해본다든지, 공부의 의욕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연애를 하는 등의 방법을 써서 자신을 동기화 시켰다고 했다. 예전의 학생들이 지옥훈련이라고 생각하면서 무조건 버텼다면 이 학생들은 그렇게 무식하게 참지는 않은 것이다. 이들은 적어도 3년간 내신 경쟁과 수능 경쟁 등 오로지 경쟁의 게임을 하면서 “나는 이긴다, 고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몸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일정하게 즐겼던 편에 속한 이들인 것이다. 나름 ‘즐겁게’ 공부를 했던 이들은 대학에 들어와서도 같은 방식으로 취업준비용 공부에 돌입한다. 

이들이 대학에 들어오면서 ‘스팩’이라는 단어가 유행하였는데 그것은 ‘specification’의 약자로 컴퓨터의 사양을 뜻한다. 자신들의 소비자가 사줄 높은 사양이 되기 위해 좋은 조건들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고 대학에서의 생활은 그 스펙 쌓기 노동을 하면서 지내게 된다. 혼자 세 개의 전공을 하면서 법대를 준비하던 여대생이 2009년 과로사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런 일은 어떤 면에서 일어날 확률이 높은 사고일 것이다. 학생들은 점점 영리해져서 수업도 점수를 잘 주는 교수에 대한 정보를 얻어서 그 수업을 듣고, 군대를 갈 때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영어공부와 취직 공부를 할 수 있는 식으로 계획을 짜서 군대에 간다. 예전처럼 군대에 가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해봤다는 이들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기본적으로 비물질 노동을 하는 것을 바보스러운 짓이고 쓸데 없는 ‘삽질’이 될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특수한 계층, 곧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과 자신의 체력’이 받쳐주는 경우에 좀 다른 노동을 하기도 하겠지만, 그들은 ‘엄친아’ mother’s friend’s son’이다. 학생들이 보기에 그들(엄친아)은 자신들이 따라잡지 못할 존재라는 것이다. 매우 각박한 생존을 염려해야 하는 이들은 그런 면에서 윗세대에 비해 ‘계급’을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상대적 비교우위에 더 민감하다. 

두 번째로 이들의 관계적 특성과 subjectivity대해 말한다면, 일단 여학생들은 “적당히 예쁘고 적당히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고 싶었다”는 이들이 많다. 남학생들은 돈 걱정 안하고 평범하게 결혼해서 자기 집을 가지고 사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이들 세대에서는 공무원과 교사가 인기를 끄는 직업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전 세대에 비해 가족중심적이고 특히 어머니와 아주 가깝다. 이들 중에는 가장 좋은 친구, 또는 유일한 친구가 누구냐는 질문에 ‘어머니’라고 답한 이들이 많다. 이들은 갈수록 힘들어지는 무한경쟁상황에서 입시 정보를 알아봐주고 밥을 해주고 차로 데려다 주는 등 ‘지원사격’해주는 어머니가 무척 고맙다고 말한다. 이른바 매니저 맘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학생은 극히 드물고 대부분이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이들은 부모가 자신의 학원비를 위해 적지 않은 투자를 한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부모에게 감사하고 또 한편 미안해 한다. 자신들이 그 돈을 쓰지 않으면 부모님이 좀 편히 늙어갈 수 있을 것이고, 또한 그 돈을 자신들이 언젠가 갚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에 미안하다고 했다. 그들 부모가 자신들보다 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고, 또한 그런 부모와 잘 지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부모에게 반항적인 편인 윗세대와는 아주 다른 부모자식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사춘기적 저항은 중학교 때 잠시 했다는 식으로 가볍게 말한다. 이들은 집을 떠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라’라거나 창조적이라 되라는 말이 듣기 싫다고 했다. 안정적인 것, 자기 보존을 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어머니의 매니징을 받거나 학원 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자라서 아주 친한 친구나 선배가 없다. 그래서 아주 많은 것을 어머니와 의논한다. 이런 매니저 맘 현상은 어른들 사이에서는 문제적인 상황으로 인지되어서 판사가 된 아들/딸이 판결문을 내기 전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는 말들이 오가곤 한다. 

이 세대는 국가의 교육정책을 믿지 않기로 한 자기 주도적인 어머니들이 ‘관리하면 되더라’는 확신을 가지고 고도의 정보력과 자금으로 키운 세대이다. 부모와 매니저의 조직적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아이돌 스타들’이 등장하면서 자생적인 가수들이 사라지듯이 부모와 학원이 매니징 하는 학생들이 일류대학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물론 두리번거리거나 빈둥대지 않는다. 투입한 만큼 결과가 나지 않는 ‘비물질 노동’은 피하면서, 경주마가 훈련을 받듯 비슷한 팀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한다. 그들은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도 못한 채 맹훈련을 하고, 살을 빼기 위해 밥을 굶기도 하고, 성형수술도 해야 한다. 대중가수가 되고자 하는 아이들만이 아니라 다수의 아이들이 그런 관리되는 구도 속으로 들어가 비물질 노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친구보다는 ‘신자유주의적 도구적 모성’을 택한 이 세대는 자연스럽게 윗세대와는 상당한 단절된 방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대학생 사이에서는 ‘에미가 좋아하겠다’는 말이 유행하는 데 그 말은 자기들이 끼리끼리 모여 싼 값으로 여행을 가는 모임을 어머니가 좋아할 리가 없다는 반어법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어디에서나 수퍼 에고로 작동하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세번째로 이들의 forms fo sociality는 기본적으로 혼자이다. 어울리면서 노는 것에 대한 경험은 별로 없다. 모든 것은 자기가 스스로 감당해야 하고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고 남과 소통하거나 작당을 하면서 하는 일은 해본적이 없다. 누군가를 돌보고 소통하고 싶어하지만 해본 적이 없어서 두려워한다. 그래서 주로 자기방에서 혼자 여러가지 컴퓨터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지낸다. 많은 대학생들이 입학하자마자 각종 고시공부에 돌입하는 이유도 그것이 안정적인 직장을 보장해주기도 하지만, 혼자서 열심히 하면 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를 쓴 경제학자와 함께 쓴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20대 상상을 시작하다는 책]에서 대학교 3학년 생인 서명선은 “독방에 처박혀 혼자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날 완벽한 인간으로 변신하는 날이 온다는 판타지”를 자기 세대는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2009:237) 그는 또 자신들은 소비 속에서 자랐다면서 “각종 최신형 기기와 미디어는 자신들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심지어 자신들의 단 하나의 사명인 ‘수능을 잘 치기 위한 공부’도 소비로 해결했다”고 쓰고 있다. “여가까지도 어른들이 모두 세팅해 놓은 게임의 세계에서 해결했기에 자신들은 새로운 것들을 시도할 기회도 욕구도 생길 수 없었”는데 그것은 이것은 자신들이 어렸던 1990년대에 부모의 재정적 여유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238) 그런데 갑자기 부모들의 경제력이 약해지면서 자신의 삶이 변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보게 된 이들이 많아졌다. 이런 상황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내동댕이쳐지는 경험’이었고, 이후부터 오로지 “자기 혼자 온전하게 세상과 맞서야 한다는 극도의 불안감과 자괴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대학 학생회 활동을 하려고 했던 명선은 타인은 물론 자신조차 불신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일을 벌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떤 면에서 경쟁에 길들여진 이들은 혼자 있는 것이 가장 편할 상태일 것이다. 자기 성찰을 시작한 한 학생은 “경쟁의 독을 빼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명선은 소통에 대한 기대는 큰 만큼 “조금이라도 감정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바로 그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자신이 상처받기 전에 얼른 그 관계를 끝내버린다”고 적고 있다. (239) 연애를 두어 번 하고 나서는 감정노동이 힘들어서 더 이상 연애를 하지 않기로 하였다는 남학생들도 생겨나고 있다. 명선은 자기 세대는 “등록금이 일년에 10%가 올라가도 무관심한 척 하면서 편의점의 삼각김밥을 살 때는 10퍼센트 할인되는 카드를 꼭 챙기는” 사람들이라면서 극히 개인적인 자신 외에, 사회에 대해서는 거의 감이 없이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가는 자기세대는 ‘잉여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글을 맺었다.

이들은 집에 여유가 있고 방이 커서 부모가 간섭을 안 하면 어떻게든 집에 붙어서 살려고 한다. 그러나 집을 나와 살아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등록금은 점점 비싸지고 부모의 경제사정도 좋지 않아서 장기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방살이 precarious one room living’를 하는 대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위의 같은 책에서 대학 4학년 박재용은 자기 세대의 거처는 앞으로도 ‘온전한 집이 아니라 방으로 여겨지는 곳’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2009: 192-198) 경제력이 되면 원룸이나 오피스텔, 아니면 옥탑방이나 반지하방, 그리고 지하방, 그리고 침대 하나만 들어가면 가득 차는 고시원이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들이고 “이런 방들 사이에서 20대들은 끊임없이 쳇바퀴를 돈다”는 것이다.(193) 방살이는 집의 억눌린 분위기에서 벗어난 자유, 혼자 있을 수 있는 자유, 성인으로서 자신을 책임진다는 자유를 잠시 선물하지만 기본적으로 고립된 섬이다. ‘고립된 섬’에서 살다보면 사회성이 줄어들고 자신감이 없어진다. 이들은 눈에 띄면 오히려 힘들다는 생각에 점점 더 투명인간이 되어간다. 재용은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이룩한 과도한 욕망의 부모세대의 자식들이 경제적 약자이자 ‘방살이’ 족으로 남게 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일 수도 있다고 하면서, 이제는 바로 그런 방살이의 주거 형태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20대들은 연대를 시작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 주거권에 대한 생각, 일인 가구로만 살아가게 될 미래에 자신과 다음 세대가 살아갈 모습을 상상하며 동거를 시작하라는 것이다. 

그 짧은 30년 안에 대학생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너무나 빠르게 고체 근대에서 액체 근대로 넘어가고 있는 한국 사회를 만난다. 식민지 경험을 가진 나라로 유일하게 OECD 국가가 되었다는 한국인 만큼 한국이 가진 특수성도 있을 것이고 예외적인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방살이를 하는 지금 세대 대학생들의 모습에서 일본의 히키코모리의 모습을 보기 시작한다. 늘 먼 곳에 있는 듯한 일본이 갑자기 가깝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한국이 또 한번 거대한 변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3. Discussion: from neoliberal politics to post-capitalist politics 

앞장에서 나는 십여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한국의 청년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스케치해보았다. 동료들과 어울리며 활발하게 비물질 노동을 하면서 문화를 창조하고 싶어하던 ‘신세대’ 대학생들은 급격히 사라지고, 경쟁적이고 안정지향적인 신자유주적 kid들이 캠퍼스 공간을 메우기 시작했다. 더 이상 대학은 비물질 노동을 하면서 쉬어가는 곳, 새로운 몸을 만들고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곳이 아닌 것이다. 입시 경쟁은 대학에서도 지속되고, 그 경쟁은 limitless무한한 경쟁이고 적대적 경쟁이다.

“스펙을 얼마나 높이 쌓아야 ‘신의 직장’에 입문할 수 있나?”는 질문을 던지면서 좀 다르게 살아보자는 말을 던지는 대학생 신문도 생기긴 했지만 청년실업이라는 공포의 마술에 걸린 청년들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다수는 기존의 주류적 직장 곧, 법대, 의대, 공무원 고시, 교사, 그리고 대기업 사원 등 한정된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이들은 “딴짓 하면 안 된다.” “한눈 팔면 큰일 난다” “남을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살벌한 주문을 외우며 분(mimute)단위로 시간관리를 하며 지낸다. 남보다 조금 더 ‘marketable body’를 만들기 위해 ‘기계적 노동’을 군소리 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스펙의 리스트’에 포함되는 노동 외의 모든 노동은 ‘전망이 없는’ 쓸데 없는 노동이며 기피해야 할 일이다. 뚜렷한 목적없이 배낭만 매고 새 경험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거나 록 밴드를 만들거나 영상을 찍고 해적 라디오 방송을 해온 ‘언더’, ‘인디’계 청년들은 더 이상 후배들의 부러움을 사는 창의적 인재가 아니라 ‘루저’ 또는 ‘철이 안 든’ 사람들이다. 아이들은 더 이상 염색을 하지 않고 단정한 헤어컷에 얌전한 옷을 입기 시작했으며, 문화, 창의, 개성, 다양성, 실험, 자기 표현 등의 단어와는 가능한 한 멀리한다. 중심을 비판하면서 주변에서 새로운 중심을 만들어보려던 선배들과 달리 이들은 기존의 중심을 향해 달려가기로 한 것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경쟁적인 agents 이지만 개인들은 만나보면 전세대에 비해 매우 상냥하고 순종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는 이렇게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한국의 청년들을 시장의 원리를 철저하게 내면화한 신자유주의적 주체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너무나 성공적인 transformation이어서 신자유주의적 주체의 출현은 위기상황을 필요로 한다는 경제학자들의 가설 (우석훈 2009)을 확실하게 뒷받침할 정도이다. 나는 여기서 한국의 빠른 신자유주의적 체제 변화의 중심부에 ‘어머니’라는 존재가 버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현재의 대학생들이 그렇게 빠른 기간 안에 신자유주의적 주체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은 ‘풀 타임 매니저’로서 변신한 어머니들이 맹활약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장에서는 이 맹렬한 매니저 맘의 활약을 중심으로 그 자녀인 청년들이 취하게 되는 삶의 양태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특히 이들이 고립화하는 경향에 초점을 맞추면서 신자유주의적 transformaton과 가족과 교육제도의 상관관계를 살펴볼 것이다. 끝으로 이런 고립화 현상을 일본에서 1990년대부터 논의되었던 후기 근대적 청년세대의 ‘히키코모리화’ 논의와 연결하면서, ‘자기 속으로 숨어드는’ 경향과 immaterial labor의 관련성, 그리고 이 경향이 지닌 post-capitalist politics에 대해 생각해볼 것이다.
3-1) Manager Mom in Formaton of Neoliberal Youth Subjectivitiy: 

한국의 경우를 보면, 짧은 시일 안에 ‘신세대’와 단절을 이룬 신자유주의 세대를 등장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가족이며, 그 중에서도 어머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상 그전부터 어머니들은 자녀의 성공을 위해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면 그들의 노력은 단순한 지원을 하는 수준이었다. 어머니들이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을 때는 특히 그랬다. 그러나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지금, 대학입시부터 결혼까지 자녀의 삶에 깊이 개입하는 어머니들이 적지 않다. 지금 어머니들의 역할은 비서의 지원이 아니라 적극적인 매니저로서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한눈’을 못팔도록 기획관리하는 일이다. 1980년대에는 독립적인 대학생들이 학생 데모에 수천명씩 모이면서 부모들에게 뭔가를 보여주었다면 IMF 위기 이후에는 어머니들이 학원에서 진행하는 입시 설명회에 수천명씩 모여 스펙타클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국의 매니저 맘은 그냥 어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재력과 자녀의 체력”을 바탕으로, 그리고 ‘남편의 무관심’과 자녀 중 성공가능성이 덜한 아이의 희생’을 담보로 ‘성공하는 인재’를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인재 기획사 사장이 된 셈이다.

어릴때부터 아이들은 어머니가 짜준 시간표에 따라 살아왔고 친절한 학원 교사와 개인 과외 교사의 도움을 받아왔다. 어머니들은 자녀가 대학 입학 시험을 보러갈 때도 따라가고 자녀의 스트레스 해소를 할 수 있도록 정신과 의사와의 약속도 잡아주면서 감정적 욕구도 해결시켜야 하는 매니저이다. 대학생 중 상당수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어머니’라고 말하면서 수업 도중에도 어머니의 말을 스스럼없이 인용하기도 한다. 내 수업에서 한 학생은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자력으로만 공부한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교외에서 일어나는 부차적인 입시정보 같은 것을 혼자 알아낼 의지도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엄마가 그런 것을 대신 챙겨주니 고맙고 입시전쟁에서 지원사경를 해줄 사람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동엽)” 이라고 표현했었다. 또 다른 남학생은 “매니저 맘은 21세기 한국판 “맹모 삼천 지교(중국의 맹자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지극한 모성에 대한 일화)”를 실천하는 고마운 분이라고 표현했다.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어머니와 같은 든든한 지원군을 갖게 된 것을 학생들은 행운으로 여기는 것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기획관리된 아이들은 조만간 성적이 떨어지고 문제아가 될 것이라는 비판의 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철저하게 시장이 기획한 아이돌 스타가 대중문화계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처럼 대학입시에서도 어릴 때부터 기획관리된 아이들이 높은 성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공부잘 하는 아이는 잘 사는 집 아이이고, “자녀의 성적표는 엄마의 성적표”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시험에 나오는 것을 잘 가르치는 유명한 학원들이 모여 있는 대치동, 분당, 목동 지역의 집값은 크게 뛰었으며, 아이가 원어민처럼 영어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4-5학년 경에 영어 하는 나라에 적어도 일년간 어학연수를 보내는 일이 일반화되었다. 아예 아버지를 남겨두고 아이와 어머니가 열살 즈음에 영어권 ‘선진국’으로 교육이사를 하는 기러기 가족도 등장했다.(So Jin Park and Nancy Abelmann 2004)

플타임 매니저 맘이 교육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워킹맘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어머니들 사이에서는 자녀의 성적을 위해서 초등학교 입학부터 4학년까지는 어머니가 집에 꼬박 붙어 있어서 숙제를 봐주고 준비물도 챙기고 격려를 해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자리를 잡지 못한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대신 5학년이 되어서도 어머니가 아이를 붙잡고 있으면 망한다고 한다. 그 때는 어머니가 가르치기보다 보다 더 전문적인 지도를 할 수 있는 학원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성공적으로 집과 가정을 오가던 커리어우먼들은 이런 소식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한창 승진을 해야 할 삼십대 중후반에 아이 성적을 위해 4년동안 직장을 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직장을 다니자니 풀 타임 매니저 맘들이 주도하는 판에서 자신의 아이가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게다가 5학년부터는 학원비가 아주 많이 들 것이라고 하니 더더욱 일을 그만두는 것은 쉬운 판단이 아니다. 대학입시가 복잡하고 다양해지면서(수시 모집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한 입시 제도의 도입) 풀타임으로 매달리는 어머니들의 활약(정보력과 지원)이 더욱 중요해지고, 자녀들을 일류대에 보낸 풀 타임 매니저 맘들은 자신의 성공담을 책으로 내기도 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등장하여 일약 스타로 떠오르면서 워킹 맘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면 매니저 맘 현상이 왜 지금 한국에서 이렇게 극성을 부리게 되었을까? 일본에서도 일찌기 ‘교육마마’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다. 개인 실력보다 출신 대학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동아시아 사회에서 어머니들의 자녀 성적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그리 낯선 현상은 아니다. 특히 한두명의 자녀만을 낳게 되면서 어머니들의 자녀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대단히 높은 성취욕구를 가진 세대가 부모가 되는 시점과 1997년 급작스런 경제위기 상황이 겹쳐지면서 부모들은 초경쟁 사회에서 자신의 자녀가 탈락되지 않도록 제대로 준비시켜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특히 당시 여성들은 ‘자아실현’의 욕구를 가지고 직장 생활을 하기를 열렬히 원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경제 위기로 자아실현의 기회가 좌절되면서 그 자아실현 욕구가 자녀에게 옮겨갔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과 비교를 해볼 때 어머니들의 매니징의 강도와 형태면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나는 그 차이를 가정주부를 선택한 여성들의 자아관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일본 근대 가족의 형성과정을 다룬 우에노 치즈꼬(2009: 79)의 책을 보면 1970년도까지 일본에서 전업주부는 ‘살림에 찌든 몰개성’의 레떼르가 붙었으나 1980년대후반부터 ‘멋쟁이’ ‘여유있다’는 이미지로 부상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더 이상 ‘갇혀있는 여자’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직장에 가지 않기로 선택한 새로운 계층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쫓기는 직장생활이 싫어서 자발적으로 풀타임 가정주부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주부의 삶을 선택한 여성들과 비자발적으로 주부가 된 여성의 경우, 자녀의 성취에 자신을 투사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정도는 분명 차이가 날 것이다.

이런 젠더 변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한국의 가족주의적 전통일 것이다 (Cho Haejoang 1988, 1994). 식민지적 근대화를 거치면서 한국의 주부/어머니들은 사실상 매우 적극적으로 공공영역과 가정 영역을 넘나들면서 가족의 생계와 성공을 위해 비공식적 활동을 해왔다. 사회체제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이 단합해서 위기를 헤쳐가야 했고, 특히 식민지 과정을 거치면서, 또한 장기간 회사에 머무르는 아버지의 부재를 메꾸면서 한국사회는 matrifocal family적 성격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 다수의 주부/어머니들은 삶의 유지를 위해 아주 다양한 일을 도맡아 해야 했는데, 경제부흥기에는 부동산 재테크를 통해 돈을 벌어야 했고, 최근에는 자녀의 학교 성적을 올리는데 몰두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개혁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에서는 정보사회와 선진국 체제에 걸맞게 교육제도를 만들어내겠다며 매년 입시 제도를 바꾸었고 이는 학부모와 교사들을 매우 불안하게 만들었다. 학부모들의 정부대책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고,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들은 스스로 아이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아이를 스스로 돌보겠다고 나섰는데 이때 이들을 부추긴 것은 사교육시장이었다. 불안에 찬 어머니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장이 가장 잘 하는 것이 그런 이들을 꼬여내고 협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정주부들은 그들은 사실상 고립되어 있으며 소비자들일 뿐이다. 2000년에 그간 불법으로 금지되었던 과외가 학부모들의 교육권 확보 법률투쟁을 통해 풀렸고, 이로서 학부모들은 학교가 아니라 학원과 손을 잡고 자녀를 기르기로 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의 모성은 매우 상업적이고 도구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사실상 신자유주의적 질서에서 어머니라는 존재는 아주 힘든 자리에 있는 존재이다. 어머니는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말라”고 명하며 오로지 자기 관리와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사회에서 자기 외에 누군가의 삶을 책임 져야 하고, 책임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지막 남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성의 원형은 어떤 주체로도 아직 형성되지 않은 아기를 지배하지 않으면서 주체화 시키는 힘일 것인데 이미 모두가 극도로 개인화되고 모든 것이 시장적 질서에 편입된 신자유주의 가버넌스에서 모성의 실현은 점점 불가능한 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극성 매니저 맘의 책들이 일본에 번역되기도 하여 최근에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활약은 미국 교포 사회로도 펴져서 신자유주의적 자녀 교육법이 한국의 매니저 맘들로 인해 파급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사실 한 자녀만 낳은 인구학적 변수라거나 어머니들의 엄청난 성취지향적 성향, 그리고 고삐 풀린 시장주의로 치닫고 있는 중국의 상황에서 어떤 형태의 매니저 맘이 활약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이년 전에 중국의 중산층 아이들이 매우 효심이 깊다는 논문 (Fong 2004)을 읽은 적이 있으면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었는데, 최근 한국의 대학생들을 연구하면서 그 효심은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명의 자녀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부모에 대한 효심이며, 그 효심은 실은 규범이라기보다 부모가 자신에게 투자해주는 돈에 비례하는 상당히 계산된 효심이다. 그러면 이런 효심이 깊은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3-2) 매니저맘이 기른 승자와 패자

1988년 이후에 태어난 매니저 맘의 아이들은 두 부류로 나뉠 수 있다. 어릴때부터 부모와 세계 여행을 하고 조기 유학을 가면서 글로벌을 무대로 생활한 ‘소수’ 엘리트 층이 있는가하면 국내의 일류대 입학을 목적으로 하는 다수 중산층 자녀가 있다. 후자는 어머니와 입시 컨설턴트가 짠 시간표에 따라 학원과 과외, 그리고 학교라는 세 공간을 쳇바퀴 돌 듯 오가면서 단련을 받는 경우이고 내가 여기서 논의한 이들은 주로 이 범주에 속한다. 두 경우 모두 물론‘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과 자신의 체력’ 등 조건을 갖춘 경우, 승리자가 될 확률이 높지만 국내 게임일 때 엄마들의 활약이 더중 효과를 내게 된다. 

실제로 일류대학에 입학한 대학생들을 보면 기고만장하다. 이들은 “피할 수 없느면 즐기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경쟁을 즐기는 몸을 만들었고 ‘승자독식’을 당연한 진리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시장과 매니저 맘이 키워 경쟁에 성공한 아이들은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엄기호 2009)라는 신자유주의 비평서의 제목처럼 절대 남을 돌보지 않는다. 그들은 새로운 길에 대한 호기심이나 창의력은 없지만, 주어진 판에서, 주어진 룰에 따라 단기적으로 효율적으로 해야 하는 경기라면 이들은 세계적으로 확실한 경쟁력을 가진 경우일 것이다. 단기적 게임에서 늘 승자였던 이들은 자신만만한 왕자/공주인 ‘엄친아’들이며, 영화 ‘가타카(Gattaga, Andrew Niccol, 1998)’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선택된 자들이다. ‘G 세대’ ‘알파걸’ ‘명품 인재’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한 이 인재들은 판사가 되어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도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데 아마도 이 점이 서구 영화에 등장하는 가타카와 한국의 가타카의 차이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승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류대학 캠퍼스에는 수능성적 0.1.%에 드는 학생들이 모여있는데, 이 영재들은 ‘0.1%의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다수는 사실상 자신들이 결국은 ‘루저’가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경쟁력있는 자녀를 키워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어머니에 의해 모든 것이 계산이 된 상황에서 학교와 집과 학원을 오가면서 자란 신자유주의 시대의 아이들은 대학에 들어와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신들이 어느 순간 ‘추락’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갖는다.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를 주축으로 삼고 살아온 이들은 다른 사람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그것을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냥 계속 경쟁에 몰입하게 하거나, 혼자서 하는 공부나 하게 된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교육산업은 번성하게 되고 그것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돈으로 사지 않으면 어떤 공부도 하기 힘들어져서 더욱더 사교육비를 써야 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어릴때부터 안정된 삶을 추구하며 ‘온순한 willing slave’로 키워졌기 때문에 잘 하는 것은 시험공부 뿐이기에 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면서 청년들은 일에 중독되어 버린 것이다. 이들은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알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이른바 ‘신의 직장’에 간 선배들도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기 위해서 조직맨이 되어야 하고 활기없는 노동을 하면서 일생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를 피하고 싶어하지만, 달리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른다. 때문에 사회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공포감에 갇혀 학생들은 스펙’에 목을 매달고 있다. 한겨레 신문에서는 이 현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2009년 대한민국은 ‘스펙 공화국’이다. 학력이나 경력처럼 특정인의 조건을 통칭하는 말인 ‘스펙’에 모두가 감염되었다. 10대는 진학, 20대는 취업, 30대- 40대는 결혼과 승진, 더 높은 연령대는 은퇴 이후 준비에 몰두한다. 스펙을 강요하는 분위기 탓에 자신을 살피고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일은 아무래도 뒷전이다.” 초경재사회에서 낙오될 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이들은 열심히 A 학점을 얻기 위한 공부를 하고, 이력서에 써넣을 각종 자격증을 따고, 회사에 인턴십을 나가거나 영어공부를 하면서 점점 더 심한 노동 중독자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발견한 또 하나의 흥미로운 발견은 이들이 부모에게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에 부모에게 항의하고 적대적이었던 세대와는 상당히 대조를 이루는 특징이다. 이들은 해마다 오르는 비싼 등록금을 대주고 자신을 위해서 노후의 편안함을 희생한 부모의 ‘투자’에 대해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들은 자신들이 나중에 직장을 제대로 잡지 못할 수 있으며 그래서 부모들이 자신이 한 투자를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부모에게 정말 미안해진다고 한다. 최근에 캠퍼스에서 나는 ‘미안해요”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그들은 부모에 대해, 그리고 그외 많은 것에 대해 정말로 미안해 하고 있었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 오히라 겐(2003) 이 ‘cool 쿨 세대’ 다음 세대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배려하는 warm 세대라고 말했는데 이들이 그렇게 보인다. 이들은 모든 것은 자기 하기 나름이고, 모든 잘못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작은 실수에 대해서도 매우 미안해 한다. 자기를 낳은 부모에게까지 자신이 어떤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으며, 자신이 천부의 인권을 가진 존재라는 감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어쩌면 어릴때부터 ‘공공’에 대한 감각을 거의 발달시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고립’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바로 이들이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이런 미안한 감을 갖게 되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이 살아가는 소비사회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소비사회가 진행될수록 돈이 없으면 고립된 삶을 살게 된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친한 친구들끼리 회식을 가면 돈이 많은 친구가 밥값을 내는 것이 자연스러웠는데 이제는 모두가 더치 페이를 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돈이 떨어지면 아무 데도 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외톨이로 지내야 한다. 많은 것을 기대하는 부모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면 청년들은 집을 나오기도 하는데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정규직을 얻기 위해 교사 자격증이나 공무원 시험을 본다는 명분으로 한평짜리 고시원에 방을 얻기는 하지만 고시에 통과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많은 이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잠시나마 숨쉴 공간을 찾아서, 또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서 집을 떠나 고시원 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유한 환경(자기 방에 대단한 음향 시설과 가구가 있는 경우)이라면 집에서 히키고모리를 하게 된다. 

나는 최근 경제적 배경과 관련없이 한국의 청년들은 다양한 형태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고, 오로지 사적 존재로 가능한 한 사적공간 안에서 살아가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돈이 많은 엄친아는 아버지가 되어서도 kidult (kid + adult)처럼 조립장난감을 만드는 취미 생활에 몰입해서 살아가고 젊은 산모들은 어떻게 아이를 케어할 지 모른 채 자기의 사적 공간에 숨어들어가 산 후 우울증을 심하게 앓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중산층의 아이들은 혼자 좁은 방에서 인터넷과 벗하면서 자기만의 왕국을 이루어 그곳에서만 지내려 한다. 방이 크든 적든 ‘방살이’를 택하는 것은 초경쟁 상황을 힘겹게 살아내는 청년들이 만들어낸 후기 근대적 삶의 전략인 것이다.

흥미롭게도 일본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와중에 출현한 청년들의 특이한 존재양태는 방에 처박혀 자기가 원하는 것에 몰입하는 ‘오다꾸’였다. 프랑스인 에티엔 바랄은 1999년에 나온 <오타쿠, 가상세계의 아이들> 에서 80년대 후기소비자본주의 시대에 태어난 오타쿠 세대의 출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오타쿠 세대는 소비문화가 극에 달했을 때에 자라났고, 2) 헨사치(일본판 전국일제 고사)에 따른 매뉴얼화된 입시 방법에 근거한 입시경쟁을 거쳤으며 장기불황을 곧이은 장기불황을 경험하면서 탄생했다고 하였다. 당시 대학 입시는 암기 위주의 인덱스를 따라 시간을 쪼개서 계속 파면 성공을 하게 되는 식이었는데, 오타쿠는 바로 그 입시 준비 방법과 같은 형태로, 자기가 수집하여 구축한 정보들로 만들어진 자기의 왕국/세계에 빠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바랄은 오타쿠들의 '정보에 대한 집착', '누구보다 내가 먼저 발견하겠어!'라는 의식이 일본의 입시경쟁체제와 많이 닮아있으며, 이들은 ‘사회’가 아닌 자신이 만든 안온한 세계 속에 있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오다꾸 성향은 한국에서 방살이 하는 학생들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다꾸, 그리고 방살이는 초경쟁, 무한경쟁 사회를 살아내는 과정에서 생긴, ‘고용없는 성장’기의 불안을 견뎌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중요한 후기 근대적 삶의 전략인 것이다.

3-3) From Feeta to /Otaku and Hikikomori: Youth in East Asian Context

‘비물질 노동’이란 시간투자에 비례해서 산출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대개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노동이며, 자신이 좋아서 하는 노동이다. Hardts가 말했듯, 다양한 종류의 소통적, 창의적, 문화적 감정적 노동을 포함하며 이것은 새로운 주체, 새로운 형태의 삶, 그리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활동이다.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것을 생성해내기도 하는 면에서 활기찬 노동이다. 1990년대 일본의 프리타들이 바로 그런 노동을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한 경우이며 매우 적극적으로 비물질 노동을 한 세대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에 그런 청년들이 대거 등장하였고 비물질 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도 높았다. 정보사회, 문화사회를 준비하는 ‘선진적 노동’으로 인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청년들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자발적 노예 노동(스펙 쌓기)에 몰입하기 시작하기 시작하였고, 다수가 precarious one room living을 하는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다. 이는 일본에서 경제 버블기에 끝나면서 자기가 원하는 활동을 하면서 지내던 많은 프라타 청년들이 히키꼬모리가 되어가는 현상과 일맥 상통한다. 

사실상 최근까지도 나는 일본은 한국과는 매우 거리가 있는 사회라 생각했다. 나는 1999년에 한국의 청년실업자 모임의 대표를, 일본의 다매렌이라는 청년실업자 모임에 소개를 해준 적이 있다. 그때 이 두 집단은 전혀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역시 한국은 홍콩이나 대만, 싱가폴, 중국과 함께 네트워킹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나는 요즘 일본속에서 한국의 미래를 보고 있다. 미안해하는 제즈츄어가 몸에 밴, 자신이 가장 적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음을 말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화장실에서 식사 하지 말라는 대학안에 붙은 표지판을 보면서, 몸을 움츠리며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면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면서 방살이를 하는 자폐증 끼를 보이는 제자를 만나면서 생각을 달리 하고 있다. 사람끼리 모여 시끄럽게 떠들고 토론하는 문화를 발달시켰다고 믿어온 한국은 이제 조용한 인간들을 키워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청년 천재 작가로 불리는 히라노 게이치로(2004)의 소설 ‘최후의 변신’을 통해 나는 한국 대학생들의 이해할 수 없었던 행태를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소설은 카프카의 ‘변신’을 패러디한 소설인데, 대기업에 다니는 엘리트 회사원이 어느날 갑자기 히키고모리가 되면서 하는 독백을 담고 있다. 일부를 읽어보자.

“나는 취직한 후 거품 경제 시절 사람들이 얼마나 흥청망청 생활했는지에 대한 상사들의 이야기를 싫증이 날 정도로 들었다... 조금이라도 제 정신이 박혀 있다면 그 세대 사람들은 우리 모두에게 미안한 마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그들이 싸놓은 똥을 치우는 세대인 것이다. 술처먹고 지랄 발광한 다음에 싼 설사똥 말이다. 그런 인간들일수록 하필 수도 많고 잘 죽지도 않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착취당하고 결국엔 말그래도 뒤(똥)까지 닦아줘야 한다! 우리는 다르다. 원래가 수도 적고 틀림없이 슬플 정도로 맥없이 죽어버릴 것이다. 이렇게 바보처럼 일하고 정체모를 음식만 먹고 제대로 잠도 못자고 고문같은 통근 전철에 시달리면서 전자파니 환경호르몬이니 하는 뭐가 뭔지 모르는 것들이 넘쳐나는 속에서 헉헉대면 살아가고 있다. 절망! 절망! 절망! 아 아무런 정말로 아무런 희망도 없다. 정말 우리는 애초부터 이미 자살할 운명으로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234-5)”

1999년에 한국의 청년 실업자 모임 대표인 ‘백수연맹’ 주덕환씨가 일본의 다매렌이 소통을 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에게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말 그때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실제로 한국은 절망한 듯 보였지만 희망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 만나는 세상의 맛을 본 청년들을 절망이 몸에 베어있다. 게이치로는 “다망함은 헛수고이고 전혀 무의미한 것이다.”(239)라면서 자기 세대의 노동이 얼마나 허무한 지에 대해 말한다. 이어서 그는 물건을 팔아도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보람으로 다가오지 않는 노동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 나는 전자기기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는데, 물건을 판다는 일에도 확실히 별로 감이 없었다. 모든 것이 숫자 상태로 너무나도 빨리 내 눈앞을 지나쳐가, 마치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241). 틀림없이 그 무렵의 다망함은 의미로 가득했을 것이다, 일한만큼의 돈뭉치가 들어온다. 자신의 생활도 윤택해지고 회사의 업적도 오른다 그리고 나라도 번성한다. 그러한 실람, 혹은 보람 같은 게 충분히 넘치고 있지 않았을까? 세상 전체가 축제 기분에 들떠 있었을 것이다.. .. 우리는 다만 오직 참가하지도 못한 축제의 뒷정리만 해야 하는 것이다.” (240) 

이들은 열심히 해도 노동의 보람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노동자체가 더 이상 사회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어릴 때부터 탈락의 공포에 시달리며 경쟁에 이기기 위해 전력투구하다가 청년이 되어서 열심히 직장을 기웃거리던 이들은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에 자신이 딱히 필요가 없는 존재임을 알아버린 것이다. 

엄밀하게 이 세대는 게이치로의 소설 주인공이 말한 것처럼 ‘근대’라는 축제의 뒷치닥거리를 해야 하는 것이며, 축제를 치른 어른세대를 돌보는 일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들은 망가져가는 ‘근대의 장례’를 치러야 하는 임무를 맡은 셈인데, 이들은 아직 그 역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망쳐진 세상을 자신들에게 물려준 어른 세대에게 속깊은 분노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들은 한편 너무나 사적이기에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도 잘 모른다. 더 이상 지금 세상에서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채린 이들은 어쩌면 성숙한 자본주의를 경험한 후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어본 세대일 것이다.

실제로 현재 진행중인 형태의 글로벌 자본주의는 그렇게 많은 직장인이 필요없는 체제이다. 자본과 과학기술주의가 주도하는 현 경제 체제는 구조적으로 ‘잉여인구’를 생산하는 체제이다. 마르틴과 슈만(1997)은 이를 그들의 책 [세계화의 덫]에서 인구 20%가 나머지 80%인구까지 먹여살릴 수 있는 시대라고 불렀다. 바우만 (Bauman 2004) 역시 [Wasted Lives: Modernity and Its Outcast]에서 근대는 그 자체로 잉여인구를 만들어내는 체제인데, 초기에는 잉여인간들을 내보낼 ‘외부’가 있었지만 이제 지구에는 더 이상 잉여인구를 내 보낼 수 없는 포화상태임을 강조하고 있다. 지구상의 다수가 실직자이며, 그들은 더 이상 ‘산업예비군’도 아닌 ‘잉여인간’ 곧 “쓰레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바타와 surrogate와 로버트에 엄청난 돈이 들어가면 갈수록 히키고모리와 잉여 인간은 많아지게 될 것이고, 실제 인간은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부유하게 되는 것이다.

게이치로는 이런 복잡하고 힘든 상황에서 자신들은 이중적 모습을 지닐수 밖에 없다고 쓰고 있다. 밝고 기운차며 경박할 정도로 무신경한 듯한 모습과 노인처럼 지치고 어둡고 심각한 그런 존재 사이에서 변신을 하면서 히키코모리가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자기 세대는 항상 남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다르다는 것’은 ‘남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며(259), 뒤쳐져가는 동료들을 마음속으로 업신여기면서도 외톨이가 되기 싫어서 튀는 아이를 왕따 시키는 존재라고 쓰고 있다(255). ‘평범하고 무해한 학생’이라는 역할을 수행하기로 하면서도 끝없이 계속되는 일상에서 탈출시켜주는 변신을 꿈꾸는 과대망상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314). 그래서 자원봉사를 정말로 좋아하지만 (268) 연애와 같은 깊은 감정노동을 기피한다. 게이치로의 주인공은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게 된 존재가 되어버린 상황인데도 여전히 연애를 인생의 최대 가치로 여기는 여성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314) “나는 여자들이 결국 아무 것도 아닌 자신이란 것을 주체하지 못하고 단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역할로 타협하려는 듯이 느껴졌다…. 그것도 대단한 나르시시즘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자상하고 다정하고 순수하고 일편단심이라는 황홀한 기분으로 나한테 사랑받는 역할까지 달라고 졸라댔던게 아닌가?”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에 나온 하루끼의 소설 1Q84의 남자 주인공은 “연상의 여자, 불임의 여자가 편하다. 어린 여자는 새끼 고양이 같은, 어깨의 무거운 짐”(106)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청년들은 점점 더 연애를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강도 높은 노동에 치여서이기도하지만, 힘든 감정노동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히키고모리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거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온갖 정보와 소통과 감정과 창의 활동을 하고 있다. 사실상 성공한 엄친아들이 기계적 노동에 많은 투자를 한 이들이라면 히키고모리적인 청년들은 혼자서 활발하게 immaterial labor을 하고 있는 경우인지 모른다. 프리타와 히키고모리는 immaterial labor를 열심히 하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조직맨으로 변신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기계의 일부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프리타는 공적으로 immaterial labor를 한 사람이라면 히키고모리는 사적으로 immaterial labor를 하는 경우일 것이다. 히키고모리들은 푸코가 말한 “Make live and Let Die” 하는 biopower 시대의 처참함을 몸으로 알고 있어서 스스로 let live 하고자 숨어들어버린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자신을 체계적으로 ‘추방하는 권력’에 대해서도 일정하게 감지를 하고 있을 것이며, 그런 면에서 post-colonial politics란 바로 이들과 함께 시작할 어떤 기획일 수 있다. 

4. Epilog: post capitalist politics

그러나 여전히 내게 남는 질문이 있다. 한국의 사례에서 보면 GNP가 높아지고 부모세대가 자녀세대를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기획해서 기르는 단계에 이르면 이른바 ‘인재’가 나오기 힘들어진다. 그러면 글로벌 사회의 운명을 염려하고 만들어갈 창의적 인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른바 선진국들은 그런 인재들을 키워내고 있는가? 창의성은 사회적 감각을 가진 사람이 비물질 노동을 마음껏 할 수 있던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한국의 경우를 보면 당시 창의적 인재들은 적절한 저항심, 자유를 구가할 대상, 앞으로 만들어갈 새로운 세상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그런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었다. 두번째로 그들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것이 가족이든 학교든, 친척이든, 지역사회든, 국가이든 그들은 어떤 시스템의 보호받고 있다는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부모에게 저항한 것도 그들은 바로 그 부모가 자기들에게 뭔가를 마땅히 해주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고 그런 면에서 내적으로도 안정적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시장경제만이 아니라 선물경제 체제안에 있었으며 상호호혜적 관계가 주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다. 단골관계가 주는 안정성이 있었고 장기지속적 시간성에 대한 감각도 키워졌던 것이다. 반면 아무리 어머니가 막강한 재력과 정보력으로 보호를 하였더라도 시장의 아이, 경쟁만을 해온 아이, 특히 어머니와의 단둘의 관계 dyad에서 성장한 아이는 불안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사회적 존재’라는 감각이 없기 때문이 한없이 불안한 것이다. 

나는 요즘 ‘경쟁의 독’을 빼기 위해 ‘자각하는’ 청년들을 종종 만난다. 자발적으로, 또는 강제에 의해 거대한 신자유주의 콘베이어 벨트에서 내린 이들의 방문도 종좀 받고 있다. 그들에게 나는 ‘자기만의 방’에 숨어들어 혼자 ‘비물질 노동’에 몰두하지 말고, 함께 일을 저지르라고 말하면서 마츠모도의 [가난뱅이의 역습]이라는 책을 권하고 있다. 마츠모토씨는 버블 경제가 무너진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대학이 기업에 도움이 되는 인재를 양성하겠다면서 캠퍼스를 정비하고 학생들은 학원으로 내몰 때 “학생들은 대학에서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친구들과 의기투합하였다고 한다. 그는 “가난뱅이가 설칠 수 있게 하라”는 구호 ‘대학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고, 첫번째 사업으로 ‘바가지 씌우는 학생식당 분쇄 투쟁’을 벌였었다. 그들은 엄청난 양의 카레라이스를 손수 만들고 식당 앞에서 팔아서 학생 식당의 상황을 개선시켰고, 계속 기발한 방식으로 노상 대연회, 찌개 투쟁, 냄새가 고약한 갈고등어를 총장실 앞에서 구워먹는 데모, 경찰 바람 맞히기 데모 등을 하면서 자치활동의 영역을 넓혀가고, 동시에 대학에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를 상기시켰다고 한다. 서른 일곱 살이 된 마쓰모토씨는 지금 동경의 주택가에 [아마추어의 반란]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재활용 가게 타운을 만들어 여전히 창의적이고 즐겁게 살고 있다. 비싼 보험을 들지 않아도 서로 아이를 봐주고 공동의 식탁을 차리는 마을이기에 삶에 부족함이 없다고 한다. 최근에는 할말을 좀 하고 싶어서 구의원에 출마해서 시원하게 스피커를 통해 할 말을 다 하였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경제가 나빠질 것인데 괜찮겠냐고 물으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고립상태에서 벗어나 서로를 찾게 될 터라 더 좋아질 것이라 말했다. 중요한 것은 ‘비물질 노동’이 아니라 그 노동을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하는가일 것이다. 아시아 청년들과 함께 뭔가를 하고 싶어하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아마도 이들이 다시 자기 속으로 숨어들지 않게 하는 것, 사회’를 만들어가는 감각을 갖고 사회와 연결하면서 활기찬 노동으로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시켜낼 수 있는 뭔가를 기획해내는 것일 것이다. 최근 post capitalist politics라는 책을 쓴 Gibson-Graham(2006)은 이를 ‘cultivating Subjects for a Community Economy’라는 개념으로 풀어내가고 있었다.

바우만의 책을 읽다가 나는 이런 논의를 정치인도 이미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과 같은 글이다.

“Our GNP takes into account in its cal culations the air pollution, tobacco advertixing and ambulances riding to collect the wounded from our motorways. It registers the costs of the security systems which we install to protect our homes and the prisons in which we lock up those who manage to break into them. It entrails the destruction of our sequoia forests and their replacement through sprawling and chaotic urbanization. It includes the production of napalm, nuclear arms and armed vehicles used by police to strifle urban unrest. It records… television programmes that glorify violence in order to sell toys to children. On the other hand, GNP does not note the health of our children, quality of our education or gaiety of our games. It does not measure the beauty of our poetry and the strength of our marriages. It does not care to evalulate the quality of our political debates and integrity of our representatives. It leaves out of consideration our courage, wisdom and culture. It says nothing about our compassion and dedication to our country. In a ward, the GNP measures everything, except what meks life worth the pain of living it.” (Zygmunt Bauman 2008:4)

이 말은 1968년 3월 Robert Kennedy가 대통령 후보 연설을 하면서 한 이야기라고 한다. 그는 그해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제 청년들은 ‘근대의 장례식을 치루기 위해’ 방에서 걸어 나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Bare life의 상태에서 벗어나 “let Live’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밖으로 나와 인간이 신이어야 한다고 믿었던 한 역사의 장이었던 근대의 장례를 치러주고, 남은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서 살아남은 자들의 새로운 자리를 깔기 시작할 때가 아닌가 싶다.

References

Bauman, Zygmunt 2004 [Wasted Lives: Modernity and Its Outcast], Blackwell P.
Cho Haejoang 1995 “Children in the Examination War in South Korea - A Cultural Analyses,” Children And The Politics of Culture,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pp. 141-168
_____1996 “Male Dominance and Mother Power : The Two Side of Confucian,” Asian Women, 2 (1): 77-104. 
_____2003 “Internet, Popular Culture and Culture Industry: Youth and Cultural Formations in Contemporary East Asia.” East Asian Cities: New Cultural & Ideological Formations, Center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Shanghai University Department of Cultural Studies, Lingnan University Center for Transcultural Studies, Chicago University Shanghai University, December 6 - 8.
Etien Baral, 2002 [Otaku, the Children of Cyber World], Seoul Munhak gwa Jisong
Fong, Vanessa 2004 “Filial Nationalism Among Chinese Teenagers with Global Identities,” American Ethnologist 31(4) 
Gibson-Graham, J. K. 2006 A Postcapitalist Politics, Minnesata U P
Hakim Bay 1999 The Temporary Autonomous Zone, Ontological Anarchy, Poetic Terrorism. Brooklyn: Autonomedia. 
Hardt, Michael 2008 “Affective labor”
http://www.generation-online.org/p/fp_affectivelabour.htm
Haruki, Marakami, 2009, IQ84 Translated by Yang Yunok, Seoul:Munhak Dongne 
Hirano Keichiro, 2004 Shitatari Ochiru Tokei Tachi no Hamon Bunkei Shunju (translated by Sin Eunju and Hong Sun-ae, Banul gyo Ttolojinun Sigyedylui Pamun 2008) Seoul: Munhak Done-ne.
Hutakami, Nowoki. 2005. [Ilhaji Annun Saramdul, Ilhalsu upnun Saramdul (People Who Do Not Work: People Who Cannot Work)] translated by Sung-hyun Lee, (Seoul: Hong-ik Publisher.) 
Lazzarato “Immaterial Labor” 
http://www.generation-online.org/c/fcimmateriallabour3.htm
Lessig, Lawrence, 2001 The Future of Ideas: The Fate of the Commons in a Connected World. New York: Vintage Books. 
____ 2006(2004) Free Culture: The Nature and Future of Creativity. (New York: 
Penguin Books 2004), Translated by Lee Ju-myung, Seoul : Pil-mak Publisher 
Martin, Hans Peter, Harrod Shuman. 1997. “Globalization Trap: Attack on Democracy and Quality of Life.” Su-dol Kang, trans. Seoul: Young-lim Cardinal.
Matsumoto Hajime, 2009 [Kananbeng-iui yoksup, Attack of the Working Poor] Seoul: Iru 
Ohira Gen 2003 [Saeroun Baryo New Type of Consideration] Seoul: Sowha Publisher
Park, So Jin and Nancy Abelmann 2004 “Class and Cosmopolitamism: Mothers’ Management of English Education in South Korea.” Anthropolgist Quarterly 77(4): 645-672
Song, Jesook, 2009 [South Koreans in Debt Crisis] Duke U P
Ueno Chizuko 2009 The Modern Family in Japan, Trans Pacific Press
Uhm Kiho, 2009 [Never Care about Others] Seoul: Nazunsan 
Woo Sukhoon, Seo Myungsun, Park Jaeyong 2009 [Hyokmyungun Iroke Joyonghi (The Revolution is Here quietly)] Seoul: Radian.
Yamada Masahiro 2001 “There is No Future for 200 Million Freeta” Japan Forum winter. (translated from Munkei Sunju july 2001) 

후타까미 노우끼 2005, [일하지 않는사람들, 일 할 수 없는 사람들] 홍익 출판사
하루끼 무라까미 2009 1Q84 문학동네
서동진 2009 [자유의 의지 자기 계발의 의지] 돌베개
서명선 2009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레디앙, 2009
박재용, 2009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레디앙, 2009
우석훈 2009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레디앙, 2009
우에노 치즈꼬, 2009 [근대 가족의 성립과 종언] 이미지문화연구소
엄기호 2009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낮은산
에티안 바랄 2002 [오타쿠, 가상세계의 아이들], 문학과 지성사
히라노 게이치로 2004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 문학동네
한스 피터 마르틴, 하랄드 슈만, 2003, [세계화의 덫] 영림카디널
지그문드 바우만 2008 [쓰레기가 되는 삶들 : 모더니티와 그 추방자들], 새물결
마스모토 하지메, 2009 [가난뱅이의 역습], 이루
---------
Please consider the planet before printing this post

hiiocks (hiiock kim)
e. hiiocks@gmail.com
w. http://productionschool.org, http://filltong.net
t. 070-4268-9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