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의존이 우리를 성장시키리니
_2010년 오늘, 청년을 말하다

이 글은 지난 9월 11일 성공회대에서 열린 대안교육 한마당에서 열린 ‘2010년 오늘, 청년을 말하다’ 심포지움을 정리한 글입니다. 
(민들레 10월호)

사회_ 황윤옥, 토론_엄기호, 조한혜정, 김희옥


1%의 대안교육_ 그동안 잘 살아온 건가?

조한: 다시 리셋팅을 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얼마 전에 푸른꿈 학교 아이들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날 날씨도 좋고 선생님 표정도 행복해 보이고 친구들도 수업을 잘 듣는 게 너무 좋아서 의자위에 올라서서 막춤을 추니 여러 친구들이 따라서 신나게 춤을 같이 췄다고 했어요. 이런 게 통하는 곳이 대안 학교입니다. 좋은 대안학교들이 많이 생기고 있고 더 많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10년 전부터 공교육을 ‘공략하기보다는 낙후시키라’는 이야기를 해왔는데 돌아보면 어느 정도는 기존 학교를 상당히 낙후시키고 새로운 학교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대안학교가 전체 학교의 5%만 되면 어떤 기점이 되어서 세상을 바꿀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럴 때가 되긴 했는데 실제 통계로는 1%밖에 안 되죠. 왜 이렇게 더디게 가고 있을까요? 요즘 고민하고 있어요. 
성미산학교에 있었던 경험을 비추어 봐도 그렇고 ‘대안학교 같은 데 있는 분들이라면 날로 얼굴이 피고 행복해야 하는데 왜 안 그럴까, 갈 때마다 정말 왜 그러지?’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분석해보니까 94~95년부터 서태지 세대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세상이 온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고, 그분들 중심으로 생협이나 공동육아를 만들기 시작했지요. 더 새로운 체제를 만들자는 분들이 학교를 만들어갔고, 그러다가 IMF가 터지면서 굉장한 충격을 받은 부모들이 내 애는 내가 챙겨야겠다면서 한쪽은 학원으로 갔고 일부는 대안학교로 왔어요. 그 분들은 정말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기 보다는 내 아이는 내가 책임지며 좋은 결과를 보고 싶다는 분들이죠. 그런데 대안학교 안에서도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상이 큰 분들이 있어요. 아이들과 소통하기보다는 내가 아는 이상을 실현해야 하고 주도권이나 권리를 중요하게 여기고 유연하기 보다는 강한 분들이죠. 이분들과 내 아이는 내가 챙긴다는 분이 서로 말이 안 통했어요. 그 속에서 아이들 상황이 나빠지니까 복지적인 마인드를 가지 그 아이를 어떻게든 껴안으려고 하는 교사들이 생긴 거죠. 어떻게든 껴안게 되면서 여기에 굉장한 폐쇄성과 경직이 생기는 거예요. 이 세 부류의 엄청나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서 지지고 볶다보니까 상처를 굉장히 많이 주고받은 것 같아요. 그러면서 성숙해진 동네가 있는가 하면 상처가 아물지 못해 그냥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죠. 이게 우리 잘못만은 아니에요. IMF가 안 터졌으면 대안학교 잘 꾸려서 지금쯤엔 7%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이게 다 우리 잘못은 아니라는 거(웃음), 서로를 용서합시다. 응어리진 것 다 푸셔야 되고 그 차이가 어디서 올까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사실은 자기 아이 굉장히 챙기는 분들은 학원 쪽으로 가신 것 같아요. 사실 우리 안에서도 두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지요. 사회가 시장주의로 확 가버렸으니까 ‘우리 애들이 이렇게 하다가 먹고 살까? 졸업생들을 이렇게 내보내도 될까?’ 고민을 하면서 우리 자신속의 모성이 불안을 느끼는 거죠. 엄마로서의 모성도 있지만 교사로서의 모성도 있는데 대안학교 쪽의 모성은 적어도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 나오는 모성은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엄기호: 말문을 트기전 먼저 각자의 마을과 공간에 고립되어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한 번씩이라도 서로의 기운을 나누고 영감도 주고 힘을 불어넣는 자리가 열려서 반갑습니다. 아직 1%지만 아까 애들이 뛰어노는 것을 보면서 이정도면 우리가 대단한 힘을 발휘하며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에 발언도 하고 권력에 맞설 수도 있지만 권력에서 타락하고 부패하지 않는 힘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비율이 5~7%라고 합니다. 조한이 말한 것처럼 대안교육 운동을 벌인 사람들이 지난 10년 동안 어디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과 사회를 건강하게 발전시켜왔는지 점검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히옥스: 저는 2001년 하자작업장학교 만들 때부터 십대들과 작업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탈학교가 사회에서 제법 이슈가 될 때였고, 자발적으로 학교를 그만 둔 십대들이 꽤 많았어요. 그런 십대들이 중심이 되어서 학교를 만들고 운영한 것이 하자작업장학교입니다. 학부모와 교사가 학교설립을 주도한 경우와는 조금 다른 경우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때의 슬로건이 ‘자기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자’, ‘스스로 해야 한다’와 같은, ‘자율성’ 원리를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었어요. 그때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일시적 자율공간(temporary autonomous zone)을 구성하는 것만으로도 청소년 사이의 활력을 불러일으키기가 쉬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길을 제시해주거나 판을 만들어주기 보다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지지를 해주면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가진 ‘자율적인’ 십대들이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십년 전만 해도, 제도권학교가 일방적으로 강요된 수동적 학습으로 일관해왔기에 학생 스스로의 ‘학습동기’라는 것이 중요했고, 그런 맥락에서 맞춤형 학습이나 자기주도적 학습이란 단어가 의미가 있었어요. 요즘은 텔레비전을 틀어도 쉽게 들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기주도적 학습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애초의 의미가 상실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몇 년 전에 학원에서 유명스타가 쓰는 바람에 흔한 말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주도적 학습이 학습성과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면서 경쟁원리로서 자기주도학습이 등장했으니까요. 
그런 한 편, 대안교육계에서는 ‘자기주도적 학습’이라는 대안적 학습원리가 여전히 불투명하게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해요. 최근 3~4년 전부터 하자작업장학교에 탈학교한 아이들보다 대안중학교나 홈스쿨러 경험을 한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 아이들을 보며 이런 자리에서 다른 현장의 여러 선생님들과 꼭 얘기 나누고 싶었어요. 자기주도적 학습, 자발적으로 사는 것들이 실제 아이들에게 어떻게 교육되었는지 토론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대안학교에서는 스스로 생각하고 삶의 동기를 찾아나가고 그에 맞는 학습설계를 해나가는 것을 가르쳤겠지만, 상당수의 아이들이 대안학교에서 배운 삶의 지침을 비판적으로 사유한다기보다 몸속으로 체화되었달까 그런 아이들로 길러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몸속에 체화되는 학습은 이론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일관되는 장점이 있겠지만, 맥락이 바뀌었을 때는 융통성이 없이 무기력해지기 쉽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이 아이들은 스스로 어떻게 교육을 받아왔는지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이후에 어떤 학습을 할 것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더 공부도 필요하고 의논도 필요한 것이지요. 
예를 들어 그동안 우리는 아이들에게 큰 얘기는 많이 해왔어요. 아이들도 강을 살리자, 평화롭게 살자, 정의롭게 살자. 그런 얘기는 많이 해요. 그러나 어떤 조건이 어떤 의미의 평화를 요구하게 되는지, 어떤 곳에서 생태주의적 문제제기가 어떻게 필요한 지 실제 자기 생활에서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을 잘 모르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때 무척 어려워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인지 졸업을 하게 되면 상당수가 대학이나 갈까 하는 식으로 고민에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자도 예외는 아니고요. 이 아이들이 정말 잘 배웠고 잘하는 것은 달리 있는데, 우리는 왜 그 부분을 좀 더 점검하지 않은 채로 다시 그 사회로 보낼까 그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보내지 말자는 게 아니라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고민된다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어려워하는데 그냥 졸업시키고 대학으로 보내는 것은 현재로서는 검토해볼 문제입니다. 그냥 내보냈을 땐 ‘갈 수 있는 대학도 별로 없고 일반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배운 양도 적다’고 속상해 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다만 다른 내용을 배웠을 뿐인데 말이죠. 무엇을 배웠는지 다시 점검할 때가 됐어요. 실제로 아이들이 자기가 무엇을 배웠고 무엇이 몸속에 체화되어 있는지를 언어적으로 개념적으로 의식적으로 알아야 되는 게 아닐까요. 그 부분이 뭔지 아직 구체적으로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고민 속에서 학교 프로그램을 일정 부분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지난 3월, 일 년의 준비를 거쳐 잠시 하자작업장학교가 문을 닫았습니다. 6개월 쉬고 다시 개교한 지 지금 딱 일주일 되었어요. 

엄기호: 저는 수업할 때 중간고사가 지나갈 무렵에 몇몇 아이들에게 보고서를 쓸 때 어떤 느슨한 개념들을 사용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물질문명, 사회구조, 구조적 모순’과 같은 개념들인데요, 몇몇 학생들은 습관적이고 반복적으로 그 단어를 사용하면서 자기가 경험하고 생각하는 것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평가하지 못하는 경향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역사의 500년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로 쉽게 환원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무엇이 내 삶에서 일어나는가 보기 전에 너무나 구조적 언어로 점핑해버리는 거죠. 조한이 십 몇 년 전에 썼던 책 제목 그대로인 ‘삶에서 헛도는 언어, 언어에서 겉도는 삶’처럼 우리 삶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이곳저곳의 대안학교 학부모랑 교사들과 이야기 하는 자리가 많습니다. 작년부터 “우리가 잘하고 있는 거냐?”하는 질문도 많이 하고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는 말도 자주 해요. 우리는 대안교육이 공교육의 왕따, 학교폭력, 주입식 교육, 강압적 교육에 비해 아이들 중심, 건강,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좋은 교육이라는 것에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안해합니다. 또한 상당히 많은 분들이 아이들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을 하면서 잘 클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해서는 불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과거에는 위험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안전한 대안 교육을 하면 아이들이 잘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교육’과 ‘성장’을 동의어로 자동적으로 연결시켰어요. 그런데 생각과 달리 서서히 지금의 교육만으로는 아이들이 잘 클 것 같지 않다고 느끼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먼저 아이들이 잘 자란다는 것은 뭔지, 무엇을 성장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성장이 우리 사회에서 가능한 것인지, 가능하지 않다면 아이들의 성장을 무엇으로 다시 바라봐야하는지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인간은 절대 독립적이고 자율적일 수 없잖아요. 누군가에게는 의존하고 있고 누군가를 돌보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내가 또는 우리 학교가 홀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서있다는 건 사실 뒤바꿔서 얘기하면 대단히 고립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그걸로 뭔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데 제가 볼 때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훨씬 더 많이 만나고 의존해야 되고 배워야 되고 또 누군가를 가르쳐야 됩니다. 그런 연쇄 고리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인간을 다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대안학교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하는 데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요. 작년 쌍용자동차 파업했을 때 그분들이 내걸었던 가장 주된 구호가 ‘같이 살자’였거든요. 이제 깨닫는 거지요. 내가 너한테 의존할 수밖에 없고, 너도 역시 그렇다는 걸. 
부모나 교사에게 어떤 아이로 자라면 좋겠냐고 물으면 똑같이 한 사람 몫을 제대로 하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그러면서도 남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아이로 컸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요. 이런 바람으로 지금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 아이들이 전혀 성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불안하고 어떻게 클까 걱정스럽고요.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 몰라도 ‘우리 아이가 누구한테 의존하고 있는가, 잘 의존하는가, 어느 공간에서 누구를 돌보고 있는가, 등가교환이 아니라 선물경제처럼 훨씬 많은 것을 퍼주면서 또 나누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성장에 대한 관점을 바꿔서 아이들을 바라봐야 해요. 예를 들면 인터넷에서는 아이들이 자기가 속한 카페라든가 네트워크에서 영화평을 올리지요. 돈 안 줘도 말입니다. 사회에 어느 정도 기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지요. 우리가 성장의 기준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과 다른 공간에서 사회적 인간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부모나 교사 눈에 그런 건 안 보입니다. 성장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히옥스: 앞서 기호 씨가 의존과 돌봄을 이야기하셨는데 하자작업장학교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이고 앞으로 학습 과정 안에 더 많이 넣을 예정입니다. 돌봄과 의존을 이야기할 때 사실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10년 전에 학교를 같이 만들던 18살 청소년이 한 명 있었어요. 학교를 만들고 나서 바로 대학에 갔는데 이 친구에게 몸이 불편한 언니가 있었는데 자라면서 계속 부모한테 나중에 네가 언니를 돌보아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어요. 너무 착한 아이였기 때문에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고 언니를 돌본다는 게 도대체 뭔지 가족들과 이야기 나눠보지 못했지요. 그저 부모는 착하구나, 잘하는구나 하는 말로 키웠기 때문에 20세가 다가오는 나이에서 집에서 얼른 도망을 나온 거예요. 대안학교에 있는 학생들을 볼 때 그 친구가 오버랩 될 때가 있어요. 아이들을 잘 가르치려고 애쓰고 자기 삶의 지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아이들과 많이 의논하는데 혹시나 내가 그 가족들처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고민할 때가 있어요. 누군가를 돌보는 것만이 아니라 나도 의존할 수 있다는 거. 우리가 걸어서 국토순례 하다가 어느 마을에서 밥을 얻어먹는 정도의 넉살을 넘어서서 근본적으로 정말 우리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생명체, 여러 가지 존재하는 것들과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품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가야 하지요. 잘 설명해주지도 않고 마치 부채를 안기듯이 하는 것이면 곤란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저 통합이 좋다는 생각에 설명이 부족한 상태에서 아이들에게 관념만 확 준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가끔 하죠. 


온당하지 않은 비난-스스로를 잉여인간, 루저라고 생각하는 아이들

사회자 : 최근에 대안학교 학생들이 자신을 잉여 인간, 루저라고 표현한다고 해요. 저는 여기에 대해서 충격을 받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엄기호: 책 광고해도 되나? (웃음) 지금 말씀하신 잉여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대학생들이랑 제가 지난 1년 반 동안 같이 공부하면서 잉여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고 만들어 가는지 책을 썼어요. 아직 발간은 안 되었고 책 제목을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했어요. 잉여가 만들어지는 건 우리 사회에서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본주의적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진보주의자들의 언어가 외려 아이들, 학생들, 20대들에게 스스로를 잉여라고 여기게끔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보블럭들은 ‘청춘이라면 사회에 저항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하는데 지금 대학생들은 스펙만 쌓으려고 하고 사회에 포함되려고 경쟁만 한다.’는 비난을 엄청 많이 했어요. 심지어 어느 잡지에서는 청춘의 종언이라는 말까지 등장했어요. 진보지식인들이 “이것은 청춘이고 그것은 청춘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판단하는 논리는 지금의 아이들이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회 자체가 허락하지 않는 부분들은 끊임없이 배제하고 추방하는 신자유주의의와 대단히 비슷한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신자유주의 논리구조가 똑같이 작용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너 네가 그렇게 잉여로 취급을 받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신자유적인 논리인데 네탓이다. 라고 비난해서는 안 되는 거죠.
그렇다면 얘네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느냐? 전혀 아니거든요.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스펙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애들은 자기들의 노력을 열정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블로깅을 한다거나 어디에서 퍼주는 일을 한다거나 하는 아이들은 나의 열정은 늘 삽질이었다고 얘기해요. 사실 그 삽질을 잘 들여다보면 엄청나게 사회적인 사회성을 가지고 있어요. 누군가와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 있거나 누군가에게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 분명 비물질적인 노동을 수행하고 있어요. 삽질이라고 딱지를 붙이지 말고 아이들의 행위가 이미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진보주의나 대안 이쪽에서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유명한 외교부 장관 사건이 있고난 다음 청와대가 급하게 조취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사건을 인터넷에서 본 20대들의 분노가 민란이 되기 일보 직전까지 갔기 때문이잖아요? 이 20대들이 ‘내가 정말 이 사회에 순응하려고 이렇게 간도 쓸개도 다 빼놓고 뛰고 있는데 누구는 자전거 타고 가고 누구는 KTX 타고 서울에서 부산 가버리는구나. 이 사회가 도대체 뭐냐. 아무리 순응하려고 해도 이 사회가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거죠. 이것을 깨달은 20대들의 사회에 대한 강력한 요구를 캐치해야 하는데 이것을 못 보고 너네는 순응만 하려는 거 아니냐고 비난만 해서는 아무런 생산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없다고 봅니다.

히옥스: 작년 말인가 외고 다니는 고3 아이가 시험을 안 보겠다면서 한 얘기가 있어요. 자기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굉장히 잘했고 계속 1등을 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어떤 아이들이 1등을 하는지 1등을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안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가 어떻게 해야지 살아남는지 점수를 높여 상위 1%안에 들어가는지에 대해서는 잘 아는데, 나머지 99% 잉여들이 왜 저렇게 잉여로 사는지 이해하지 못 하겠다. 그런데 사실 1%가 되면 그 99%의 사람들을 위해 일해야 하는데 그들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내가 1%가 된다고 한들 무슨 일을 한단 말인가라고 하면서, 그런 식의 시험을 안보겠다고 선언했던 기억이나요. 거꾸로 대안학교에 있는 학생들은 무엇을 또는 누구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는 걸까요? 란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그 1%의 마음을 이해하라는 게 아니지만 다름을 상상하면서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저는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조한: 기본적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개성 있는 인간, 자율적인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본 것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야하지 않을까요? 스스로 잉여, 루저라고 얘기하는 것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혼자 해야 한다.” 라고 키웠기 때문이라고 봐요. 아이들이 스스로를 루저라고 생각하는 문제를 나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오늘 심포지엄 주제가 청년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아무리 우리가 고등학교 아이들을 잘 키워도 그 다음에 아이들이 갈 데가 안 보이면 힘이 안 나거든요. 우리가 키운 아이들은 빡세게 돌리는 기존 신자유주의 세상에는 맞지 않아요. 기존 학교에서 키운 대부분의 아이들도 실제로는 맞지 않고요. 지금 우리는 이른바 선진국형 실업사회, 청년실업사회가 되어버렸고 이 사회에서는 일단 자리가 없습니다. 신자유주의 시장 안에서 성장한 아이들도 그것을 해낼 수 없는 마당에 대안학교 아이들은 더 해낼 수 없고요. 내가 그 짓을 왜 해? 이렇게 생각하죠. 그렇게 길렀으니까.(웃음) 그러니까 걔네들이 자기가 루저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면 걔네들이 루저가 안 되려면 ‘무엇을 가졌나? 뭘 가졌나? 도대체 다른 아이들과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점은 생각하지 못하고 같이 대학을 졸업한 아이들과 비교하고 굉장히 불안해지기 시작하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조급해지는 거거든요. 지금은 그 20대 something에 대한 어떤 대책들을 얘기할 때 큰 흐름에서 교육과 성장을 얘기하지 않으면 해답이 나오지 않아요.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미국에서도 최근에 생애발달주기를 다시 봐야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뇌 연구를 해보면 뇌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해요. 엄청난 지식정보사회라는 거죠. 정보 사용능력이 엄청난 시대에 근대적 공장생산체계를 생각하고 키우면 안 됩니다. 하이퍼텍스트차원이라고 어렵게 얘기하면 그 위에서 수를 놓을 수 있게 경험하고 사유할 수 있도록 키워야 해요. 실제 우리가 어떤 형태로 혁명을 일으키고 싶었다면 말이죠.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키웠어야 해요. 그 부분이 우리 잘못은 전혀 아니지만 못 한 거죠. 그런데 20대에 대한 문제, 그리고 정말 우리가 키우는 고등학생들은 어디까지 해야 되나 고민해보면 검정고시 보고 대학 들어가는 식은 전혀 아니거든요. 


삽질해도 괜찮아?-청년이 살아갈 세상, 청년이 할 일

사회자: 우리 아이들은 삽질이라고 혹은 자기를 잉여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그렇지 않다 너희도 뭔가가 있고 우리도 발견하고 싶다.” 그렇게 말해주면 되나요? (웃음) 아니면 어른들이 또 움직여서 뭔가를 해야 하나요?

조한: 지금 하자에서는 20대들이 와서 100만개 일자리를 만드는 ‘창의허브’라는 공간을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지금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이런 거죠. 허브라는 공간에 가령 실상사작은학교 같은 자기 현장을 가진 사람들도 와서 공헌을 많이 하고 있고 요새는 성미산 학교 초등3학년 친구들이 계속 와서 우리한테 이거해내라, 저거 해내라하는데 주문하고 있어요. 이렇게 허브 공간에서 서로를 연결하는 경험을 진하게 하고 다른 사람과 만나 일자리를 만들면서 남들과 함께 공익적으로 판을 새로 만들어 가요. 그런 허브에서 10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거죠.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는 어른들이 와서 어느 세대건 상관없이 자유롭게 교류하면서 열린 공간을 만드는 겁니다. 
오늘도 여기 오면서 우다다 학교 선생님이랑 얘기했는데 졸업생들이 와서 가르치면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교실이 된다고 해요. 졸업생들이 스스로를 루저로 여기는 게 아니라 세상에 나누는 활동이 정말 필요합니다. 잉여라는 범주는 사실은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거거든요. 잉여질이라는 것이 학문적으로 보았을 때 ‘비물질 운동, 창의 운동, 문학 노동’이라는 다른 개념으로 부르고 있어요. 그 부분을 이론화하고 있고 동시에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 대안교육에서 많이 생겼어요. 그 친구들을 어떻게 모아내면서 100만개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지가 앞으로 우리가 고민하고 실천해야 될 부분인 것 같습니다.
나의 노동과 자원을 잘 활용하는 공간과 그것을 연결하는 그물망이 만들어져야 해요. 누군가를 돌보려는 마음이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을 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제천간디 같은 곳이 마을학교로 발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학교라는 틀, 어떤 커리큘럼으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허브라던가 도서관, 온라인학습 생태계를 이야기하는 게 이런 공간에서 자기가 가진 것들이 사회적으로 결실을 맺는 것. 우리 아이들이 물질노동을 통해 기존의 산업사회나 삼성 같은 곳을 가기 위해 존재하는 구조가 아니라, (결국엔 삼성도 그런 노동을 원하겠지만) 스스로 뭔가를 만들고 누군가와 더불어서 파는 권리를 누리는 노동이 사회적으로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가도록 움직여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대안학교만 만드는 게 아니라 이게 가능한 사회를 디자인하는 일을 동시에 했어야 해요. 그렇게 하려면 학교들 간의 연결이 긴밀하게 되어있어야 해요. 지금은 그 일을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을 키울 수가 없고 아이들은 자신을 잉여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밖에 없어요. 지금 그 판을 만들어 내냐 안 되냐는 것이 주요 관건이라고 믿습니다. 좀 전에 외교장관 딸 얘기를 했는데, 그쪽에서 있는 많은 친구들은 지금의 스펙 쌓기가 더 하기 싫은 삽질이거든요. 스펙 쌓느라 죽어라 고생했는데 결국 장관의 딸이기 때문에 되고 자기들은 계속 탈락하는 게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그나마 우리 대안학교 애들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놀기라도 했으니 억울할 것 없잖아요. (폭소) 제가 중학교 인터뷰할 때 자기가 3년 동안 한 게 잠잔 거 하고 인터넷밖에 없는데 결국 거기에 질려버렸기 때문에 대단한 것을 얻었다고 합니다.  (폭소) 정말 훌륭해요. 지금 불황에 쫓겨서 질리는 것조차 할 줄 모르고 모두 다 엎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질려버린다는 것을 안다는 건 대단히 중요해요. 우리들이 제대로 연결해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어떤 장을 만들지 않으면 대안학교가 참 막막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을 좀 더 긍정적으로 표현한다면 ‘이제 우리 아이들은 자기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라는 거죠. 왜냐하면 일단 직장이 없으니까. (웃음) 그러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고 엄마가 돈이 좀 있으면 거기에 기대 살면서 자기실현을 할 거죠. 우리는 그 아이들을 키우면서 계속 “혼자 잘 사는 게 아니거든? 더불어 같이 잘 사는 거거든?”을 어렸을 때부터 심어줬기 때문에 걔네가 하는 활동이 임금노동은 아닐지라도 굉장히 좋은 사회적 활동일 거라고 봅니다. 대안학교 간 친구들 그런 활동을 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흘러가도록 챙겨주지 않으면 대안학교 어른들이 할 얘기가 없어요. 무책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엄기호: 아이들과 만날 때는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습관적으로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많이 던지는데 나는 ‘왜?’라는 질문은 잘 안 던지거든요. 너는 왜 그게 삽질이라고 생각하니? 물어보면 답이 너무 뻔합니다. 그냥요, 재미있어서요. 그거 말고 할 말이 없어요.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은 그 대답을 나도 제일 싫어해요. (웃음) 그런데 알고보면 질문 자체가 이 대답말고는 할 말이 없는 그런 질문인지도 몰라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이 혹시 질문이 잘못되었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행위가 사적이고 힘이 있다는 것을 긍정할 때는 “네가 무슨 삽질을 하고 있는데?”라고 소상하게 물어보면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거든요. 내가 만난 한 학생은 온라인 게임을 하는데 할 때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서 하루 삼세 끼 양푼에다 비벼서 한 번에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한 번에 먹고 이박삼일 동안 끊임없이 게임을 하는데 그 단순노동을 하면서 놀랍도록 즐거워해요. 다른 사람이랑 온라인에서 이야기하면서 팀웍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하는 거 바깥에서는 삽질이라고 보는데. 인터넷에서 상주하는 사람들이 하루 세 끼 라면만 먹으면서도 열정을 쏟아부어가면서 그런 삽질을 왜 할까. 리눅스를 만든 토발즈라는 사람이 말하길 “당신들 어른이 살던 시대에서는 노동을 하고 다른 사람과 열심히 교류해야하는 이유가 생존이었고 그 다음이 사회적 인정이었다면 지금의 해커들이나 네티즌들이 그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 인정과 함께 재미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공간에서는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챙겼을 때보다 더 퍼주었을 때 칭찬을 받거든요. 이들의 놀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어떤 힘, 그것으로 만들어가는 사회를 기성세대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 아이들이 이미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이들 안에서 힘을 발견하고 그것을 긍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게 잘 안 되는 까닭은 그 행위가 생산적이지도 사회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미 그 안에서 새로운 사회성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긍정해야 합니다. 

조한: 우리가 그 게임을 안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할 일이 너무 많아서죠. 우리가 아이들 기를 죽이고 있어요. 아이들은 할 일이 없습니다. 온라인 스페이스 밖에 남지 않았어요. 그쪽으로 도망가서 사회성을 만듭니다. 도망가지 않게 하는 방법이 뭘까 찾아보면 사실 아이들이 실제 경험을 해야 하거든요. 실제로 세상을 디자인을 해보면서 경험하고 엄청나게 사회에서 착취당해본 아이들한테는 해법이 나온다는 거죠. 제일 안 나오는 게 인문사회 쪽이고요. 오히려 세상을 경험해본 친구가 이렇게 가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엄마한테 붙어서 엄마 안마해주고 기분 맞춰주면서 의존할 거예요. (웃음)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니고 크면서 다른 일을 할 거라고 봐요.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이들은 직접 경험을 통해 해법이 나오는 거죠.

엄기호: 제가 다음에 하려고 했던 조한 샘이 먼저 이야기를 해 주셨네요. 학생들과 작업하면서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 드릴게요. 패션디자인 학과처럼 실무적인 학과의 경우 1학년 때부터 현장을 많이 뜁니다. 얘네들은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바깥이 착취의 세상이라는 걸 깨닫게 되죠. 내가 이 일에 가지고 있는 열정으로 바깥세상의 착취를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을까. 내가 어느 정도까지 협상하고 타협하면서 나의 포지션을 만들 수 있을까 1학년 때부터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내 열정이 이 착취 시스템을 능가하니 감수하면서 가겠다는 애들한테 “네 삶은 착취당하고 있는 거야”라고 얘기하면 발끈해서 자기 삶을 모독하지 말라고 항변합니다. 그 애들은 힘들어도 감수하면서 가는 거죠. 자기 포지션을 만들면서요. 열정이 착취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물러나는 거고요. 인문사회 영역에서 머리만 굴리면서 세상이 어쩌고 하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바깥세상이 있다는 거, 용기를 가지고 부딪쳐야한다는 것을 대안교육에서 어떻게 만들어 낼 거냐, 경험하게 할 거냐 고민하고 풀어내는 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히옥스: 삽질해도 괜찮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괜찮은 건가요? 난 안 괜찮거든요. (웃음) 어떤 현실에서 십대, 이십대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긍정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는 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대안교육 현장으로 돌아와서 생각하면 어쩌면 ’우리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하고 학습이 이뤄지는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그러다보니 좋은 학교를 만들고 그 안에서 굉장히 평화롭고 갈등 없이 아이들이 지내는데 그것이 괜찮은 걸까’ 질문하게 돼요. 난 안 괜찮거든요. 꼭 행복한 아이로 자라야 하는 게 목표가 되어야 하나? 그건 아닐 수 있다고 봅니다. 전인적으로 잘 키워서 행복한 아이를 만들겠다는 건 제도학교의 슬로건이기도 하지요. 똑같은 슬로건을 가지고서 우리가 더 행복하거든? 이러려고 학교를 만들었을까요. 그런 점에서는 사실 대안학교 이름을 가진 현장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그런 고민이 들어요. 자기길찾기를 한다든가 적성을 찾아본다고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고, 부모님도 지원을 약속하지요. 그러다가 하자작업장학교에 오는 나이쯤 되면 고민이 시작됩니다. 12살 때까진 괜찮다고 할까? 15살 때까진 괜찮아? 아니면 25살? 부모들이 계속 끼고 살 수도 있지만 하자에는 부모가 그 아이들을 끝까지 돌볼 수 없는 경제적 조건에 처한 분들도 굉장히 많거든요. 
좋은 학교를 만들어서 행복하게 공부하고 안온하게 성장해서 사춘기를 보내고 졸업 이후를 걱정해야 하는, 그야말로 학교라는 것을 만들려고 애썼던 것에서 변해야 합니다. 우리는 겨우 1%가 안 되는 십대들을 데리고 있어요. 이제는 그 성장의 삶이 학교 안이 아니라 우리 사회 안에서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 건지 이야기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뭉개야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인데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사다리를 걷어찬 청년-그들이 만들 열정의 시공간 

조한: 정말 개성이 있고 자기 권리에 대해 개념을 가진 대안학교 애들 엄청 잘 따지고 그래요. 그런 아이들 길렀는데 이젠 정말 평생 삶의 터전을 만드는 아이를 길러야 되지 않겠어요? 키워지는 아이가 아니라 키워지지 않고 스스로 자라는 것도 아니고 같이 어른도 아이도 자라는 게 제일 핵심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은 그야말로 개인이 대부분 부유하고 열정이 소멸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정말 모두의 열정이 소멸되지 않은 곳이 많이 살아있을 텐데 어떻게 열정이 소멸되지 않는 시공간을 만들 것인가 생각해야지 학교라던가 그런 틀만 고집하면서 그것의 본질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가 엄청나게 불확실한 시대이기 때문에 잔머리 굴리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요. 그런 맥락에서 사실 공생 하는 아이가 정말 필요하죠. 아이의 삶을 쥐고 있는 대신 어른들은 제도적으로 아이들의 활동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부분에 더 신경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허브의 운영원리는 젊은 아이가 작업하고. 어디서든지 학교 옆에서 만들면 100만개의 일자리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히옥스: 직업과 관련된 질문을 했을 때 우리 학교에서 이런 경우가 있어요. 집이 경제적으로 파산해서 스스로 경제적 조건을 진지하게 생각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왜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랬거든요. 이게 많은 청년들의 생각이라고 봅니다. 대안학교 현장에는 더 많을 거고요. 집이 파산했다고 하면 우리 세대는 대체로 쟤가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나 생각하지만 놀랍게도 사회의 풍요로움이 굶어죽지 않는 세대를 만들었어요. 실제로 누군가 굶어죽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무도 자기가 굶어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내가 왜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야 하는지 와 닿지 않을 수 있어요. 99년에는 학습동기라는 말을 썼는데 그 말은 살아갈 동기가 있는가, 해야 되는 일이 있는가와 더불어서 많이 질문했어요. 오히려 ‘삶의 동기’가 더 정확한 표현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뭘 많이 배워서 졸업은 했는데 할 일이 없어요. 직업이 아니라 나 아니면 안 되는 일 같은 것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사실 아이들에게 “너 아니어도 돼~”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지요.(웃음)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질서 안에서 모든 사람은 대체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의 존재 의미는 없는 거죠. 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굳이 열심히 살아야 되는 이유가 뭔가 짚어보면 대안교육 현장에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는 식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이제 와서 취업 걱정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청년이 된 동지들과 지금 학교 안에 있는 학생들과 여기 모인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뭔지 토론해 보세요. 그것 때문에 대안학교 안에서 다양한 사회적 참여와 공공적인 활동을 해온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요. 대안교육의 힘이 거기서 나온다고 봐요. 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조한의 표현대로 “공익활동”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어요. 공익이 뭘까부터 물론 생각해봐야 합니다. 내가 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구나 하는 것을 알아가는 심도 깊은 과정이어야 할 것이고, 단순히 직장 만들거나 취업하는 문제가 아니라 대안교육의 현장에서 성장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심도 깊게 지금부터 생각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자율성보다는 ‘상호의존성’이 더 중요하고, 자발성보다는 ‘공명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
Please consider the planet before printing this post

hiiocks (hiiock kim)
e. hiiocks@gmail.com
w. http://productionschool.org, http://filltong.net
t. 070-4268-9221